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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이탈리아 베네치아 19

익숙한 것들과의 짧은 이별, 그 잠들지 않을 이야기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골목은 다르다. 그곳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일상에서 조금 더 먼 곳으로 떠났던, 지난 6월의 베네치아로의 여행은 낯선 곳에서의 특별하면서도 어쩌면 전혀 특별하지 않았던, 반복되는 익숙한 것들과의 짧은 이별이었다. 교차하는 긴장과 설렘 속에서 나의 내면은 한층 단단해지고, 보다 유연해지기도 했다. 현실 속에서 잠들어 있던 새로움에 대한 갈증들이 하나둘씩 깨어났고, 잘 보이지 않았던 생각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미로 같은 베네치아의 골목들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었을 때에도 오히려 한동안 풀리지 않았던 얽혀 있던 복잡한 사고의 실타래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뜻밖의 선물 같은 값진 시간이었고, 일상에 쫓기던 나에게 마음의 여유와 소소한 기쁨은 ..

여행의 묘미,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으로 가기 위해 바포레토(수상 버스)를 타기 위해서 승선장으로 향했다. 국제공항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아담한 규모인 마르코 폴로 공항은 내가 출발하는 이곳 베네치아 본섬에서 북서쪽으로 약 1.3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나는 어제 공항 입국장 안에 있는 대중교통 매표소 앞의 자동판매기에서 바포레토 표를 구입했었다. 수상 버스를 탈 때에는 승선장 앞에서 노선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선 번호와 방향에 따라 승선장이 다르기 때문인데, 승선장 이름은 A, B, C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잘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인공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바포레토는 대운하를 다니는 교통수단인데, 운행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듯했다. 물론 바포레토보다 조금 빠른 수상 택시 역시 마찬가지였..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만찬, 알라 폰타나의 참치 스테이크와 라비올라

수상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를 타러 가기 전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어야 했다. 청동 코를 가진 조각상을 설명해주신 아저씨께 "이 동네는 참 조용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이 구역이 바로 게토라고 알려주셨다. '게토(ghetto)'는 예전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베네치아 정부는 유대인들이 청동 주물공장 근처에만 거주하게 했는데, 바로 오늘 내가 걸었던 이곳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유대인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였으나, 그 숨은 뜻은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오직 3개의 다리를 통해서만 외부로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건너온 다리가 그중의 하나였나 보다. 베네치아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이곳에서 작은 ..

섬세한 문고리 장식들의 비밀스러운 깊이 있는 울림들

베네치아의 거리에서는 자동차의 바퀴도 볼 수 없고, 현대식 고층 빌딩도 없으며, 스타벅스의 커피도 마실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많이 불편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좀 더 베네치아와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던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베니스에 많은 건축물을 남긴 팔라디오 등을 제치고 안토니오 다 폰테가 완성시킨 리알토 다리를 비롯하여 두칼레 궁전과 피옴비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이외에도 지옥의 다리 같은 별난 이름의 다리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두 발로 열심히 디디다 보니 베니스에서 유일하게 난간이 없는 다리도 건너 보았고, 주먹의 다리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이곳 사람들에게 ..

코로나 검사? 놀란 가슴은 날개 달린 사자상 옆에서 젤라또로 식히기

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마시고 나니, 어느새 비가 내리던 거리에 햇살이 비쳤다. 그렇다면 이 순간 바로 해야 될 것은, 다시 걷는 것이다. 따사로운 태양이 언제 비가 내렸냐는 식으로 지면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이럴 때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오홋~~ 목표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외관이 멋스러운 이 건물 입구에서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필시 이 건물 안에는 또 어떠한 풍부한 볼거리들이 숨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거침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이 예감은 무엇일까. 입구를 들어서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아름답고 경건했던 베네치아의 숨은 보석, 산티 아포스톨리 성당

새롭게 떠난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 마음속에 이미 그곳이 들어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하루 만에, 베네치아가 편하게 다가왔다. 많은 관광객들로 번잡했던 베니스의 시가지가 이른 아침의 풀잎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고요함과 맑은 상쾌함, 소소하지만 꾸밈없는 행복함이 거리마다 묻어났다. 꼭 해야 할 무엇인가의 목적도 없는 느린 여행자에게 있어 베네치아는 하루하루, 매 시간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정경들이 마냥 특별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한적한 골목 안의 작은 카페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잔은 커피 그 이상의 맛이었다. 진한 맛과 향이 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오히려 달콤하기까지 했다. 노천카페에 앉아 무뚝뚝한 빗줄기를 벗 삼아..

베네치아에서의 나의 시간은 에스프레소처럼 짧고 진했다

베네치아에서의 이튿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보슬보슬 내리던 여린 빗방울이 정오가 지나자 제법 세찬 빗줄기로 변해 있었다. 6342 A LE TOLE에서 파스타를 먹고 그 맛있는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골목길을 걸었다. 그런데 조금 더 강해진 빗줄기가 자꾸만 바람을 타고 우산 속으로까지 눈치 없어 넘어와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시야에 세 개의 야외 테이블이 놓인 조그마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위치한, 간판도 없는 카페 내부에는 옆에 내려놓은 여행가방으로 미루어 보아 관광객인 듯한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 들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지붕의 처마를 방패 삼아 어느 정도 빗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작은 ..

생면 파스타로 유명한 베네치아 맛집, 6342 A LE TOLE

베네치아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다행히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을 볼 수 있었다. 어제만 해도 골목을 찾아다니는 것이 좀 서툴었는데, 하루의 헤맴 덕분인지 베니스의 골목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좀 요령이 생긴 것 같았다. 건물들마다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 번지수를 보면서 길을 찾다 보니, 왠지 간단명료한 이 표기법이 꽤나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내내 골목길을 걸을 때에는 급한 마음에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특별전 장소를 나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조용히 있던 배꼽시계가 딸그랑거렸다. 어젯밤에 리알토 다리 위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이 식당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큰 식당은 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베니스 특별전, '꽃 핀 쪽으로'

드디어 이곳을 찾았다. 3년 만에 열리고 있는 2022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미술전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 다양한 볼거리와 많은 화젯거리들이 집합되어 있는 베네치아에서 꼭 만나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6301 주소 하나만 갖고 찾아간 길. 많은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돌아다녔지만, 결국 어제는 찾지 못한 이곳을 다행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다른 곳들처럼 길게 늘어선 행렬도 없었고, 미술 관계자나 취재진들도 없었던 이곳. 마음먹고 길을 나서지 않으면 너무나 찾기 힘든 어느 골목의 맨 끝에 자리해 있었던 바로 그곳. 내가 찾은 이곳은 아무도 없었다. 전시회장 바로 앞에서 흐르는 수로의 물결만이 함께할 뿐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베니스 특별전 '꽃 핀 쪽으로(to where the flow..

비엔날레가 펼쳐지는 베네치아에서의 첫날, 길에서 길을 잃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삶을 논했던 베네치아는 곳곳이 그대로 예술작품이었다. 이곳에서는 길을 걸으면서도 누구나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었다. 내가 베네치아에 도착한 6월 8일, 선착장에 발을 디디는 그 순간에 비로소 이곳 베네치아에서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1895년 '제1회 베니스시 국제미술전'을 시작으로 2년마다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올해로 59회를 맞이하였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2022년 4월 23일~11월 27일 원래 베니스 비엔날레는 홀수 해에 미술전이, 짝수 해에는 건축전이 번갈아 개최되고 있다. 미술전은 작년 2021년에 열렸어야 했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만인 올해 개최되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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