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마시고 나니, 어느새 비가 내리던 거리에 햇살이 비쳤다. 그렇다면 이 순간 바로 해야 될 것은, 다시 걷는 것이다.
따사로운 태양이 언제 비가 내렸냐는 식으로 지면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이럴 때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오홋~~ 목표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외관이 멋스러운 이 건물 입구에서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필시 이 건물 안에는 또 어떠한 풍부한 볼거리들이 숨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거침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이 예감은 무엇일까. 입구를 들어서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이 상황은~~~
거리에서만 해도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베네치아였는데,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그제야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다름 아닌~~~ 바로 코로나 검사 장소였다. 이렇게 예쁜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놀란 가슴을 안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마닌 광장 한가운데에 서있는 다니엘 마닌(1804~1857)의 동상이다. 그는 베네치아 출생의 이탈리아 정치가인데, 베네치아 공화국이 있던 시절 최고 통치자이었다.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을 반추하게 하는 역사적 인물인 마닌은 대통령이 된 지 1년 만에 오스트리아의 압박으로 인해 파리로 망명했으나, 그곳에서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사후 11년 뒤에야 베니스로 옮겨지게 되었다. 마닌은 베네치아의 상징이기도 한 날개 달린 사자와 함께 있다.
그런데 왜 사자에게 날개가 달린 것일까? 이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산 마르코의 상징이 날개 달린 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베네치아의 상징 또한 날개 달린 사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최고상 역시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된 것일까?
젤라또의 달달함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아이스크림을 거의 먹지 않는 편인데, 베네치아에 도착한 어제부터 자꾸만 젤라또 가게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이탈리아의 수제 아이스크림인 젤라또는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충전제 역할의 작은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찾은 젤라또 가게는 오래된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현대식 인테리어를 갖춘 Venchi(벤키)이다. 초콜릿과 젤라또 전문점인 이곳은 입구부터 이렇게 큰 젤라또 조형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겼다. 아마도 젤라또 가게들 중에서는 가장 호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을 고를 때에는 직원 분께서 미리 이것저것 여러 가지 맛을 볼 수 있도록 작은 스푼에 담아 주셨다. 이곳은 꽤나 유명한 초콜릿 및 젤라또 브랜드로 리알토 다리 근처에도 체인점이 있다. 런던에서도 매장을 본 기억이 난다.
나는 크런치를 묻힌 콘을 선택하여 초콜릿이 올라간 두 가지 맛의 젤라또를 주문했다. 무화과와 망고의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방금 전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었다. ㅎ
베네치아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Suso(수소)라는 젤라또 가게도 매우 유명한데, 사실 어느 곳의 젤라또를 선택해도 후회는 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모든 곳이 다 맛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어제 사 먹은 이 젤라또도 맛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젤라또는 어느 골목 안의 아주 조그마한 가게에서 젊은 여자분이 담아 주셨던 젤라또이다.
그 주인 분이 꾹꾹 눌러 담아 주신 솔티드 캐러멜(salted caramel)은 정말로 내가 베네치아에서 먹은 최고의 젤라또였다. 소금이 첨가되어 짭짤하면서도 아주 달았던 이 젤라또의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다음에 다시 베네치아에 가게 된다면, 나는 이 가게의 맛들을 모두 맛보고 싶다.
골목길에서 만난 초콜릿 매장. 평소에도 일할 때 종종 입에 물고 있을 정도로 초콜릿을 엄청 좋아하는 나는 젤라또 맛에 취해 이 초콜릿들을 무심코 지나쳤다.
베네치아를 걷다 보면, 많은 식당들과 상점들은 물론 호텔 등이 즐비해 있는 거리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조금은 한적하다는 느낌이 드는 장소에 이르게 된다.
다리로 연결된 이곳은 관광객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어느 벽면을 떠받치고 있는 조각상을 만나게 된다. 사진 안쪽으로 보이는 조각상 두 개와 함께 모두 세 개의 조각상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길가에서 바로 보이는 이 조각상의 코가 이상했다. 검게 보이는 것은 코 부분을 청동으로 붙여 놓았기 때문인데,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얽혀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조각상 바로 옆에서 수로를 바라보며 앉아 계신 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다. 인사를 하고 여쭤볼 것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갑자기 한 할아버지께서 창문을 향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셨다. 눈치로 짐작하건대, 할아버지들께서는 영어를 하는 다른 사람을 나오게 하신 것 같았다.
곧 그 집에서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아저씨가 나오셨는데, 이 조각상이 궁금하다는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이 조각상들은 안토니오 리오바와 산디, 아파니 삼형제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 쫓겨나 베네치아에 정착한 장사꾼이었는데, 폭리를 일삼는 악덕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의 패물을 팔아 딸의 혼수를 마련하고자 하는 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이들은 가장 싼 천을 고급 상품이라고 속였다. 그러면서 맏이인 리오바는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의 코가 돌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며칠 후에 리오바의 코가 진짜 돌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 조각상에 얽힌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아저씨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거짓말로 남을 속이면 큰 벌을 받게 된다는 말씀을 듣고 자랐다고 하셨다. 그런데 후세에 리오바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있다는 소문이 났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감쪽같이 리오바의 코를 떼어 훔쳐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청동으로 코를 만들어 붙여 놓았다는 것.
사람의 욕심은 어딜 가나, 참으로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 조각상이 또 하나의 교훈을 던져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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