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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아름다움/책

<절창> 구병모 장편소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틈새에서 던지는 질문들

by 난짬뽕 2025.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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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 지은이: 구병모
  • 1판 1쇄: 2025년 9월 17일
  • 펴낸곳: (주)문학동네

 

 

찰나에 불과한 사이에 쏟아진 감각과 언어 정보를 압축 변형해서,

이른바 '읽어낸' 거야. 그자의 무언가를.

그것은 감정이기도 하고 사고이기도 하면서,

단순 회상, 상상, 앞으로의 계획,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합한 무언가였고,

거기에 나는 명쾌한 이름을 붙이기가 지금도 어려워.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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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장편소설 <절창>, 누군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어낼 수 있을까

<절창>은 구병모 작가가 4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나는 이 책 <절창>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 소설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한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은 늘 생각하지 못한 소재와 내용들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절창>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절창(切創)의 사전적 의미는 '칼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라는 뜻이다.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한 여인 '나', 그리고 양지에서는 평범한 요식업체 경영자이지만 뒤로는 어둠의 유통에 종사하는 그 여인 옆의 한 남자, '오언'이 주인공이다.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야 할 때마다 '오언'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읽게 한다. 오언 역시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그녀가 읽어주길 바라지만, '나'는 오언이 저지른 끔찍한 잘못으로 인해 결코 그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오독을 수반한다

<절창>의 화자는 '나'인 아가씨와 그녀의 독서선생으로 등장하는 '선생님'으로, 이들이 번갈아 말하는 것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나'와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끝없이 대두되는 것은 바로 "오독"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과 책을 읽는 부분은 매우 닮은 점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느냐의 질문은 곧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고 하여 그에 대해 모두 이해했느냐의 질문과 연결된다는 것. 아마도 적지 않은 부분들은 오독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어쩌면 아무것도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매일 쏟아내는 많은 말과 이야기 속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 있고, 그 틈새로 또 다른 변형이 오해를 낳기도 하므로 우리는 무엇을 노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안겨준 것 같기도 하다. 

 

 

오언앓이,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우리들의 진실들

올해 봄,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파과>가 영화로 제작 개봉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는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책으로 읽은 기억이 진해 60대 여성 킬러의 역할을 맡은 63세 이혜영 배우의 강렬한 연기가 궁금하기는 하다. 이 책 <절창> 역시 <파과>처럼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참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오언'이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아마도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오언앓이'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오언'이 인용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셰익스피어를 깊이 있게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오언'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아가씨나 선생님, 실장 등으로 명시된다. 

<절창>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우리나라 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구병모 작가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꽤나 낯설고 어려운 어휘들이 문장마다 자주 튀어나오곤 했다. 예를 들면 휘갑, 배태, 귀살, 지게미 등등. 소설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우리말사전을 펼쳐보기도 했다. 

 

그 애는 나의...... 질문입니다.  p 64   (~)   나한테 주어진 지극한,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p 65

사람은 그게, 그렇게 선뜻 되지 않아. 자기가 그토록 기다려온 거라도, 막상 가시화되면 그게 정말로 바라던 것이었는지 의심하게 돼.   p 278

너는 앞으로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게 될 테고, 한 명의 사람을 한 권의 책 대하듯 다각도로 읽어야 인생이라는 이름의 위기를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감당할 수 있을 거란다.  p 301

 

소설 말미 반전도 있고, 마무리는 열린 결말이다. 하나 아쉬운 것은 '오언'을 볼 수 없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재밌는 로맨스 같은 작품이라 여겨지고, 좀 더 생각을 넓히면 철학책 같기도 한 <절창>. 구병모 작가가 다음에는 어떤 책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절창>의 내용을 네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사람들을 상처 입혀서 그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거 말고, 당신이 나한테서 듣고 싶은 게 또 있어?' p 219

내게서 아무 소음이라도 듣기를 기대하는 눈빛 같은 거, 내가 읽어내야 하는 타인의 마음속만이 아니라 나 자체를 궁금해하는 듯한 어조 따위, 못 보고 못 들은 걸로 하고 싶었어. p 219-220

아무리 모르고 싶어도 그렇게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까지 모를 수는 없다고. p 258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비로소 이해하는 것은 그가 행하거나 그를 둘러싼 모든 사태가 끝장나기 시작할 때지. 그러니 우리는 불이해 혹은 오해를 이해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고작이야. 이해란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고, 나의 이해와 타인의 이해는 서로 달라서 둘의 이해가 충돌하게 마련이니까. p 3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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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소설가.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있을 법한 모든 것>, 장편소설 <파과> <네 이웃의 식탁> <상아의 문으로> 등이 있다. 오늘의작가상, 김유정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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