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봄이 떠나가는 푸른 밤

난짬뽕 2023. 4. 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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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

3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한 첫 시집 <이성부시집>(1969)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이성부는 194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람'으로 당선됐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한국일보, 일간스포츠에서 28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기자 생활을 접은 후에는 출판사 뿌리깊은 나무로 자리를 옮겨 1999년까지 편집 주간으로 재직했다. 김현승에게 사사받은 이성부는 현대문학에 시 '소모의 밤' '백주' '열차'로 김현승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애움길이었다

 

-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나희덕은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는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그녀에게> <파일명 서정시> 등이 있다. 

2023년의 봄이 떠나가고 있다. 올해에는 꽃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집 앞에서 찍은 사진 몇 장과 함께 이 봄날과 쿨~~~ 하게 이별할까 한다. 이성부 시인의 '봄'과 나희덕 시인의 '푸른 밤'은 떠나가는 봄날에 대한 내 마음인 듯하다. 봄은 비켜가도 만나는 단 하나의 애움길이었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이었다. 그래서 봄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우리는 내년 이맘때에 다시 만날 것이니까. 봄이 떠나가는 푸른 밤에 다시 봄을 생각한다.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

breezehu.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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