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인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황순원 소설가의 아들입니다. <현대문학>에 발표한 데뷔작이기도 했던 이 시가 1958년 세상에 나온 이후, '즐거운 편지'는 시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시가 아니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그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었듯이, 황동규 시인의 이 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서정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는 황동규 시인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대생에게 바친 시라는 얘기도 전해지는데요. 그래서인지 많은 청춘들의 연애편지에 단골손님으로 한 자리를 차지했던 연서의 멘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문득 황동규 시인의 이 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는데요. 그 내용은 바로 "내 그대를 생각함은,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라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바로 '즐거운 편지'가 떠오르셨죠? 1연의 앞부분인 "내 그대를 생각함은"과 2연의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를 엮은 친구의 문자를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말에는 "시간 되면 연락해" "톡해도 좋고" "얼굴 보면 더 좋고" "시간 될 때 얼굴 보자"라는 의미인 것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벌써 오늘이 금요일이네요. 이번달 5월은 어버이날도 스승의날도 있어 여느 달보다도 모임이나 행사가 많아 조금 정신이 없었네요. 재치 넘치는 제 친구 덕에 오늘은 한 템포 마음도 늦춰 보고, 마음껏 쉬어 볼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일주일 동안 애쓰셨습니다. 편안한 금요일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어느 날 문득 한 잔의 커피, 한 조각의 초콜릿이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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