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피아니스트 이효주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한순간에 그녀의 매력에 금방이라도 빠져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주가로서의 자신만의 소신을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요. 그녀의 연주를 듣고 나서는 한없이 부드럽지만 강렬한 에너지에,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마저 맑고 청아하게 빛나고 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피아노 선율을 듣고 제 마음이 그러했답니다. 그리고 그 후 2011년 8월 인터뷰 때 그녀를 직접 만나고 난 뒤에도 같은 생각이 들었고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첼리스트 이정란과 함께 트리오 제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효주를 만나시게 된다면, 그녀가 음악으로 전하는 무언의 편지를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88개의 아름다운 시어로 건네는 무언의 편지
피아니스트 이효주
2010년 제65회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한 피아니스트 이효주. 본상과 더불어 특별상과 청중상까지 함께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그녀가 해외에서의 바쁜 일정을 할애하여 한국의 클래식 팬들에게 멋진 만남을 선사했다. 맑고 청아한 피아노 선율로 물든 한여름밤의 설렘. 그녀의 연주는 88개의 피아노 건반으로 빚어낸 한 편의 아름다운 시. 바로 그것이었다.
글 엄익순
어울림과 절제의 조화, 음악 안에서 소통하다
2011년 8월 16일,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2011 여름실내악 대축제>의 오프닝 무대.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제7번 '대공'과 드보르작의 피아노 3중주 제4번 '둠키'가 연주되는 가운데, 유독 피아니스트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서 울리는 피아노 선율은 마치 옥구슬 하나가 고운 비단 위에서 굴러가는 듯한 청아한 매력을 뽐내는가 하면, 햇살이 드리워진 창가에 스며들어 하늘거리는 커튼을 춤추게 하는 바람 한줄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부드러우나 미약하지 않았고, 때로는 강한 에너지가 밀려왔지만 감정의 표현이 넘쳐나지 않아 듣는 이들의 귀를 맑게 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효주의 연주를 접하고 나서는 한결같이 호평과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주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이날 '앙상블 제이드'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2005년 결성된 앙상블 제이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피아노 3중주이다. 촉망받는 세 명의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출신들이 모여, 실내악의 대중화와 전문화에 앞장서고 있는 젊은 앙상블이다.
"음악 안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교감이라고 할까요. 솔로일 때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참으로 많이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어요. 때로는 상대에게서 신선한 자극을 받아 음악적으로 발전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세 명 모두 각자의 활동으로 바쁘지만, 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연주를 한답니다. 학창 시절부터 호흡을 맞추고, 지금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로서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해요. 음악적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특히 이효주의 실내악에 대한 열정은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재학 시절 가르침을 준 교수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지도교수였던 피아니스트 자크 루비에와 바이올리니스트 장자크 캉트로프, 첼리스트 필립 뮬러 등 이 시대 최고 거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어느 날 교수님들께서 저희들이 트리오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부르셨어요. 마침 그때가 선생님들께서 모여 리허설을 하고 계실 때였는데, 연주를 들려주시면서 당신들의 트리오 시절의 경험과 즐거웠던 일은 물론 힘들었던 일들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셨죠. 1970년대 결성된 트리오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에 대해 연륜이 느껴졌고, 존경스러웠어요. '앙상블 제이드'도 60살을 넘어 많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연주를 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죠.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음악적 기쁨이 될 것 같아요."
음악적 홀로서기, 깊이 있는 연주를 위한 고민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연주자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음악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무대에서 연주해야 하는 곡들의 작곡가를 떠올린다.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그 무엇인가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것은 작곡가의 감정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연주자는 작곡가를 대신하여 음악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연습을 위해 제일 먼저 피아노 앞에 앉기보다는 악보를 손에 쥐고 산책을 나간다. 천천히 거닐며 작곡가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바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마치 악보라는 무언의 편지에 숨어 있는 암호를 해독하듯이 작곡가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제 연주가 과연 깊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틈틈이 미술 전시회나 문학 등 다른 종류의 예술들을 탐색하고요. 중고등학교 시절, 수상 경력으로 인해 많은 연주를 부여받았을 때 문득 나의 연주 색깔이 궁금해지더라고요. 화려한 기교만을 내세우는 연주는 음악을 도구로 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을 낮춰 음악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먼저 갖는다면 좋은 연주자가 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연주자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무대에 올라가느냐에 따라 그 감정이 고스란히 연주에 묻어날 테니까요. 음악이 결코 나를 화려하게 해주는 장신구가 되어서는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고 믿어요. 어린 시절에는 잘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는 음악 안에서 나를 희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현재 유럽을 무대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효주가 피아노를 시작한 것은 6세 때.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였지만, 크고 작은 대회를 휩쓸 정도로 어려서부터 그 재능이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청중상, 특별상과 함께 2위 수상으로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입증받기 전부터 이미 그녀는 일찍이 미국 신시내티 국제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과 아시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상, 상하이 국제 콩쿠르 입상, 프랑스 Piano Campus 국제 콩쿠르 우승과 청중상 그리고 2007년 프랑스 에피날 국제 콩쿠르 2위 수상으로 세계 음악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의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소년한국일보 콩쿠르 금상을 비롯하여 조선일보 콩쿠르 1위, 이화경향 콩쿠르 1위, 대구방송 콩쿠르 1위, 음악저널 콩쿠르 대상, 음악춘추 콩쿠르 1위, 서울청소년 콩쿠르 금상, 음연 콩쿠르 1위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였다. 또한 서울예고 수석입학과 함께 '예원, 서울예고를 빛낸 사람들' 상을 받기도 했다.
"저는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갖는 준비 작업이 조금 긴 편이에요. 먼저 마음과 몸이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는 피아노 건반의 촉감을 느끼죠. 그거 아세요? 88개의 건반이 모두 각기 다른 촉감으로 느껴진다는 것을요. 이렇게 건반 하나하나와의 만남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연습에 들어간답니다."
그녀의 국내외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끝없이 이어졌다.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 부산시향, 상하이 심포니, 체코 츨린시향, 폴란드 크라쿠프 오케스트라, 비엔나 Mozart 오케스트라, 이태리 Grosseto 오케스트라, 스위스 Romande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 뿐만 아니라, 금호영재콘서트와 한·중 수교 10주년 초청 독주회, 프랑스 ANIMTO 초청 독주회, 프랑스 Annecy Festival & Academic 페스티벌, Loumarin 페스티벌, 폴란드 Duszniki 국제 쇼팽 페스티벌과 독일 드레스덴, 프랑스 파리, 체코 프라하, 스페인, 벨기에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초청 연주회를 가졌고, 2006년에는 외교통상부와 금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사절단으로 싱가포르에 파견되어 성공적인 연주를 하였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칸타빌레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고, 2008년 야마하 그랜드 페어 초청 독주회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음악은 나의 친구, 평생을 동행하고 싶다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재학 중 도불하여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하게 된 이효주는 피아노과 최우수 졸업에 이어 실내악전문사과정도 최우수 졸업하였고,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에서 최고전문연주자과정을 졸업한 후 현재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최고전문연주자과정을 수학 중이다.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유학을 가게 된 것 역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다. 2000년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던 당시, 이효주의 연주 실력에 감탄한 프랑스 심사위원이었던 마리안 리비치키의 초청으로 2001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회를 갖게 된다. 그때 우연하게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바로 유학이 결정되었다. 오디션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연주에 매료되었다.
"저에게 있어 음악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친구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수식어보다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금처럼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무대에서 청중들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언제부터인가 음악은 그녀의 삶 그대로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이효주의 참된 연주는 늘 듣는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녀의 피아노 선율이 국내 클래식 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 더 넓고 깊은 세계로의 행보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Vol. 49 SEPTEMBER 2011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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