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며칠 뉴스에서 가난을 파네 어쩌네 하는 데드라인들을 보다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했는데 어떻게 연탄이 떨어진 적이 없을까. 겨우내 부족함 없이 뜨끈뜨끈한 방에서 지낼 수 있던 건 아니지만 덜덜 떨며 냉방에서 지낸 기억이 없다. 생각해 보면 쌀이 떨어질지언정 수제비 해 먹을 밀가루는 늘 있었고 그마저 없으면 눈치가 보이더라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버지 이름으로 외상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우리 집 사정이면 연탄이 떨어져 냉랭한 골방에서 자야 하고 종종 끼니를 못해야 했다.
그런데 기억을 저 구석까지 뒤져 봐도 냉랭한 골방에서 잔 기억도, 끼니를 거른 기억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이외의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못 누렸지만 빈고에 허덕이진 않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을 아는 사람이라면 진짜 굶은 적이 없었냐고 놀라 되물을 거다. 기억을 찬찬히 되짚다가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들을 냉방에서 재우지 않으려고, 자식들 배곯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필사적이었을까 하는. 남들처럼 좋은 옷이며 맛있는 음식이며 유행하는 장난감이며 학원이며 뭐 하나 해 줄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사람답게 살게 해 주려 얼마나 필사적이었을까. 그래 봐야 당신들 나이 서른 중반, 지금의 나보다 열 살은 어린 나이다. 이제 그때의 당신들보다 나이를 먹어 내 자식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씩 이해가 된다.
'필사적이었겠구나.'
'필사적'의 사전적 정의는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바닥이 드러난 쌀독을 간신히 채우고 몇 장 안 남은 연탄을 다시 쌓아 올리고, 기어이 따듯한 방에서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한시름 놓았겠구나. 그 필사적인 삶에서 그 풍경을 보며 그나마 웃었겠구나.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삶에서 자식들을 굶길까, 냉방에서 재울까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부모가 돼야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 황석희 <오역하는 말들> 중에서, P 220~222 -
오랜만에 야근을 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꺼냈다. '필사적이었겠구나', 이 어휘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들어 앉아서 눈을 감고 있거나 손잡이에 의존해 서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하루를 보내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그들 모두도 '필사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부모가 돼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당연한 문장 하나가 오늘따라 가슴에서 메아리친다. 내가 그러하듯, 나의 부모님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겠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아빠와 통화를 하는 편이다. 매번 별다를 것 없는 똑같은 대화들이 매일 반복되지만, 언젠가 이런 전화를 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면 또 한동안 먹먹해진 마음을 무겁게 이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아빠도 엄마도, 아버님과 어머님도 모두들 그 시대에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내 자식이 커갈수록, 자꾸만 부모님 생각이 밀려온다.
때로는 밥 한 끼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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