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갑작스럽게 떠나와서, 사실 아무 계획도 없었다. 단지 목적지만 '베네치아'로 정해진 상황. 그러나 아침에 먹은 무심해 보이던 파스타의 맛에 빠져, 왠지 이곳에서 그려질 앞으로의 시간들이 적지 않은 기대감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나의 발길은 곧바로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고도 극찬한 곳이다. ㄷ자 모양의 산 마르코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을 비롯하여 베니스다운 건축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 98.6미터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베니스의 상징, 바로 산 마르코 종탑(Campanile di San Marco)이다.
산 마르코 종탑을 쭉 훑어보며 산 마르코 광장을 한 바퀴를 휙 돌아보았다. 오던 길을 되돌아, 이번에는 젤라또까지 먹으면서 천천히 다시 걸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우아했다. 사각기둥의 몸체를 감싸 안은 저 붉은 벽돌.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은 섬세함이 오히려 깊은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상부는 아치 형태였는데, 경사가 급한 사각뿔 형태의 첨탑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황금빛의 대천사 가브리엘을 본떠서 만든 동상이 보인다.
원래 산 마르코 종탑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르네상스 건축사들에 의해 1514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물론 9세기경에 이미 이곳에 타워가 세워져 보수와 변형을 해가며 완성된 모습을 갖추기는 했었다.
그러다가 번개로 인한 몇 번의 화재로 인해 심하게 파손되기도 했던 산 마르코 종탑은 1902년 7월 14일 오전에 갑자기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고, 그로 인해 약 9년간 보강 공사를 하며 복원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12년에 기존의 종탑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400년간의 세월을 지켜온 종탑이 갑자기 붕괴될 때, 광장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베니스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산 마르코 광장의 맨 끝에 서서 종탑을 바라보니, 그 당시 이곳 광장을 뒤흔든 굉음이 밀려오는 듯했다.
다행히 그 당시에도 산 마르코 종탑에서는 매일 안전점검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붕괴 당일 아침에도 점검을 하던 관계자들이 위험을 느껴 사람들을 통제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붕괴가 일어난 그다음 해인 1903년 4월부터 1912년 4월까지의 복구공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종탑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겉모습은 예전 그대로 재건하였지만, 구조는 더욱 튼튼해졌고, 특히 가장 달라진 점은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점이다.
지금 산 마르코 종탑은 처음 세워진 예전과 동일한 위치에 같은 형태와 규모로 우뚝 서있지만, 그 구조와 내부는 새로워진 것이다.
노천카페에 앉아 태양을 피하며, 산 마르코 종탑을 바라보아도 좋다.
산 마르코 광장 둘레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다양한 가게들도 많다.
나는 사실 어딜 가든 전망대에는 잘 올라가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산 마르코 종탑에는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베니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베니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산 마르코 종탑의 영향을 받았거나, 아예 똑같이 만들어진 타워들도 전 세계 곳곳에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올려다보는 산 마르코 종탑, 그리고 종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장의 모습. 나는 이 사치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 사이를 빠져나오면, 산 마르코 종탑에서 종루로 올라갈 수 있는 표를 끊을 수 있다. 10유로.
줄을 서 있는 곳의 난간조차 그대로 예술이다.
이 표만 있으면 산 마르코 종탑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산 마르코 광장 뒤편의 광경. 광장 못지않게 이곳에도 사람들이 많다. 산 마르코 광장을 바다와 이어준다고 하여 '산 마르코 소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드디어 종루에 도착했다. 사방 360도 전망이 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냥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림을 뚫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설령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하더라도, 계단을 올라서라도 산 마르코 종탑의 종루에는 꼭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무제한이었다. 내려갈 마음이 생길 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종의 모습. 이 다섯 개의 종들은 과거에 모두 각기 다른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사형자의 처형을 알리는 종이 있다고도 하던데, 어느 것이 그 종인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 전망대에 있는 동안 저 종이 울리면~~ 갑자기 내 귀가 소중해졌다. 역시 종소리는 멀~~~ 리에서 들어야 더 아름답다.
종루에서는 사람들 누구 하나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베니스의 가장 높은 곳에서,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들 벅찬 감정이 드는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그러했다. 베네치아의 하늘과 바람과 물이 그려놓은 한 폭의 그림 앞에서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그렇게 베네치아가 다시 한번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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