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이탈리아 베네치아

나는 지금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만나러 간다!

난짬뽕 2022. 6. 1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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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의 첫날, 회의와 함께 시작된 업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미 한국에서 야근에, 주말까지 자료를 준비하면서 일을 진행한 보람이 있었다. 세부 미팅까지 마무리될 무렵, 갑자기 담당자가 말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 이튿날부터 바로 일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자신들이 처리해야 할 상황들에 대해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푹 쉬면서 여독을 풀라고 배려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이틀간의 휴가가 덜컥 내 앞에 던져졌다.



퇴근을 하면서 이틀 동안의 자유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자, 대뜸 남편이 말했다. "그럼, 바로 떠나야지!!" 아, 내가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나는 지금 유럽 어디로든 쉽게 떠날 수 있는 런던 한복판에 서있었는데 말이다.

바로 검색을 하고, 다행히도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었다. 조금만 일찍 예매를 했어도 더 저렴한 금액으로 티켓팅을 할 수 있었겠지만,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내가 예매한 것은 RYANAIR라는 저가 항공이다. 5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런던에서 이탈리아로 떠날 수 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오늘 공항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일 출발 시 지금 예매를 하면 30만 원 정도였다. 사람들이 몰려서 이렇게 올랐나. 정말로 나는 운도 따라주었던 것 같다.

 

6시 20분, 새벽 비행기이다. 저가항공은 때때로 지연이 많이 되기 때문에 혹시라도 너무 늦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출발이 아무리 지연되어도 이 가격이면 너그러이 받아줄 마음이 있었다. ㅎ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London Stansted Airport까지는 야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 후 다시 1시간 넘게 가야 한다. 이 공항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리기 때문에 서둘러 새벽 1시에 집을 나섰다. 영국에 도착해서 내내 좋았던 날씨였는데,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바람도 불어 쌀쌀함이 느껴졌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야간 버스를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 조금 무섭기도 했다. 기다리던 야간 버스는 제시각에 도착하지 않고 10분 정도 늦었다. 버스에 올라타자 기사 아저씨가 오는 길에 공사가 있어 늦었다며 미안하다는 인사를 했다.

 

한 30분 정도 후에 공항버스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좌석이 맨 뒤쪽만 남아 있다고 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가, 혹시라도 시간이 촉박할까 봐 그냥 올라탔다. 사실 영국에서는 히드로 공항만 이용했기 때문에, 다른 공항에는 가보지 못했다. 초행길이기도 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역시 구글맵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버스에는 이미 공항으로 가는 많은 여행객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맨 뒤에서 바로 앞줄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한쪽에 자리 잡은 이 문이 눈에 띄었다. 헉~~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었다니. 나는 이런 버스를 탄 것이 처음이라서, 정말 신기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의 화장실

나의 도착지, Venice Marco Polo. 다행히 비행기가 지연되지 않았다. 

밤부터 내리던 비는 잠시 그치기를 반복하며 새벽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 비는 영국에서만 내리기를 바라면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드디어 이륙. 나는 며칠 사이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너무 감사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여유 있는 시간이 있어도 늘 다음 상황을 대비하며 긴장했고, 머릿속에는 회의와 업무 생각만으로 꽉 차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의 나의 생활 습관이기도 했다. 누구나가 다 그렇겠지만, 젊은 시절 밤낮없이 일했고 집에는 옷만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날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한 가운데 매달 집안의 대소사 역시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머릿속은 일과 집안일이 함께 공존해 있었다. 

 

언제부터 나의 사고에 여유로움이 생겼는지, 그 출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는 순간순간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 순간의 찰나를 만끽하는 여유로움도 지니게 되었다. 만약 예전의 나였더라면, 갑자기 주어진 이틀간의 시간들을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산 위에 눈이 쌓여 있었다. 이곳이 어디지, 하며 구글맵을 찾아보니 나는 스위스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드디어 눈에 들어오는 저 광경. 나는 곧 도착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왜 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행기를 타게 된 걸까. 런던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베네치아로의 티켓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떠나자,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베네치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연된다던 비행기가 제시간에 출발한 것도 감사하고, 출장길에 뜻하지 않게 얻은 이틀간의 휴가도 감사하며, 내가 지금 베네치아에서 보낼 시간들도 정말로 감사하다. 또한 런던에서 밤사이 내리던 비가 이곳에서는 내리지 않는 것도 감사하다.  

 

나는 지금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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