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법정 스님의 무소유, 비워내며 가볍게

난짬뽕 2023. 6. 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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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범우사, 1999) 중에서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스인가 하는 비료를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 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됐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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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hu

지난 주말 집안 대청소 겸 정리정돈을 했다. 비워내고 버리고, 그렇게 내 시야에 놓였던 물건들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책상 위에서, 방 모퉁이에서, 현관 서랍에서 잠들고 있던 소유의 무게들을 덜어내자 집안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1999년이었던가. 회사 선배가 어느 날 책 한 권을 선물로 건네줬다. "한꺼번에 다 읽지 말고, 하루에 몇 문장씩만 읽어라."는 메모가 책장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고, 밤샘을 밥 먹듯이 하면서 열정도 넘쳤던 하루하루였다. 

 

동일한 책, 같은 문장.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은 그 때와는 많이 다른 듯하다. 이제는 조금씩 가볍게 살아가고자 한다. 비워내며, 보다 가볍게. 오래된 그 책,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읽으면서 이제서야 나는 그것의 깊은 의미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욕도 마음도 비울수록 내 삶은 더욱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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