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승부수
9
스포츠 발전사에 있어서 숫자 9는 매우 흥미로운 기록들로 이어진다. 이제는 세계 속의 강국으로 우뚝 성장한 우리나라도 첫 월드컵 출전에서는 아홉 골 차이의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홈런 한 방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던 야구선수 이승엽이 한때 소속되어 있던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아홉이라는 숫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숫자 9와 얽힌 스포츠 기록들을 들여다본다.
헝가리에 0-9로 패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6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렸다. 출전국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비롯하여 브라질, 서독, 터키, 우루과이, 이탈리아, 헝가리 등 총 16개국이었다. 한국은 헝가리, 터키, 독일과 B조에 속했다.
한국 월드컵대표팀이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 것은 6월 16일. 대회는 이미 막이 올라 있었다. 한국 경기는 이튿날 오후 3시에 벌어졌다.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48시간이나 공중에서 허비했다. 항공편은 미군 전용기였는데, 선수들의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아 선수의 생명인 발의 피로도는 엄청났다. 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원이 함께 장도에 오르지도 못했다. 여행사의 실수로 김용식 감독과 선수 12명이 먼저 도착한 후 2진은 2차전 직전에야 스위스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불과 경기를 열 시간가량 앞둔 상태였다.
6월 17일. 드디어 헝가리와의 첫 경기가 치러졌다. 푸스카스, 콕시스 등이 주축인 헝가리는 당시 세계 최강. 전반 10분까지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지만, 12분 푸스카스에게 선제골을 내준 후 전반에만 다섯 골을 허용한 한국은 후반 네 골을 더 내주며 0대 9로 대패했다. 당시 골키퍼였던 홍덕영은 헝가리 선수들의 슈팅이 너무 강해서 가슴과 배가 얼얼했을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 8년 연속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34년 일본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팀이 창단되었고,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유명하다. 요미우리가 이와 같이 일본 스포츠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은 바로 'V9' 때문. 다름 아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아홉 번 연속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나뉘는데, 각각 6개 팀이 리그를 벌여 우승팀을 가린 후, 각 리그 우승팀끼리 7전 4승 제로 일본 시리즈를 벌여 이기는 팀이 최종 챔피언이 된다. 따라서 아홉 번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자기가 속한 리그에서 아홉 번 내리 우승을 차지함은 물론, 상대 리그 우승팀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아홉 번 연속 이겨야 달성할 수 있는, 아무리 강팀이라도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 스포츠 전문가들은 당시 요미우리가 이러한 기록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감독과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들이 한 팀이 되어 만든 신화라고 말한다. 그 시절 요미우리는 '타격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정확한 타격을 자랑했던 가와가미 데스 하루라는 당대 최고의 명감독이 팀을 맡고 있었으며, 세계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868개의 홈런을 날린 왕정치가 3번, 미스터 자이언츠로 불리며 일본 프로야구 사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선수 나가시마 시게오가 4번 타자였다.
9핀으로 시작된
볼링
레인 끝에 세워진 술병 모양의 핀을 비금속성 공을 굴려서 쓰러뜨리는 실내 경기인 볼링. 중세의 볼링은 현재와 같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상의 의식이나 점을 치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성직자들은 '케겔(원추형의 기둥이라는 뜻) 쓰러뜨리기'라는 종교적 의식을 거행했는데, 케겔을 악마의 상징으로 여겨 둥근 물체를 굴려 이것을 많이 쓰러뜨린 사람은 신앙심이 깊다고 여겼다.
과거에는 볼링이 오늘날과 같은 10핀이 아니라, 9핀 게임이었다고 한다. 마틴 루터는 핀을 당구의 나인볼 배열과 같은 다이아몬드형으로 세우도록 하는 등 다양한 규칙을 만들었다. 이러한 9핀 게임은 인기가 높아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으며, 9핀 게임이 유행함에 따라 경기 장소도 초기에는 맨땅 위에서 볼을 굴리던 것을 바닥에 석탄재를 뿌리기도 하다가 판을 깔아 투구대로 만들고 울타리와 지붕도 만들어 점차 실내경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렇게 유럽 각지에서 유행한 9핀 게임이 1625년 네덜란드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들여와 개척민의 오락으로 행해지게 되어 미국 전 지역으로 퍼졌다. 그런데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9핀 게임이 도박으로 유행하게 되어 미국 전 연방이 9핀 경기 금지령을 선포함으로써 9핀 게임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볼링을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들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핀의 수를 하나 더 늘려 정삼각형으로 늘여놓은 10핀 게임을 창안해냈다. '핀이 9개인 볼링은 불법이지만, 10개의 핀이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9핀 게임 애호가의 발상으로 인해 오늘날의 볼링이 탄생한 것이다.
숫자 9와 관련된 엉뚱한 이야기들
'시선 너머 > 볼록 렌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얼굴의 생명력, 빨강 (52) | 2021.04.11 |
---|---|
나이가 들수록 많이 먹어야 한다, 보라색 음식 (69) | 2021.04.10 |
건강을 다스리는 아홉 구멍 (54) | 2021.04.08 |
아홉수의 진실 (76) | 2021.04.07 |
고도의 심리전, 보라색 넥타이 (50) | 2021.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