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코 종탑의 종루에서 느꼈던 감동을 가슴에 품은 채, 천천히 산 마르코 광장을 다시 걸었다. 베네치아에 도착하여 처음 발길을 옮겼던 불과 몇 시간 전의 기분과는 또 다른 색깔의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둘기 떼가 사람들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는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그런 비둘기들이 반가웠는지, 비둘기 사이를 누볐다. 많아도 너무 많은 이 비둘기들.
특별한 계획도 없이 천천히 광장을 이리저리 구경하는 나에게 어디선가에서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들려왔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카페에서는 악사들이 나와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와 바이올린, 오보에, 콘트라베이스 등을 연주하는 악사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오후가 깊어지는 시각, 광장의 서너 군데 카페에서는 각기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광장을 경계로 그 음악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은 채, 카페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야 오롯이 그 음악이 전해져 왔다.
어느 카페에 앉더라도 만족스러운 음악들.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가다 보니, 나를 조금 더 사로잡는 연주곡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악사들이 연주하는 무대에서는 멀리, 광장에는 조금 더 가까운 맨 끝 자리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전체의 모습을 아우르며 큰 동선으로 무대를 보고 싶었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오후는 너무나 뜨거웠고 더웠다. 갈증이 나기도 했고, 편안한 음악들이 긴장된 마음을 여유롭게 풀어놓아서인지 커피가 아닌 다른 것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지 웨이터께서 추천해주신 칵테일.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서 한 모금 입에 머금은 이 한 잔의 칵테일을 맛보지 않았다면 정말로 후회가 들 만큼 그 순간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기분이 밀려왔다.
칵테일과 함께 나온 올리브. 지금도 생각날 만큼 넘넘 맛있다.
내가 자리한 이 카페는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에 위치한, 카페 플로리안이다. 1720년에 문을 연, 현재 이탈리아에서 운영되고 있는 카페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에서 최고로 긴 역사를 간직한 카페로 유명하다.
괴테와 찰스 디킨스, 바이런, 헤밍웨이, 마네와 모네, 제임스 티소 등 수많은 유명인들이 예술과 삶에 대해 담론을 나누던 카페 플로리안. 어느덧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게 되었다.
18세기 유럽에서 여성들의 출입이 가능했던 유일한 카페이기도 하여, 카사노바 역시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전해진다. 당대 예술가들에게 아름다운 영감을 심어주던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의 세월을 지탱해 오면서 오늘날에는 여행자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안겨주고 있었다.
여러 음악들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무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악장에게 무슨 말인가를 건넸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남성이 신청한 음악이 연주되었다. 그 남성은 옆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사랑을 고백했다.
베네치아는 추억과 낭만, 그리고 사랑까지 피어나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가 결제한 금액은 29유로. 이 안에는 자릿세와 음악비를 합한 6유로가 포함되어 있다.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머문다 할지라도 만약 음악이 잘 들리는 위치라면 역시 6유로를 추가해야 한다.
물론 카페 근처에 서서 연주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롭게 연주를 감상해 보는 것도, 베네치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알려진 카페 플로리안은 베네치아의 승리를 뜻하는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판테라는 이름으로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가 1720년 12월 19일에 개업했다. '플로리안'은 그의 이름인 플로리아노의 베네치아식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카페의 실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이다. 방마다 저명인사의 방, 계절의 방, 원로원의 방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방마다의 분위기와 장식들이 모두 색다르다.
카페 플로리안은 세월이 스며든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모든 음료들은 색이 고운 은쟁반에 실려 나온다. 그 오래된 은쟁반에 베네치아의 바람을 타고, 지금 나의 시간도 잠시 멈추고 있다. 아름다운 선율에 취한 산 마르코 광장에 어느새 어둠이 하나둘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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