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떠난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 마음속에 이미 그곳이 들어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하루 만에, 베네치아가 편하게 다가왔다. 많은 관광객들로 번잡했던 베니스의 시가지가 이른 아침의 풀잎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고요함과 맑은 상쾌함, 소소하지만 꾸밈없는 행복함이 거리마다 묻어났다. 꼭 해야 할 무엇인가의 목적도 없는 느린 여행자에게 있어 베네치아는 하루하루, 매 시간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정경들이 마냥 특별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한적한 골목 안의 작은 카페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잔은 커피 그 이상의 맛이었다. 진한 맛과 향이 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오히려 달콤하기까지 했다. 노천카페에 앉아 무뚝뚝한 빗줄기를 벗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