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오늘, 남편의 고등학교 선배님의 자제분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평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예식장이 아닌 작은 카페였습니다. 양가 모두 서울에 살고 계셨지만, 신랑신부의 의견에 따라 연고가 없는 그곳에서 식을 치르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 부부는 그 스몰웨딩에 운 좋게 초대받았습니다. 저녁 5시에 결혼식이 시작되었는데, 주례선생님은 따로 없었고 신랑의 친구가 사회를 맡고 있었습니다. 패물은 과감히 없앴고, 예단도 따로 오고 가지 않았다고 해요. 결혼식 장소부터 준비과정까지 모두 신랑신부의 뜻에 따라 양가 어른들이 힘을 보태주셨다면서 신랑신부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초대받은 하객들 역시 신랑이나 신부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 초대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척들 역시 극소수만 참석하게 되었고, 신랑의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밥을 먹곤 했던 우리 부부가 축하객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형식적인 예식 순서 없이, 신랑신부가 함께 하객들에게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에 앞서 사회자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이 신랑신부의 사랑고백을 통해 모두들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빠져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신랑) "당신 때문에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전 똑똑하지는 않지만, 사랑이 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당신 없는 인생을 살며 하루하루 허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부) "중요한 게 뭔지 저는 알아요.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 따위, 전부 다 준대도 필요 없어요. 내겐 당신만 있으면 돼요." "당신을 보고 있으면, 느낄 수 있어요. 당신을 보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해져요."
신랑) "당신은 정말이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친절하고, 부드럽고, 예쁜 사람입니다. 난 당신처럼 상냥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습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을 미친 듯이 끌어안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과분합니다. 하지만 기회를 준다면, 남은 평생 동안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신부) "사랑을 원한다면, 지금 이게 그것입니다. 이건 진짜 삶이니까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짜입니다."
신랑) "내일, 아니 내 남은 생애 언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신부) "당신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남겨둘 것입니다. 앞으로도, 평생 동안."
신랑신부) "남들이 잠에 빠지듯 저희는 사랑에 빠졌죠. 서서히, 그러다 한순간에 갑자기."
사회자) "운명을 믿습니까? 세월의 힘도 참된 믿음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자는 진실한 사랑을 찾는 자라는 것을 믿습니까?" "누구도 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에 빠졌다는 건 자신이 아니까요. 그것도 온몸으로요." "사랑은 열정입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게 사랑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살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동안 진지했던 신랑신부의 사랑고백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사회자가 웃으며 하객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면서 예쁘게 프린트된 메모지를 나눠주었습니다. 그 인쇄물에는 방금 신랑신부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순서대로 적혀 있더라고요.
멜빈 유달, 크리스티앙, 앤드류 라지멘, 헬보이, 도리, 필 코너스, 제시, 필 코너스, 엠마, 헤이즐 그레이스 랭커스터, 드라큘라 백작, 오라클, 윌리엄 패리쉬~~~ 아마 이미 많은 분들이 눈치를 채셨겠죠? 아직 좀 긴가민가 하신다고요? 그렇다면 잭 니콜슨, 이완 맥그리거, 니콜 키드먼, 잭 브라프, 론 펄먼, 엘런 드제너러스, 에단 호크, 빌 머레이, 레아 세이두, 쉐일린 우들리, 게리 올드만, 글로리아 포스터, 앤서니 홉킨스~~~ ㅎ
네 맞아요. 신랑신부의 대화들은 모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물랑 루즈>, <가든 스테이트>, <헬보이 2: 골든 아미>, <니모를 찾아서>, <사랑의 블랙홀>, <비포 미드나잇>,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안녕, 헤이즐>, <드라큘라>, , <매트릭스>, <조 블랙의 사랑>에 나온 대사들이랍니다.
신랑신부의 재치 있는 사랑고백에, 그 자리에 모인 하객들 모두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한 조연배우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녀 주인공의 달콤한 대사 하나하나에 빠져들었던,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영화 제목처럼, 오늘의 이 결혼식도 무척이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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