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아버지 저물어가는 어느 해 봄날, 나의 아버지는 외손자를 키우고 계셨다. 결혼 전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자식을 맡기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건만,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역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기 때문이었을까. 이제 조금은 즐길 수도 있는 노년의 여유로움을 시집간 딸이 빼앗고 있는 것이다. 친구분들과의 모임도, 개인적인 취미 활동도 마음껏 누릴 수 없는 아버지의 현실. 하루 종일 졸졸 그림자가 되어 쫓아다니는 네 살배기 손자 녀석과 함께 아버지의 하루가 밝아오고 다시 저물어간다.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한 밖에서의 저녁식사. 개구쟁이 손자를 돌보시느라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한 자리라고 말하면서도, 구워지는 고기는 내 자식 수저 위에 올려놓는 나의 이중성에 순간 놀라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