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이탈리아 베네치아

섬세한 문고리 장식들의 비밀스러운 깊이 있는 울림들

난짬뽕 2022. 8. 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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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장식

베네치아의 거리에서는 자동차의 바퀴도 볼 수 없고, 현대식 고층 빌딩도 없으며, 스타벅스의 커피도 마실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많이 불편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좀 더 베네치아와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던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베니스에 많은 건축물을 남긴 팔라디오 등을 제치고 안토니오 다 폰테가 완성시킨 리알토 다리를 비롯하여 두칼레 궁전과 피옴비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이외에도 지옥의 다리 같은 별난 이름의 다리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두 발로 열심히 디디다 보니 베니스에서 유일하게 난간이 없는 다리도 건너 보았고, 주먹의 다리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이곳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번 베니스 여행은 출장 중 갑자기 얻은 휴가였기에, 사실 베네치아의 유명 명소들을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다. 또한 현대 미술의 거장들인 피카소나 샤갈, 달리, 몬드리안 등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도 가보지 못했다.

 

베네치아에 머무는 1박 2일 동안 어쩌면 가본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지상에서는 택시나 버스 등도 없어, 튼튼한 나의 두 다리가 이 섬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나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졌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골목골목의 장소들은 그 나름대로의 화자가 되어 그들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문고리 장식

골목의 상점들마다 화려한 유혹을 하는,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완성시킨 멋스러운 가면들보다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여느 집들의 문에 수놓아진 차별화된 장식이었다.

 

아마도 그 장식에 깃든 나름대로의 의미들을 품고 있겠지만, 그것까지 헤아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장식의 모양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흥미로웠던 것 같다.

 

각기 모양이나 크기, 색상 등에서도 차별화가 느껴졌다. 그 섬세한 표현들이나 깊이 있는 울림 등이 어느 곳에서나 한결같이 나에게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문 위의 장식
대문 장식

얼핏 보면 그냥 단순해 보이지만, 입술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마치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아니면 무슨 비밀을 머금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골목을 다닐 때, 건물에 표시된 숫자인 번지수를 보고 다녔다. 보통은 숫자로만 되어 있었는데, 어느 골목으로 접어드니 이렇게 숫자 뒤에 알파벳까지 표기되어 있었다.

베네치아의 번지수

아무런 장식이 없는 깔끔한 디자인의 어느 집의 문은 이런 꽃송이들이 과하지 않은 포인트가 되어 예뻤고, 

입구의 꽃 장식

무심한 듯 벽을 타고 올라간 꽃잎에 가려진 이 집의 대문은 꽃 색상과 어우러진 이렇게 예쁜 색깔의 조화가 참으로 멋스러웠다. 

꽃잎과 조화를 이룬 문 색상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 외벽

건물의 외관만 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묵었던 숙소의 출입문

때로는 현대 문물을 접목시켜 편리함을 더한 곳도 있었다. 

입 속을 누르면 벨이 울린다

베네치아에서는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웅장하고 멋있게 느껴지는 매력적인 건축물들이 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우뚝 서있지만, 

때로는 인적도 드문 골목길 안쪽에서 만나게 되는 여느 가정집의 창문과 벽면에서 오히려 예기치 못한 많은 생각들이 돌출될 때도 있는 것 같다.

창문 사이의 외벽 장식
특이한 장식 문양

때로는 우리들의 여행이 아주 특별한 곳에서 별다른 특별한 일 없이 지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한없이 고독해지면, 그곳에서 오히려 또 다른 나만의 풍요로움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산타 마리아 아순타 데타 이 제수이티 성당

공항으로 가기 위해 승선장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산타 마리아 아순타 데타 이 제수이티 성당(CHIESA DI SANTA MARIA ASSUNTA DETTA I GESUITI)이다. 이곳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티치아노의 '성 라우렌티우스의 순교(1559)' 작품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식스토 2세 교황 때 로마의 부제 7명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미술 작품에서 종교복을 입고 한 손에는 성경과 다른 한 손에는 석쇠 또는 구호품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당의 물건을 나눠주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뜨거운 석쇠 위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순교했는데, 고문을 당하면서도 황제에게 "보아라, 한쪽은 잘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잘 구워서 먹어라!"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했던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나는 종교에 대해서도 그림에 관해서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다시 베네치아에 오게 된다면 이 성당에서 티치아노의 그림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을 묘사하는 검은색 배경의 이 그림에서 티치아노가 왜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공항으로 가는 수상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산타 마리아 아순타 데타 이 제수이티 성당의 외관만 보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중앙제단 왼쪽으로는 틴토레토가 그린 '성모승천(1555)'이 있고, 성경 속 장면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천장도 궁금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시어들이 떠올랐다. "이유는 없다 / 있다면 오직 한 가지 / 네가 너라는 사실! / 네가 너이기 때문에 /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 사랑스러운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나도 말하고 싶었다. "이유는 없어.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야. 베네치아야, 지금의 모습처럼 오래 그렇게 있어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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