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스타벅스에서 만난 오드리 헵번이 되고 싶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난짬뽕 2023. 1. 12. 23:01
728x90
반응형

사진_ hu

반응형

 

오늘은 아침부터 외근이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회의가 있어, 일찌감치 9시경에 거래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스타벅스에 도착하여 자료도 정리할 겸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얼마 후 옆 자리에 서로들 친구 분이신 것 같은 네 분의 여사님들께서 자리를 잡으셨다. 

 

일부러 엿듣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워낙 말씀들을 재밌게 하시고, 어느 한 분이 말씀을 하시면 나머지 세 분께서는 장단에 맞장구를 치시면서 함께 까르륵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모습이 마치 여고생들의 모습처럼 예쁘게 느껴졌고, 특히나 아직 손님이 많지 않은 스벅을 휘어잡을 만큼 목소리들이 우렁차게 크셨다. 

 

얼핏 보기에도 연세가 조금 지긋해 보였지만, 서로들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이 학창 시절의 소녀들 같이 느껴졌다. 갑자기 내 바로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 나의 팔을 툭툭 치셨다. "있지, 이게 맞을까? 이거야? 우리 아들이 커피 사 먹으라고 해줬는데~~~ 이거만 보여주면 된다고 했는데~~~"라고 말씀하시면서 핸드폰을 내 얼굴 쪽으로 보여주셨다. 

 

할머니 1:) "야, 끝남아! 꼭두새벽부터 커피는 왜 사준다고 오라 가라 전화를 했냐?" 할머니 2:)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져서 저 할망구가 노망이 난나 봐. 새벽 됫바람부터 뭔 커피여." 할머니 3:) "난 달달한 커피로 사줘. 밤에 잠 안 오는 거 말고." 

 

아마도 내 팔을 툭툭 치신 분은 끝남이 할머니이신 것 같았다. 핸드폰 화면 속의 스타벅스 앱 위에 손가락을 얹어 놓으시고는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하셨다. 그리고는 친구분들의 요구사항들을 모아 카운터 앞으로 주문을 하러 가셨다. 그런데 얼마 후 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끝남아! 왜 커피 사러 가서는 전화를 하는겨? 뭐라고? 뭐땀시 직원을 바꿔? 그려. (아마도 카운터에 있는 직원 분과 통화를 하시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 뭐, 커피 안 든 커피요. 디 뭐요? 아니, 그거 말고 커피 안 든 커피 있다고 들었는디. 하여간 커피 마시고 밤에 잠 안오는 거 말고. 그려그려요. 달달한 걸로요."

 

그렇게 전화를 끊으시자, 옆에 계시던 두 분의 할머니께서 통화를 한 할머니를 타박하셨다. "너는 뭘 그렇게 까탈스럽냐. 그냥 커피 마시면 되지. 커피 안든 커피가 커피냐. 자고로 커피를 마시면 잠도 안 오고 해야지." 그러자 또 한 분의 할머니께서 말씀을 거들고 계셨다. "이제 눈 뜬 날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넌 꼭 밤에 잠을 자야 되냐. 난 이제 자는 시간도 아깝던디."

 

세 분의 친구분들께서 주거니 받거니 말씀이 오가고 있을 때, 카운터에 가셨던 끝남이 할머니께서 자리로 돌아오셨다. 할머니 1:) "니는 커피 사 온다면서 왜 그냥 오냐?" 끝남이 할머니:) "이~~ 커피 타는데 시간이 좀 걸린데. 좀 있다가 이름 불러준다네." 할머니 2:) "네 덕에 이런 데도 와본다. 근디 우리 여기에 너무 일찍 온 거 아녀?" 끝남이 할머니:) "알구, 이따가는 여기 직장 댕기는 사람들이 와서 앉을 데가 없댜아. 우린 시간도 많으니까 일찍 왔다 가야지." 할머니 3:) "잉~~`"

 

"엘리자베스 테일러 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님!! 음료 4잔 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님!!!" 할머니 1:) "아따, 뭔 이름이 저러냐." 할머니 2:) 저거 우리가 아는 그 배우 아니냐. 우리가 함께 봤던 그 영화 말여." 할머니 3:) "그게 말이 되냐. 이 세상 사람이 아녀." 끝남이 할머니:) "야, 그런디 왜 내 이름은 안 부르냐."

 

그 순간 네 잔의 컵이 놓인 쟁반을 든 직원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쟁반이 무거워서요. 그래서 제가 대신 들고 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엘리자베스 테일러 님!" 그 순간 네 명의 할머니들께서는 모두 놀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할머니 1, 2, 3:) "니, 이름 고쳤냐?" 끝남이 할머니:) "아니, 내가 무슨 이름을 고쳐. 다 늙어서."

 

끝남이 할머니께서 또 한 번 내 팔을 쿡쿡 누르시면서 당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내미셨다. 스타벅스 앱에 들어가 계정정보의 닉네임을 보여드렸다. 그곳에 쓰여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끝남이 할머니:) "이 놈이 미쳤구나. 미쳤어. 지 애미 이름을 이렇게 바꿔버렸어." 할머니 1:) "니 아들이 효도했네. 너 끝남이라는 이름 싫어했잖아." 할머니 2:) "이쁘다. 이름만." 할머니 3:) "영화배우 이름으로 바뀌었느니, 한 턱 내야겠다. 점심도 네가 쏴라."

 

세 할머니들의 장난스러운 말씀에 끝남이 할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이왕 바꿔주려면 오드리 헵번으로 할 것이지. 난 엘리자베스 테일러 스타일 안 좋아해. 니들 보기에도 나는 오드리 헵번에 가깝지 않냐?" 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서 만난 그 유명한 여배우, 엘리지베스 테일러. 아마도 운이 좋았으면, 나는 오드리 헵번의 옆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오드리 헵번이 생각나는, 기분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 

 

피키 블라인더스, 매혹적인 각본과 완성도 높은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 매혹적인 각본과 완성도 높은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각본, 음악, 의상, 미술, 헤어스타일의 매력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 Peaky Blinders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는 매혹적인 각본과 음악, 의상 및 헤어스타일, 그리고 미술적인 측

breezehu.tistory.com

파인딩 포레스터, 차별과 편견 그리고 트라우마와 우정

 

파인딩 포레스터, 차별과 편견 그리고 트라우마와 우정

차별과 편견, 그리고 트라우마와 우정 파인딩 포레스터 창문을 통해 망원경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은둔 작가와 재능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미래에 대한 꿈조차 꾸지 않는 소년과의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