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마을 깃듸일나무 북카페에서 이 시집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리움은 언제나 문득 온다>라는 제목에 무방비 상태로 끌렸다.
이 시집에서 마음에 들어왔던 시 '그리움은 언제나 문득 온다' '까닭' '상가에서' '가을꽃' '시절인연'의 시어들은 솔직했고,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았다. "어쩌다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으로 남게 되길" "눈먼 사랑 하나 품었습니다" "그것으로 족한 것을" 등의 표현들에게서 깊은 안타까움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깊은 밤 / 깨어있는 것들은 안다 / 잠들지 못하는 까닭을"이나 "외로운 사람들이 / 별을 바라보는 건 / 보고 싶은 얼굴 하나 / 남아있는 까닭", 그리고 "가족의 주검을 코앞에 놓고도 / 허기를 느끼고 /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슬픔도 꼭꼭 씹지 않으면 / 체하는 걸까" 등의 내용에 크게 공감이 갔다.
아마도 권순덕 시인은 세상 속 따뜻한 경험들과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시들은 애써 화려하게 치장되지 않아 참 좋았다. 감정을 이론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주는 듯해서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움은 언제나 문득 온다
- 권순덕 시집
- 시와소금 시인선 151
그리움은 언제나 문득 온다
장마에 애태우는
산골 편지처럼
마른 가지 품고 있는
이른 봄 햇살처럼
천천히
발자국마다 설레임 담아
느릿느릿 너에게 가고 싶었다
쉽게 넘치지 않게
쉽게 꽃피지 않게
언젠가
내가 네게서 사라지는 날
너무 빨리는 말고 천천히
어쩌다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으로 남게 되길
까닭
깊은 밤
깨어있는 것들은 안다
잠들지 못하는 까닭을
봄이면
풀꽃들 다시 살아와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까닭을
가을이면
대지에 가득 찬
풀벌레 소리
아득히 먼
넋을 부르는 까닭을
마음이 마음을 찾아
떠나는 밤
부르다 지친 이름은
별이 된다
외로운 사람들이
별을 바라보는 건
보고 싶은 얼굴 하나
남아있는 까닭
상가喪家에서
가족의 주검을 코앞에 놓고도
허기를 느끼고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굶지 못하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우적우적 밥숟갈을 밀어 넣는다
슬픔도 꼭꼭 씹지 않으면
체하는 걸까
누가 죽었는지
벌써 잊은 사람들
화투판에 열을 올리고
자기 설움에 마신 술
꺼억꺼억 뿜어내는 새벽
줄지어 사열한 화환만이
생전의 그를 대변 할 뿐
그가 살아 온 길을
묻는 이 아무도 없다
한 세계가 묻힌 것을
숨소리도 없이
빠져나간 영혼이
오래 벗어 둔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을꽃
꽃이 졌다고
향기가 사라졌다고
제가 변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 웃음소리에 피어난 꽃인 걸요
당신은 저를 두고
달콤한 오월 장미의 유혹에
멀어져 갔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
바람 불고
비 오고
기다림의 날들이 지나갑니다
먼 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대여
슬픔이 사랑의 마디인 줄 몰랐습니다
불에 덴 것처럼
꽃이 진 자리마다
욱신거리는 아픔 남았는데
환한 웃음 눈 맞춤 해주던
오래된 봄날 아련해서
그리움의 씨앗 하나 품었습니다
눈먼 사랑 하나 품었습니다
시절인연
수십 년 만에 소식을 들었다
만나보겠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느껴야 했던
이방인 같은 허망함
그토록 그리던 것들은 이미 없다
굴뚝 연기 온 골을 휘감던
소소한 고단함과
오 촉 등불 아래 숟가락 부딪치는 저녁
가난마저 따뜻했던
하찮은 것들이 꿈꾸는 시간
그때 밝혀 둔
꽃 등불 하나 있어
어둔 밤 길 잃지 않았음을
그것으로 족한 것을
내가 지금 그리운 것은
해질 무렵 불러주던 휘파람같이
돌이킬 수 없고
만져질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향기 같은 거
이미 지나간 시절인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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