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승선장이 있는 대운하

수상 버스가 기다리는 승선장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으로 가기 위해 바포레토(수상 버스)를 타기 위해서 승선장으로 향했다. 국제공항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아담한 규모인 마르코 폴로 공항은 내가 출발하는 이곳 베네치아 본섬에서 북서쪽으로 약 1.3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나는 어제 공항 입국장 안에 있는 대중교통 매표소 앞의 자동판매기에서 바포레토 표를 구입했었다. 수상 버스를 탈 때에는 승선장 앞에서 노선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선 번호와 방향에 따라 승선장이 다르기 때문인데, 승선장 이름은 A, B, C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잘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인공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바포레토는 대운하를 다니는 교통수단인데, 운행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듯했다. 물론 바포레토보다 조금 빠른 수상 택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너무 빨리 달려 물살이 거세지면 운하 주변의 건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 저속으로 운항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A 승선장

바포레토 실내

그래서 어제 본섬으로 들어올 때 내가 탄 수상 버스가 느림보 거북이의 사촌이었나 싶기도 하다. 어제는 아침 일찍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대운하 옆의 다른 섬들을 구경하기 위해 완행 노선의 수상 버스를 탔는데, 오늘은 공항으로 바로 가는 급행 노선을 탔다. 

 

그래서였을까. 이 수상 버스의 속도감이 다르다. 어제는 한 시간 정도를 물 위에 떠있었는데, 공항으로 가는 길이 30여 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섬의 승선장에도 따로 거치지 않아 건물 가까이 가지도 않아서인지, 마치 수상 택시를 타고 가는 것만큼의 속도감이 느껴졌다.

 

창문을 열고 물살이 튀어 오르며 내 손으로 다가오는 시원함을 만끽했다. 공항 근처에 다다르자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조금만 더 물 위에 떠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수상 버스는 이미 공항 승선장에 다다랐다. 

물살을 가르는 바포레토

승선장에 도착한 시각은 19시 33분. 공항 터미널로 올라가는 이 에스컬레이터 옆 벽면은 다시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공항에 도착하여 FIDS(운항정보 안내 모니터)를 보니, 아직 체크인 카운터가 정해지지 않았다. 

21시 40분에 London Stansted Airport(런던 스탠스테드 공항)로 출발하는 RYANAIR(라이언에어) 항공편은 다행히 지연되지 않는 듯싶었다. 워낙 저가항공의 지연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다행히도 어제는 제시간에 출발하여 도착 시간을 정확하게 맞췄었다. 

 

내가 런던에 출장 오기 얼마 전에 동료인 Zoe는 무라노 섬에 있는 유리공예 공방에 가기 위해 이지젯 항공으로 예매했는데, 아침에 떠야 할 비행기가 밤 10시가 넘어 출발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지젯도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이다. 

 

나는 아무 일 없이 술술 잘 풀리는 이 상황들이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탑승 두 시간 전이라, 여유 있게 출발층으로 내려갔다.  

단출한 나의 짐

그런데 체크인 카운터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지만, 짜증이 난 듯한 얼굴이기도 하고 조금은 긴장된 표정이기도 했다. 

 

줄을 서서 주위를 살폈다. 이 분위기,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앞뒤에 서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뭔가 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항공권 발권을 하고 있는 담당자는 세 명밖에 없었는데, 수하물 위탁 시에도 가방의 크기나 무게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여권을 철저하게 검사하는 것은 물론 BRP 카드까지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 당 걸리는 수속 시간이 꽤 길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늦어지면 제시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나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는데, 곳곳에 있던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시간이 촉박하여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출발시각이 임박해진 파리행 승객들이 먼저 수속을 밟을 수 있도록 서로 자리를 바꿔 주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고 있었다. 비행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승객들의 불안해하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승객들을 오랫동안 꼼짝없이 잡아놓고 있었다. 나는 한국이 아닌 런던에 출장을 왔다가 베네치아로 건너왔기 때문에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면 참으로 난감한 상태였다. 보여줄 거라고는 혹시 몰라 가져온 코로나 예방접종증명서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의 차례가 되었다. 인사라도 밝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여권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 Korea?"라고 묻는 동시에 위탁 수화물이 있는지만 확인하고는 불과 몇 초만에 바로 통과가 되었다. 내 뒤에서 대기하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깜짝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해외에서 느끼게 되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딱 여기까지는, 수속이 늦어져도 기다릴 만했다. 그런데 결국 문제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밤 9시 40분에 출발해야 할 비행기가 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와 있는 상태여서 앉을 만한 곳도 마땅히 없었다. 나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시간 조금 넘게 지체된 후인 밤 11시가 조금 넘어 탑승할 수 있었던 것. 너무 늦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또 한 번 감사했다. 

 

밤 1시 전에는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정도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많은 유럽의 저가항공을 타면서 이런 추억 하나 남기는 것도 괜찮지, 하며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라이언에어

베네치아의 밤하늘

베네치아를 떠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컴컴한 밤하늘까지 사진에 담아 보았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자정을 40여 분 넘긴 시각에 비행기가 런던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내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자 옆에 앉아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이렇게 무사히 착륙해서 감사의 표현을 하는 거라고 하셨다.

 

우리나라의 항공기는 그렇지 않지만 유럽 저가항공의 경우에는 승차감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이곳의 어떤 사람들은 무서워하기도 하고, 안전하게 착륙을 하면 이렇게 서로들 환호를 할 때도 있다고 얘기해 주셨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왜 그렇게 경쟁적으로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였는지를.

자동 출입국 심사 안내

바로 이 상황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영국에서 대면심사 없이 여권과 지문만 찍고 나가는 자동 출입국 심사대를 거치는데, 자동 출입구 심사대로 향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 공항 밖으로 나가는 데에만 1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런던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 위치한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나는 런던 시내로 가기 위해 National Express(내셔널 익스프레스)를 탔다. 버스에 오른 시각이 오전 1시 44분. 1시간 정도 타고나서 Liverpool Street에 내려 다시 숙소 바로 앞까지 가는 야간 버스를 타면 한두 시간 정도는 잘 수 있겠지 싶었다. 

 

야구의 진정한 승부는 9회 말 투아웃에 시작되고, 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내셔널 익스프레스에서 내리자마자 타려는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우버 역시 잡히지 않았다. 구글맵을 찾아보니, 내가 가려는 지역 방향으로 야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버스가 운행되지 않고 있었다. 

자동 출입 심사대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

내셔널 익스프레스

하는 수없이 걸으면서 우버를 불렀지만, 공사 구간 때문에 우버 역시 계속 잡히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공사 구간이 끝나는 곳까지 걸을 수밖에. 

 

베네치아에서 큰 몫을 차지했던 나의 두 발. 한 시간 정도를 걷고, 공사 구간을 지나자마자 잠시 망설여졌다. 20분 정도만 더 걸으면 숙소에 도착하니 계속 걸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내 발을 위해 빠르게 결정했다. 우버를 타기로. 

 

밝아오는 새벽길을 맞이하며, 나의 베네치아로의 여행은 막을 내렸다. 결국 나는 침대에 누워보지도 못한 채 바로 출근 준비를 했다. 낯선 곳에서의 예기치 못한 일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낭만이 출렁이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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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 예술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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