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공허와 권태 소설가 정영문 #1 이탈리아의 어느 호텔. 한 남자가 창가에 앉아 거리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고정된 그의 시선은 굳이 무엇을 찾고자 하는 목적도,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읽어내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방에서 창문 밖 세상과의 대화만을 나누던 그가 3일 후 방에서 나왔다. 자신의 몸이 부딪히는 어느 곳에서도 그 존재감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2 1991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머물게 된 프랑스. 그리 넓지 않은 공원 안에 자리한 연못에서 여러 마리의 학이 보인다. 미동도 없이 하루 종일 학의 몸짓만 바라보고 있는 어느 키 큰 한국인. 사춘기 무렵, 자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한없이 느껴졌던 권태로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3 서울대 심리학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