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책

이꽃님 장편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그날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난짬뽕 2024. 5. 1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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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날
최선의 선택을 한 걸지도 몰라.

그게 꼭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이꽃님 장편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청량하고 맑음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로 제8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지난주 도서관에 갔다가 어느 고등학교의 추천도서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손부터 먼저 반응했다. 

 

원래 빌려오고자 했던 책은 뒷전으로 제쳐두고 이 책에 사로잡힌 것은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라는 제목도 한몫을 했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기억들이 아직도 따스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꽃님 작가가 보여줄 또 다른 세계의 아름다움이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p 187......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나도 그럴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나무들이 조금 더 푸르른 여름날이 다가오면 이꽃님 작가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라는 책이 불현듯 떠오를 것 같고, 더운 날씨에 땀방울이 맺히면 뜨거움이 두려움으로 변했던 유찬이와 손바닥 하늘로 햇볕을 가려주던 하지오가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밤새 내린 비가 그친 새벽 출근길에 얼굴로 부딪히는 바람처럼 청량하고, 바위 사이를 돌아 흐르는 맑은 계곡 물소리에 취해 무심코 손을 담갔다가는 얼얼한 차가움에 깜짝 놀라 웃음부터 쏟아져 나오는 순수함으로, 탁해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 책이 나는 한층 더 정감이 가고 사랑스러웠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 이꽃님 장편소설
  • 글쓴이: 이꽃님
  • 1판 1쇄: 2023년 8월 18일
  • 펴낸곳: (주)문학동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줄거리

"내가 말했던가. 우리 엄마 열일곱 살에 나 임신했다고. 그때 아빠가 열여덟 살이었는데 배 속에 내가 있는 걸 알고는 무서워했대. 엄마는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아빠는 무서워서 벌벌 떨더래. 그게 불쌍해서 엄마 혼자 날 낳기로 결심한 거야."  p 109

 

엄마와 단 둘이 살던 하지오는 어느 날 갑자기 기억에도 없던 아빠와 살기 위해 지방 정주로 내려가게 된다. 미혼모였던 지오 엄마는 홀로 딸을 키워왔지만 대장암 수술을 앞두고 있었던 것.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빠에 대한 미움을 갖고 있었지만, 엄마의 호통으로 어쩔 수 없이 새 가정을 꾸린 아빠의 집에서 명목상 딸이 아닌 친척이라는 관계로 생활하게 된다. 

 

5년 전 집의 화재로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유찬은 그날 이후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게 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모두 들리면서 화재의 원인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그날의 사건을 묻어두기로 한 사실까지 알게 되며 괴로워한다. 

 

전학을 온 학급에서 만난 하지오와 유찬. 유찬은 이상하게도 지오와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아 편안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늘 지오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유찬이 처음에는 이상하기도 하고 불편하지만, 점점 둘은 서로의 아픔과 결핍을 털어놓으면서 어느새 의지하게 된다. 

 

엄마와의 관계가 전부였던 지오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불필요한 짐처럼 여겨졌었지만 아빠 엄마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부모를 잃은 날부터 세상과 담을 쌓았던 유찬은 마을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비밀의 진심에 다가가게 된다. 그로 인해 지오와 유찬은 한 걸음 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는 열일곱 살의 여름을 나게 된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책 속의 문장들

"그깟 마음 좀 들린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음? 네가 들린다는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알아?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하루는 조금 괜찮았다가,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미칠 것처럼 화가 나 죽겠다고."  p 57

 

게다가 걔는 너무 나랑 안 어울리잖아. 나는 딱 봐도 관리 안해도 쑥쑥 자라는 넝쿨 같은 스타일이라면, 그 애는~~~ 뭐랄까, 이파리 하나하나 닦아 가며 먼지 한 올 안 묻히고 물과 햇빛을 딱 정량만 주며 애지중지 키운, 그런 예쁜 꽃 같은 애랄까. 아니 뭐, 또 넝쿨이야말로 꽃이랑 잘 어울리는 식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p 66

 

"엄마가 갑자기 나더러 전학을 가야 한다는 거야. 아빠한테 가라면서. 무섭더라. 엄마가 날 버리는 걸까 봐. 근데 엄마가 아프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듣는데 되게 비참했다? 엄마한테 나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태어난 순간부터 짐이었는데 엄마가 아픈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짐인가 보다 싶어서. 누군가에게 짐만 되는 삶이라니, 내가 너무 불쌍하더라고."  p 85

 

"지오야. 엄마는 어려도 엄마야. 나이랑은 상관없어.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있을 땐 누구나 다 똑같아. 엄마가 아빠를 왜 미워하니? 불쌍하지."  p 87

 

"불쌍해. 너희 아빠는 너 예쁜 거 못 봤잖아.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도 못 들었잖아. 엄마는 너 자라는 거, 울고 웃는 거 다 봤어. 그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아? 세상을 다 준대도 안 바꿔. 시간을 돌려서 너 포기하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바꾼다고. 너는 그런 애야. 너처럼 예쁜 애가 크는 모습을 못 봤는데, 너희 아빠가 불쌍하지 안 불쌍하니?"  p 87

 

눈빛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다독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코치님은 새별 선배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선배를 쓰다듬었다. 기운 내라고 힘내라고, 이 자식아, 넌 할 수 있다고 그렇게 감독님은 눈빛으로 말하고 또 말하고 있었다.  p 131

 

구름이 자리를 옮기자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뜨거움에 햇빛을 피해 숨던 유찬이 떠올랐다.  p 149

 

이제 예전처럼 상처받고 아파하기만 하는 건 그만둘까 싶다. 미움과 분노는 때때로 찾아들겠지만 거기 매여 있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볼 생각이다. 까짓것, 못 할 것도 없지.  p 165

 

내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는 거. 그리고 나는 그걸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p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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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생각들

"네 선택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을 해야만 하면? 널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그 사람한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데 그 사정을 네가 모두 알게 된다면, 그러면 어떨 것 같아?"  p 139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도 그날 최선의 선택을 한 걸지도 몰라. 그게 꼭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p 177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으면서 만나게 된 저 문장들 앞에서 나도 순간 멈칫거렸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저러한 상황들을,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늘 후회와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부분들에 있어 그러한 사건들과 갈등에 대해서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하여 가볍게 치부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그 당시 그날에 우리들이 했던 결정들은 꼭 옳은 선택은 아니었을지라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토닥여주고 있는 듯하다.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하나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이꽃님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건넨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이 예뻤기 때문이었다. 미혼모의 딸, 화재로 부모를 잃은 아픔, 내가 허락하지 않은 용서, 남편의 딸과 함께 살게 된 배 속에 아기가 있는 부인, 술주정뱅이 아빠 밑에서 힘들게 살아왔고 이제는 어린 두 동생을 키우며 생활하는 마음 여린 유도부 선배, 그리고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엄마아빠가 된 고등학생 등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세상이 그려놓은 행복의 기준점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유쾌했으며 딱딱했던 나의 기분이 말랑말랑하게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주요 인물인 유찬과 하지오는 물론 경상북도 정주군 번영읍이라는 마을사람들 전체가 따스했고 속이 깊었다. 굳이 심술궂은 사람을 한 명 고르라고 하면 유도부 3학년 선배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괴로워하며 자신의 화를 엉뚱한 곳에 풀고 있는 안타까운 인물이었다고 변명해 본다. 

 

이꽃님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가 자신이 쓴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따스함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에 관한 내용은 책 속에서 직접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역시 '하지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오와 유찬의 열일곱 번째 여름은 그렇게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꽃님 작가의 책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방식들에 대하여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방식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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