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꿈의 씨앗이 돋아나다, 피아니스트 김예지

난짬뽕 2021. 1. 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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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피아니스트를 만난 것은 2015년 10월 그녀의 모교인 숙명여대에서였습니다. 그날 안내견 찬미와도 인사를 나눴는데요. 우리가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조용히 지켜보는가 싶더니, 마음이 편한지 누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예지는 요즘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 방송에서 나온 모습을 보니, 안내견 찬미가 아니라 조이라는 친구와 짝을 이루고 있더라고요. 그녀가 발의한 법안 중에는 '점자법' 개정안도 있는데요. 오래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악보를 고민해왔던 피아니스트 김예지를 만나봅니다.

 

 

피아노로 여는 세상, 꿈의 씨앗이 돋아나다

피아니스트 김예지

 

 

헬렌 켈러는 말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꿈이 없는 것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 김예지에게는 '시각장애'라는 비켜 가지 못한 시련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꿈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이었기에, 힘들고 극복해야 할 일도 적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세상을 향해 건네는 희망의 노래가 있다면, 언젠가는 보이지 않던 씨앗이 얼굴을 내밀며 열매를 맺을 날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김예지는 오늘도 피아노로 노래한다. 다른 사람들은 전할 수 없는, 김예지만의 음악나무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

글 엄익순

 

 

스스로 시창청음으로 음악과 놀다

아침부터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보건소로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진료소장의 어린 딸의 노랫소리가 좋았다. TV에서나 듣게 되는 웅장한 가곡에서부터 제목도 잘 알지 못하는 클래식 음악가의 자장가에 이르기까지 늘 다양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비 내리는 영동교'나 '앵두나무 처녀' 등과 같은 트로트 신청곡까지 멋지게 연주했고, 심지어 카세트테이프로 가요를 들려주며 가르쳐 달라는 부탁에 키보드 연주를 하며 직접 노래 부르는 것을 지도하기도 했다. 네 살 무렵, 김예지의 모습이다. 

직장에 나가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를 돌봐주셨던 할머니는 평양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실 때에도 늘 클래식을 즐겨 들으셨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생후 8개월 때부터 김예지에게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직접 불러주셨고, 매일 많은 클래식 작곡가의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셨다. 

사진 이준용

 

"할머니 덕분에 그때부터 음악이라는 것이 참 아름답고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두 살 때 시력을 잃은 이후 아무래도 밖에 나가 노는 것이 힘들다 보니까 집에서 혼자 놀게 됐는데, 장난감도 제약이 있잖아요. 그래서 아기 때부터 실로폰이나 멜로디언, 키보드 같은 악기랑 친하게 지내게 되었어요."

 

실제로 피아노를 만져본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좋아 발걸음을 옮겨 손을 뻗었을 때, 피아노가 마치 거인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렇게 큰 악기를 만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키보드 연주를 해보았지만, 왠지 피아노는 그 울림이 보다 더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는 교습소마다 선생님들은 그녀를 보고 당황했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을 가르쳤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에 쉽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불러주시는 노랫가락을 머리에 담아 똑같은 음정으로 키보드 건반을 눌렀듯이, 학원 선생님께서 먼저 연주를 해주시면 잘 듣고 외워 그대로 연습했다. 점차 실력이 높아지면서부터는 CD에 녹음된 곡을 듣고 멜로디를 받아 적으면서 통째로 곡을 외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시창청음 공부를 스스로 해나간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꼭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 길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예중, 예고를 가기 위한 입시공부를 따로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혼자 매일 열심히 연습했고, 어느 곳에서든지 연주할 기회가 있으면 꼭 참여했다. 그녀가 다니던 국립서울맹학교 선생님들께서는 김예지의 음악적 재능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선생님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시각장애인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어 힘들다'는 거절의 한마디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장애인들을 위한 예술봉사를 하던 김미경 선생님을 만나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게 된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조급함보다는, 하고 싶은 음악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는 감사함이 더 컸다. 음악 그 자체를 좋아했고, 연주하는 것을 즐거워했던 김예지는 숙명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 석사까지 마친다. 

"대학교 3학년이 되자, 문득 제가 처한 현실과 부딪힌 거죠. 음악은 계속하고 싶은데, 내가 피아노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됐어요.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음악선생님밖에 없더라고요. 직업도 갖고, 좋아하는 음악도 놓지 않는 길이. 그래서 교육대학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갈수록 오롯이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하고 싶은 갈증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결국 용기 있게 유학을 결심,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사와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마치며 한층 깊게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다.

 

"정말 유명하고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아요. 그 가운데에서 저의 존재의 가치는 다른 사람이 아닌 김예지만이 전해드릴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음악은 주관적인 것이잖아요. 모두들 다 똑같은 음악만 하면 굳이 연주회장에 갈 필요도 없고, 음악가가 존재할 필요도 없죠. 왜냐하면 컴퓨터 음악이 더 완벽하니까요. 인간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의 예술, 그것은 사람밖에 할 수 없잖아요. 제가 살아온 조금 다른 삶, 그것을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물론 무대뿐만 아니라, 지금 걷고 있는 음악의 길에서 제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때로는 힘들고 두려울 때도 없지 않지만, 좌절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주어진 삶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단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저의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수 있는 연주회를 많이 하고 싶어요."

 

점자악보를 구하기도 힘들어, CD에 수록된 곡을 들으면서 작품을 외웠지만 일찍이 육영음악콩쿠르 대상을 비롯하여, 매헌 콩쿠르 대상 및 교육부장관상, 한국방송공사 주최 음악콩쿠르 Young Challenge 수상, 한국음악학회 주최 학생장학콩쿠르 3위, 피아노학회 콩쿠르 전체 3위 입상 등 탁월한 연주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학 졸업 시에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우수 인재 명예대통령상' 수상과 제2회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 아티스트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체코 야나첵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본 뉴 재팬 필하모닉,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과 미국, 홍콩, 서울에서의 <뷰티플 마인드 콘서트> 등 다양한 연주활동과 2004년에 결성된 덕영트리오의 창단 멤버로 국가유공자나 미혼모,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뜻있는 연주회를 펼치고 있다. 

 

"음악은 세계 공통어잖아요.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이 음악 안에서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취지에서 2013년 'YOUnIon 앙상블'을 직접 창단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연주회를 선보이고 있다.

 

먼저 떠나보낸 안내견 단짝 '창조', 이제는 '찬미'와 함께

국내에서는 점자악보를 구하기도 힘들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점자악보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라고 한다. 점자는 상·하로 표현되는 오선악보처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코드도 풀려 있고, 연결해서 연주하라는 표시도 나타낼 수 없다고. 물론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워낙 청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청음을 통해 작품을 외우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작곡가가 말하고자 하는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접근하기는 어렵다. 점자악보의 규칙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도 간과해버릴 수 있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오류도 범할 수 있다고 한다. 

"점자악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3D 촉각 악보는 선이나 표시의 높이가 다르고, 그 안에 그림으로도 표현이 가능하죠. 그래서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악보를 만지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또한 눈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들도 함께 사용할 수 있죠. 특히 글씨를 모르는 취학 전 아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중도 실명하신 분들은 점자 읽기를 힘들어하시는데, 그런 분들께도 도움이 될 거고요."

사진 이준용

 

그래서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3D 촉각 악보.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되자, 세계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아졌다. 해외 방송사와 국제 학회, 과학기술 관련 기관, 심지어 구글 등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3D 프린터와 악보를 결합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하게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전 세계적인 새로운 시도라는 극찬을 받으며 미국에서 특허까지 받았다. 

 

"향후 실제 적용이 언제가 될지, 아니면 제가 없더라도 언젠가는 꼭 만들어졌으면 해요. 아무래도 수요가 적어 경제적 이윤을 고려한다면 제약이 있겠죠.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가슴속에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피아니스트 김예지는 밝고 평화롭지만, 왠지 아름다운 슬픔이 묻어나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껴지곤 했다. 그녀가 슈베르트의 작품을 피아노를 통해 마음껏 노래 부르고 있을 때면, 그녀의 동반자인 안내견 찬미는 김예지의 연주가 좋다고 생각이 들면 편안하게 잠을 자기도 하지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아노 옆에서 한숨을 쉴 때도 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는 피아니스트 김예지. 언제나 피아니스트로서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그녀의 연주는 늘 사람을 향해 있다. 그 고민의 끝에서 오늘도 희망의 꿈들이 싹트고 있다. 

Vol. 99 NOVEMBER 2015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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