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호기심 가득한 상상력, 피아니스트 김주영

난짬뽕 2021. 1. 1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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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EBS, 케이블 채널에서 클래식 음악 해설자와 진행자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김주영 피아니스트를 만난 것은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김주영 피아니스트의 전화를 받고, 저와 사진 기자는 동부이촌동 약속 장소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날씨마저 너무 추웠고, 가족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던 터라 자꾸만 지체되는 시간에 속이 많이 탔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역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호기심 가득한 상상력, 음악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

피아니스트 김주영

 

 

피아노 연주가이면서, 여러 음악회에서의 클래식 음악 해설자이자 때로는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김주영. 그가 꿈꾸는 음악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주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글 엄익순

 

 

호기심, 음악 감상의 첫 걸음

"요즘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몇백 년을 이어져 오면서 여러 세대를 거쳐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실제로 몇십 배, 몇백 배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요즈음 해설이 있는 음악회가 자주 열리는데, 음악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감상하기에 낯선 음악을 굳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죠. 오히려 이 곡이 다른 연주곡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인기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여주는 것이 해설자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작곡가의 그 작품은 이러한 곡이라는 설명만 해줄 뿐, 그 음악을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KBS <예술극장>을 비롯하여 KBS 1 FM <저녁의 클래식>과 <실황 음악회>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클래식 음악 해설자로 출연하였으며, 케이블 채널 예술영화 TV에서 <김주영의 영 클래식>과 EBS <김주영의 행복한 음악 읽기>, 그리고 국내외 연주자들의 공연 실황을 소개하는 FM <KBS 음악실>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피아니스트 김주영. 그가 연주가로서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매체를 통해 음악 애호가들과 만남을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진 이준용

 

"사람들이 저희 해설을 듣고 난 후, 정말 그 곡이 좋아져서 앞으로 계속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으로 제 역할에 만족하는 것이죠.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멋있고 재미있는 분야인지 알게 되어 계속 흥미를 느껴 음악을 듣는 것이 취미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고요.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이 들게 하면 그것은 정말 해설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과 잘 만나기 위해서는 눈으로 악보만 보고, 귀로 음악만 들어서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그 곡이 작곡된 시대와 배경도 알아야 하고, 작곡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한 그 곡이 만들어진 환경이 어떠했는지도 함께 둘러보아야 마음에 와 닿을 부분이 커진다고 그는 말한다.

 

"만약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의 어떤 작곡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최소한 불어 몇 마디나 혹은 프랑스의 역사나 그 나라의 음악 외에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면, 어떻게 그 음악이 재미있을 수가 있겠어요. 음악을 아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이죠."

 

24시간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내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연주와 강의가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음악회 <김주영의 클래식 인터뷰>와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정오의 클래식>을 진행 중인 김주영은 '아트엠 콘서트'의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상명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가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점은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라'는 것.

"기존의 지식만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현실은 아니잖아요. 계속 무엇인가가 하고 싶고, 더 많이 알고 싶고, 그래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학부생들의 경우 피아노 연주만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잖아요. 사회에 나가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틈새시장을 찾아야 합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능력에 글을 꽤 쓸 수 있다면 기획사나 잡지사에서 일할 수도 있고, 언변에 능하다면 방송 관련 분야와도 접목시킬 수 있겠죠. 자신에게 다가올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익혀놓아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필요해서 준비하려면 늦어요. 저는 그래서 늘 학생들에게 상식을 넓히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활짝 열어놓으세요. 그리고 상식을 넓히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뿌리가 튼튼한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는 대학원 강의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음악학원 원장들에게도 조언을 덧붙인다. 학생들에게 50개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500개만큼의 자양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70개밖에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50개를 가르치려 한다면 어떠할까. 김주영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호기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다. 무엇인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시간을 투자하라고. 피아노를 전공했다 하더라도, 피아노 음악만 알고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라는 것이다. 물론 생활하다 보면 전공 이외의 지식들이 절실하게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주변 지식들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실히 다르다고 한다. 

 

"만약 하루에 5~6시간 피아노 연습을 하는 학생이 있다고 봅시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에 5~6시간만 음악가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24시간 음악가가 되어야 합니다. 하물며 잠자는 시간까지도요. 그것이 저의 목표이자, 제가 음악가가 된 이유 역시 그거 하나입니다. 음악을 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갖게 되면, 음악하고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저는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었죠."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틴에이저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김주영은 서울대 음대 졸업 후, 러시아의 제1호 한국 음악 유학생으로 국립 모스크바 제1회 프로코피예프 예술 기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의 영광을 안았고, 프랑스 제9회 Paris Grand Concours Internationale de piano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기획연주로 독주무대를 펼쳤는데, 특히 슈베르트 200주년 기념 페스티벌 독주회와 쇼팽 서거 150주년 기념 녹턴과 폴로네이즈 전곡 연주회에 이어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마주르카 전곡을 연주한 적도 있다. 

 

또한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프로코피예프 '전쟁 소나타' 전곡 연주 등을 국내 최초로 시도하여 뜨거운 관심을 모았으며, 차이코프스키의 '연주회용 환상곡'과 알반 베르크의 '실내 협주곡', 스트라빈스키의 '카프리치오' 한국 초연 무대에서 협연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가 이루고 싶은 음악적 계획들은 무엇일까. 

 

"저의 연주를 통해 다른 연주가들, 혹은 감상하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이 음악에 관한 관심을 더 갖게 되는 동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2010년에 연주했던 마주르카 전곡은 쇼팽의 작품 가운데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곡이라고 할 수 있죠. 피아니스트들이 잘 다루지도 않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통해 쇼팽의 작품 중에 몰랐던 이 곡이 정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들 말씀하셨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 가운데 좋은 곡들이 참 많거든요. 저는 피아니스트로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새로운 레퍼토리들을 찾아내어 알리고자 합니다."

 

클래식 음악계, 뿌리 깊은 나무를 키워라

김주영은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지향해야 할 바로 넓은 식견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 애호가들은 클래식에 관한 호기심으로 음악 이외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상상력을 넓히라고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이 어떤 시대에 살았고,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 주변에서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함께 알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음악가의 연주라 할지라도 음악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겠죠. 어떻게 그런 것까지 모두 공부하라는 말이냐고요.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대단히 소중한 것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더 비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비단 음악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교양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있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연세대와 단국대, 건국 영재아카데미와 고양예고, 선화예고, 서울 바로크 아카데미 등에도 출강 중인 김주영은 고등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좁게 입시만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한 곡을 외워서 대학입시에 성공하는 것만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은 누구나 치르는 관문에 불과하다.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시험을 치르고 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혹자는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패러다임도 바뀔 것이라고 봐요. 금방은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겠지만, 넓게 그리고 길게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매서운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연주가이면서 해설자와 진행자의 역할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건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클래식 음악 새싹들이 더 높이, 더 큰 미래를 준비하는 길목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김주영의 새로운 행보에 대해서도 궁금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Vol. 77 JANUARY 2014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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