그 모든 아름다움/책

<엄마의 꽃시>, 100명의 어머니들의 솔직하고 정겨운 뭉클한 인생이야기

난짬뽕 2025. 1. 3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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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이경례(군산시 늘푸른학교에서 글을 배우셨다)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 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
참 보고 싶다
허양순(광주 첨단종합사회복지관에서 글을 배우셨다)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살아생전 내 남편에게
음식을 해 주면
"참 맛있네" 했다
겉으로는 "참" 자는 빼고 말하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나도 참 기뻤다

나를 언제나 다독이고
살뜰히 챙겼던 정진이 아빠
꿈에라도 한 번 만나
참 맛있는 음식 싸 들고
우리 두 손 꼭 잡고 멀리 놀러 가요

이번에 만나면
내가 배운 한글로
편지 써서 줄 테니 꿈에라도
한 번 놀러 와요

 

엄마의 꽃시
  • 100명의 어머니가 쓰고 김용택이 엮다
  • 초판 1쇄: 2018년 5월 15일
  • 펴낸곳: 마음서재

 

그 어떤 시보다 깊은 감동을 준 인생의 울림

<엄마의 꽃시>를 읽는 동안 내 마음은 한없이 여려지고 뭉클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으로 울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뒤늦게 한글 수업 학생이 된 어르신들이 쓰신 시를 모아 엮은 시집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평생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어머니들께서 글을 배우면서 느끼게 된 오래된 감정들과 아름답고 고운 인생이야기들이 한 편의 시로 피어났다.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 엄선된 총 100편의 시에 김용택 시인이 글을 보태 선보이게 된 시집이다.

 

<엄마의 꽃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사느라고 참, 애썼네 / 2부 창밖에 글자들이 춤춘다 / 3부 시란 놈이 꽃 피었다 / 4부 내가 제일 무서운 놈 잡았다 등의 부제로 그 내용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가족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글을 알고 나서 느끼게 된 행복과 기쁨,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며 인생의 희망들을 노래한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어머니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엄마의 꽃시>는 삶의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시어보다도 진하고 깊이 있는, 정겹고 솔직한 울림이었다.

 

사십 년 전 편지
조남순(울산푸른학교에서 글을 배우셨다)


사십 년 전 내 아들
군대에서 보낸 편지
언젠가는 읽고 싶어
싸움하듯 글 배웠다

뜨는 해 저무는 하루
수없이 흐르고 흘러
뒤늦게 배운 한글 공부
장롱 문을 열어본다

사십 년을 넣어둔
눈물바람 손에 들고
떨리는 가슴으로
이제야 펼쳐본다

콧물 눈물
비 오듯 쏟아내며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70년 만에 보내는 편지
박순덕(이천시 과녹동 주민자치학습센터에서 글을 배우셨다)


창문을 여는 것과 나가는 것이 다르듯
바다를 바라보는 것과 헤엄치는 것이 다르듯
아버지 뒤를 따라 엄마를 찾아 외가에 간 날
가슴을 내주지 않고 부지깽이로 때리던 엄마를
일주일 짧은 해로 후 60년 만에 백골로 만났다

주소도 몰랐고 버스를 탈 줄도 몰랐다
편지를 쓸 줄도 보낼 줄도 몰랐다
외면하고 내치는 엄마의 마음도 몰랐다
내쳐진 1년 남짓 엄마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식장에 갈 줄도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글을 배워 차를 타고 70이 넘어 찾아간 엄마는
바닷가 옆 넓은 차로 가의 쓰레기 더미 옆에
무덤인지도 모르게 납작해진 그곳에 있었다
나를 서럽게 했지만 화장하고 산에 뿌리며
준비해간 편지를 읽었다 피눈물이 흘렀다

라일락 향기 담아
서순자(양산시 웅상종합사회복지관에서 글을 배우셨다)


결혼할 때 중매쟁이 중학교 나왔다고
거짓말하고 한 결혼
"어디 중학 나왔소?"
하고 물었을 때
내 가슴 꿍 하고 내려앉았죠

글을 몰라 움처려들고
작아지는 내 모습
군대 간 아들한테
편지 한 장 못 쓰고 눈물 흘릴 때
"그 시대는 다 그랬다오!" 위로해 주었지요
한글은 몰라도 우리는 참 행복했죠

당신 떠난 빈자리 허전해
시작한 한글 공부
내 눈가를 간지러주는 ㄱ, ㄴ, ㄷ, ㄹ
지금은 당신께 편지도 쓸 수 있어요

한글은 내게
라일락 향기 담아 띄워 보내는
당신 향한 마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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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찾기
안춘만(영암군 왕인문해학교에서 글을 배우셨다)


나는 이름이 여러 개다
어릴 때는 순둥이
시집와서는 군산댁, 기범, 기숙이 엄마
율이댁 며느리, 경우 할머니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아무도 부르지도 안 했다
그러나 지금 85세 문해학교 다니니까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면
안춘만이라고 불러준다
몇십 년 만에 들어본 나의 이름
내 이름은 안춘만이다
멋지다......
82세에 시작하는 꿈보따리
정진섭(인천 주안도서관에서 글을 배우셨다)


감자 한 통 깎아놓고 학교 구경하고 왔더니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몽둥이로 때리셨다
그것이 학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혼해서 남편은 글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달고 살았다네
글도 모르는 무식쟁이에
일까지 못하는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하늘이 뱅뱅 돌 때까지 산속에서 죽어라고 일만 했지요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으며 꼭 글을 배우고 싶었지요

내 나이 82세
가방을 메고 공부하러 가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봉화 깊은 산속에서 눈물은 이제 잊어야지요
하늘에서 행여 나를 부르시면
이제 공부를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저승에 있는 남편에게 서운했던 마음 담아 편지 한 통 쓰고
목사님께 내 삶을 마무리하며 감사편지 한 장 쓰는 것이
이제 공부를 시작하는 작은 꿈보따리 주인의 소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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