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클래식 애호가들의 멘토, 안동림

난짬뽕 2020. 12. 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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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명반' 시리즈 저자로 유명한 안동림 선생님은 영문학자이자 고전 번역가, 소설가, 출판 기획자이며 음악 평론가이셨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장자>라는 책을 통해서였지만, 직접 만나 뵙게 된 것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2011년 5월 현대음악에서 출판되는 음악잡지의 인터뷰를 위해 선생님 댁으로 찾아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사모님께서 정성스럽게 차려놓으신 다과상이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머물었으면 해서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외출하셨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여러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던 바탕에는 모두 사모님의 사랑과 내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음악과는 관계가 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가끔씩 시간이 맞을 때마다 음악인들을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제가 외고로 선생님의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신 선생님께서는 당신 또한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면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인터뷰 이후로 선생님께서는 가끔씩 저에게 전화를 주셨고, 그 통화의 시작은 음악가로 시작하여 음악 이야기를 끝났습니다. 별로 알고 있는 지식 배경은 없었지만, 단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음악잡지의 외고를 쓰는 저를 격려해주시면서 함께 나눈 음악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으며, 행복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거지 해장국을 좋아하신다면서 저에게도 사주셨는데, 선생님과 함께 먹은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끔씩 우거지 해장국을 먹으면서 음악 이야기를 나누자는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 이후, 3년이 흐른 2014년 7월 선생님은 평안히 영면하셨습니다. '번거롭지 않게, 소박하나 따뜻하게' 후사를 부탁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고스란히 선생님의 생전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인문학자이신 선생님의 가장 아름다운 벗은 음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생님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영원한 멘토이십니다. 푸르트뱅글러를 좋아한다는 저에게 당신 또한 그러하다며 웃으셨던 선생님이 오늘은 많이 그립습니다. 

 

 

아름다운 동행, 음악은 나의 벗

클래식 애호가들의 멘토

안동림

 

클래식을 처음 접하거나 즐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음악적 멘토로 잘 알려져 있는 안동림 선생이 최근 오페라의 백미인 아리아 명곡들을 모아 <내 마음의 아리아>라는 책을 선보였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약 2년간 연재된 내용을 엮어 만들어진 이 책에는 주옥같은 아리아 63곡에 관한 원문과 번역을 비롯하여 명가수의 에피소드까지 함께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저명한 클래식 칼럼니스트로도 손꼽히는 선생의 음악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글 엄익순 사진 김현

 

 

나의 영원한 화두, 음악

청주대 영문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한학자이자 소설가, 출판기획자로도 유명하다. 국내 최초로 전편 완역한 <장자>는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번역본으로 꼽히며, 불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벽암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주석과 해설로 인문학의 기본 장서가 되었다.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및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 역시 클래식 음악 감상서의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20세기 클래식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휘자 34인을 소개한 <불멸의 지휘자>가 2009년 발표된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그의 음악적 필체는 여전히 날카롭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가끔씩 생각해 보곤 해요. 내 인생에 있어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누구든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길 바라지요. 그런데 그것은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만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닐 거예요. 정신적 행복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악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미술이나 문학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음악은 영혼을 맑고 아름답게 정화시켜 주는 가장 큰 힘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곧 음악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Vol, 47 JULY 2011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클래식 명사 초대석 中

 

선생께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음반들은 LP와 CD 등을 포함하여 약 1,500장가량 된다고 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즐겨 들었던 좋은 추억이 있는 음반들을 선뜻 건네주곤 한다.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반만 모아놓기보다는, 남들과 함께 음악의 감동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바로 교육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녀들의 음악교육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음악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가까이 두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측면에서는 정말로 좋은 사회현상이다. 

"음악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은 물론 감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골고루 접해보아야 하죠. 단순히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만을 키우는 것이 음악교육이라 여긴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음악 훈련소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래서 안동림 선생은 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작곡가나 연주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그 곡에 숨겨진 재미있는 일화들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준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음악잡지가 지향해야 할 점도 매우 뜻깊다. 

 

"음악잡지는 계몽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음악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재들이 많이 다뤄졌으면 좋겠어요. 음악회 역시 해설이 깃든 작은 음악회들이 많이 생겨 사람들이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음악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인생의 즐거움, 모차르트와 푸르트뱅글러

"모차르트는 하늘이 내고 다시 하늘이 거둬간 사람이에요. 그의 악보를 보면 거의 고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죠. 베토벤은 악보가 찢어질 정도로 지우고 다시 또 지우고... 베토벤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많이들 좋아한다면, 모차르트는 마치 숨을 쉬고 물을 마시듯 곡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제가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이유요? 저도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정말 모차르트가 좋아요."

선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인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하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수줍어했다. 그가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책상 한쪽에 한 뼘 크기만 한 모차르트의 석고상이 놓여 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평양이 고향인 그에게 있어 음악은 향수를 달래주는 벗이자, 마음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집안에 있었던 낡은 유성기를 통해 아버지 곁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중학교 1학년 때 그것이 어떤 곡인지도 모른 채 운동장에서 응원가로 부른 '투우사의 노래', 그리고 가사는 잊어버리고 멜로디만 흥얼거렸던 레하르의 '즐거운 과부'는 지금까지도 자신도 모르게 곧잘 콧노래로 나온다고 한다. 그때의 추억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음악을 좋아하게 된 기초가 된 것 같다는 그의 표정이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를 닮아 있다.

 

"지금까지도 푸르트뱅글러만큼 정열적이고 색다른 울림을 창조해내는 지휘자는 없었다고 생각돼요. 가만히 눈을 감고 그가 녹음한 곡들을 듣고 있으면, 왠지 남모를 경외감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마법에 빠져드는 기분이랄까요."

 

클래식 음악의 종착역, 오페라 아리아

모차르트와 푸르트뱅글러는 그의 인생에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한 소중한 벗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 그것은 오페라 아리아였다. 온갖 삶의 애환을 가슴 저리게 노래한 아리아는 지병처럼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오페라는 삶과 죽음, 갈등과 애증의 통속적인 이야기를 담은 유행가 같은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년 넘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바로 아름다운 아리아 때문일 거예요. 삶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것이죠. 체계적으로 클래식을 접해보고 싶다면 우선 이해하기 쉬운 관현악곡부터 시작하여 협주곡, 교향곡, 실내악, 성악, 그리고 오페라로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클래식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겁니다."

 

그는 최근에 출간한 <내 마음의 아리아>에서 이러한 오페라 아리아에 대한 애정을 듬뿍 풀어놓았다. 특히 클래식 초보자들에게는 푸치니의 <라보엠> 중 '그대의 찬 손'과 '제 이름은 미미입니다'를 꼭 들어보라고 권한다. 특히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오페라가 개화기 이후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통용되어 온 아리아에 대한 오역을 최대한 원전에 근접하게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베르디의 <아이다> 중 '청아한 아이다'가 아닌 '거룩한 아이다'로,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를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로 바꾸었다.

 

또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어 표기를 현재 통용되는 맞춤법에 따르지 않고 원어 발음에 가깝게 썼다. 예를 들어 '필하모니'를 '휠하모니', '호프만의 뱃노래'를 '호후만의 뱃노래' 등으로 고친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자청한 것은 독자들이 클래식 음악과 아리아의 원래 내용과 참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오페라에서 아리아는 감성에 호소하는 시어와도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바꾼 어휘 하나가 작품의 흐름을 끊을 수도 있고 감상의 묘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안동림 선생은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전문 음악인도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소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멘토로 대변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걸어온 음악적 발자취를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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