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반식재상, 지금 나는?!!!

난짬뽕 2023. 1. 1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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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hu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을 도와 당대 최성기인 '개원(開元)의 치(治)'를 연 재상은 요승이었습니다. 개원 2년(713), 현종이 망국의 근원인 사치를 추방하기 위해 문무백관의 호사스러운 비단 관복을 정전 앞에 쌓아 놓고 불사른 일을 비롯하여, 조세와 부역을 감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형벌 제도를 바로잡아 억울한 죄인을 없애고, 농병 제도를 모병 제도로 고친 것도 모두 요승의 진언에 따른 개혁이었습니다.

 

이처럼 요승은 백성들의 안녕을 꾀하는 일이 곧 나라 번영의 지름길이라 믿고 늘 이 원칙을 관철하는 데 힘썼습니다. 특히 정무의 옳고 그름에 있어서는 신속하면서도 조금의 틀림이나 어긋남이 없이 정확하고 확실했습니다. 

 

이러한 정무재결의 신속 적확함에는 그 어느 재상도 요승을 따르지 못했는데요. 당시 황문감(환관 감독 부서의 으뜸 벼슬)인 노회신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노회신은 청렴 결백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으나, 아들을 잃어 자리를 비우게 된 요승의 직무를 10여 일간 대행할 때 요승처럼 신속히 재결하지 못함으로 해서 정무를 크게 정체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때 자신이 요승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노회신은 이후 매사를 요승에게 상의한 다음에야 처리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회신을 가리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이라고 냉혹하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반식재상(伴食宰相) _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이나 대신을 비꼬아 이르는 말.

 

그래도 그 당시 노회신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요승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맡은 업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느껴 현종에게 자신이 물러날 것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이 나랏일을 하기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노회신에게 따라붙는 냉평인 '반식재상'. 청렴 근면해도 무능하면 백성들이 살기에 힘이 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고사성어들을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기인지우,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면

 

기인지우,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면 기인지우 '쓸데없는 걱정'을 의미하는 "기우"라는 말은 '기인지우'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것인데요. 기인지우(나라 이름 기, 사람 인, 갈 지, 근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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