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클래식의 섬에서 찾은 희망의 선율,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난짬뽕 2020. 12. 1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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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김종훈 바이올리니스트를 처음 만난 것은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어느 음악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안내를 받아 무대에 선 그의 모습에 놀랐고, 곧이어 연주된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음악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2013년 7월 말 인터뷰를 위해 예술의전당 가까이에 위치한 요요마의 키친으로 향할 때 저의 마음은 이상하게 복잡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연주가,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감동을 선사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그는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클래식의 섬에서 찾은 희망의 선율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최고의 실력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다는 벅찬 설렘을 느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지 못했던, 더욱이 클래식 음악계에서조차 편견 속에 가둬버린 아름다운 선율의 울림.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의 음악이야기는 이제부터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글 엄익순 사진 이준용

 

음악가로서의 김종훈을 만나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전곡을 단 4회의 공연 만에 연주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독일 Axel Springer 수상 등 해외에서도 그 연주 실력을 인정받은 김종훈은 청주사대 콩쿠르 대상, 부산 콩쿠르 1위, 동아 콩쿠르 3위 등에 입상하면서 음악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고교 3학년 시절, 부산 콩쿠르 무대에서 영광을 함께했던 그의 악기가 연습용 바이올린이라는 것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바이올린과 대학교 4학년 때까지 함께했죠. 사실 이후로도 좋은 악기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랫동안 보통의 악기를 가지고 연습하고, 연주하고, 공부해서 그런지 어떤 악기를 잡아도 제 안에서는 저만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게 저의 장점이기도 하죠. 자기 음악 세계의 연마가 악기 탓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설령 그리 좋지 못하더라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마도 좋은 결실이 맺어질 겁니다."

2013년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8월호 중에서

 

한양대학교 음대를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Hanns Eisler 국립음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며, 그로 인해 독일 대통령궁에서의 초청연주로 한국인 음악가로서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 당시 졸업연주를 마치고 최고 성적을 받았을 때, 그를 지도했던 교수는 김종훈이 이렇게 잘 해낼 줄 몰랐다는 놀라움을 전했다고 한다. 연주자로서의 모든 조건에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그에게 건넨 스승으로서의 찬사였다.

 

"사실 유학을 가서 그 선생님을 처음 대면했을 때, 저한테 말씀하시더라고요. 누구든지 잘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고요. 낯선 곳에 유학을 가서 모든 것이 걱정이었죠. 공부는 잘할 수 있을까, 졸업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게 하신 그 말씀이 희망이 되어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적지 않았지만, 노력한 만큼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깨달았어요. 선생님도 걱정하셨고, 나 역시 스스로를 믿지 못했던 것 같은데 좋은 결과가 있어 정말로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나는 안 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죠. 그때마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끝까지 달려갔고, 그 모든 두려움을 넘어서서 졸업 연주를 하던 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게 제 기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도전할 권리가 있다

바이올린을 접한 것은 그의 나이 8세 때.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음악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사춘기 시절이었다. 많이 우울했던 사춘기 시절에 바이올린은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친구였다.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학창 시절 자주 친구와 함께 음악감상실을 찾으셨고, 월남전에 가셨다가 돌아오실 때에도 전축을 사 오실 정도였다. 어머니 역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늘 그의 집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점자 악보는 바로바로 볼 수가 없어요. 점역(말이나 보통의 글자를 점자로 고침)을 해야 되거든요. 악보를 외워야 연습할 수 있으니까, 작품을 만날 때마다 이를 악물고 외웁니다. 화성이나 조의 변화 등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사실 악보 문제는 지금까지도 힘든 부분입니다. 다른 연주자들이 쉬는 시간에, 그들이 잠들어 있는 밤에도 저는 따로 시간을 내서 악보를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세세한 사항들을 관찰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연주를 들으면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답답하죠. 때로는 남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실수도 하게 되고요. 그래서 늘 책도 많이 읽고,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한답니다. 그런데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렇게 헤매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모두 유용한 자료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실수도 할 수 있고, 저런 오류도 범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이렇게 극복해 나가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 다행이에요. 시행착오를 거친 저의 경험들을 제대로 활용하여 좋은 방향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명사 초대석 인터뷰로 김종훈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특별한 연주가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너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음악가가 되는 것을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얘기했다면 아마 시작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오늘날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자기가 원하고, 모든 인생의 열정을 쏟아부을 결심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재능은 다르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욕구를 내면에 가지고 있잖아요. 장애가 있건, 집안 형편이 가난하건, 그러한 조건들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도전할 권리가 있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으니까요. 어려움에 직면해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자신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세요."

어려움에 직면해도 흔들리지 않고 망설임 없이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김종훈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여러 직업군에서 성공하여 사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 못지않게 '올인'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장애인 스스로는 물론 사회에서 또한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 연주가가 단지 행사 위주의 비교적 쉬운 곡들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음악가로 성장하여 비장애인 연주가들과 함께 협연하고, 비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할 때 비로소 장애와 상관없는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결같이 김종훈을 최고의 스승으로 손꼽는다. 자신들이 그동안 만났던 어떤 선생님들보다도 더 부드러운 가운데 섬세하고, 때로는 깜짝 놀랄 만큼 예리한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김종훈을 우리나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음악으로 세상을 보다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김종훈은 '찾아가는 음악회'를 마련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기도 했고, 교도소에서도 연주했다. 2005년부터는 분당 서울대병원과 한양대병원에서 매달 정기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자신에게 마치 친구같이 다가왔던 음악을, 이제는 내가 아닌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역시 음악가가 해야 할 의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도 음악가라는 직업의 한 단면이 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음악이 그들의 마음에 좋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이 김종훈의 소망이다. 더불어 그는 특별히 바이올린을 공부하고자 하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그들을 위한 음악교재를 만드는 것이다. 항상 머릿속에 악보를 외워야만 연습할 수 있었던 일이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지 않아도 자기 나름대로 악기를 연마할 수 있는 그런 교재를 만들고 싶습니다. 악보 없이 스스로 연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음계만 잘 활용해도 여러 가지 연습을 할 수 있거든요. 또 제가 그동안 나름대로 터득했던 연주법이나 중요한 초점들을 말로 설명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교본을 완성하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비단 행사용 음악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활동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정신적인 가치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최근에서야 '바이올린 연주가 이런 것이다'라고 깨닫게 되었다는 김종훈. 그래서 그는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꾸준하게 연주 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걸어왔던 수많은 어려움들보다, 어쩌면 무대 위에서 극복해야 할 힘든 상황들이 더 많을지라도 평생 음악의 깊이만을 향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배재영 플루티스트, 유지수 피아니스트와 함께 미라클아이즈 트리오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생활해온 것 같은데, 사실 아들한테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 활을 들지 못할 때까지 쉼 없이 연주하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정신적인 가치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가로서의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김종훈을 시각장애인 연주가로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어떤 연주가들보다도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훌륭한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보는 김종훈은 클래식의 섬에 감춰져 있던 희망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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