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을 지날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지난 2016년 4월에 찾아뵌 적이 있는 작곡가 강석희 교수님이십니다. 당시 한남동에 자리한 일신홀에서 처음 뵙게 되었는데요. 그곳에서는 현대음악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객석의 맨 뒤쪽에 조용히 앉아 계셨지요. 저 역시 교수님 옆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때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지나가던 제자들이 깜짝 놀라 교수님께 다가와서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는 그때까지도 강석희 교수님이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것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저 푸근한 인상의 다정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거든요. "이 책 읽어 봤어?" "이 책 읽어 봐." 작곡가이신데, 책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셨던 것 같아요. 은퇴 후에도 더욱 열정적으로 곡을 쓰셨던 교수님의 별세 소식이 지난해 여름 날아왔습니다. 혼수상태에서도 허공을 향해 곡을 쓰시는 듯한 모습이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작곡가 강석희 교수님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강석희 교수님은 험난한 정글의 세계에 서 계셨던 창조의 마법사이셨습니다. 서울 올림픽 스타디움에 울려 퍼진 음악을 작곡하셨고, 이미 오래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음악을 작곡하신 분입니다. 한국 현대음악의 거장, 작곡가 강석희 교수님이 그립습니다.
정글의 세계에서 음악을 설계하는
창조의 마법사
작곡가 강석희
작곡가 강석희의 삶과 꿈은 오롯이 음악을 향해 있다. 늘 그의 행보는 새로운 음악세계로의 탐험이며 도전이었고, 무(無)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세상이 숨어 있었다. 풍부한 창조의 선율들이 악보 위에서 거침없이 내일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다. 자신만의 음색을 발명해 나가며 후배 작곡가들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길목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 등대가 되어 주는 든든한 울타리. 한국 작곡계의 버팀목, 강석희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본다.
글 엄익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음악을 위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이 펼쳐지는 경기장. 성화가 들어오며 흘러나오는 음악에 전 세계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침묵을 뚫고 흘러나온 음악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야금과 일본의 고토, 중국의 쟁을 하나의 음향 모델로 삼은 아시아적인 소리가 신비롭게 다가왔다. 점화 순간, 마치 1천5백 대의 트럼펫이 동시에 소리를 내뿜어내듯 그 웅장함이 압도적이었다. 마치 인류에게 불을 전해 준 거인국의 프로메테우스를 만난 것 같았다. 올림픽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날, 밤의 여왕의 속삭임이 경기장에 내려앉자 곧 성화가 꺼져갔다.
1988 서울올림픽 성화 음악 '프로메테우스 오다'. 당시 이 음악을 들은 각국의 작곡가들은 한결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음악을 성화에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팡파르적인 성격이 있는 트럼펫과 여성의 목소리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리를 컴퓨터에 집어넣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인 음의 질과 색깔을 표현해낸 이날의 음악을 직접 작곡하고 감독까지 맡았던 작곡가가 바로 강석희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그는 1966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음악인 '원색의 향연'을 작곡한 주인공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전자음악을 도입한 신음악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작곡가들은 집단 체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작곡가들인 것이죠. 마치 발명가와 같이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새로웠다. 일찍부터 농악의 리듬을 잘 이끌어내며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서 창작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결코 한국적인 음악 안에 갇혀 있지는 않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은 다양한 소재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전자음악을 비롯하여 타악기 주자를 위한 '예불', 관현악을 위한 '생성 69', 피아노를 위한 '정점' 등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였고, '가야금을 위한 다섯 개의 정경' 등 전통과 접목시킨 작품 및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오페라와 칸타타, 독주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 음악계에 놀라움을 안겨줬다.
1998년 '피아노 협주곡'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초연할 때였다. 연습을 시작하고, 불과 한 악장이 끝났을 때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브라보'를 외쳤다. 그리고 실제 연주가 끝났을 때에는 관중들이 기립박수로 그의 작품에 화답했다. 이유는 단 하나. 전혀 들어보지 못한 특별한 음악이었다는 것. 강석희의 작품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낸 하나의 발명품이었다.
제자의 미래를 밝히는 스승이 돼라
봄이 무르익던 2016년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는 강석희 교수와 함께하는 현대음악제가 성황리에 펼쳐졌다. '아츠 페스티벌 디멘션'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리는 이 음악제는 2005년부터 시작되어 그해 13회를 맞이하였다. 매년 국내외 작곡가들의 새로운 창작곡들이 초연되고, 국내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해외의 신작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 특히 올해 무대에서는 현재 베를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 안소정의 '후던잇'을 비롯하여 일본 작곡가 유리코 하세 코지마의 피아노 콰르텟을 위한 '고요한 정원' 등 5개의 세계 초연과 외국 작곡가들의 한국 초연도 선보였다.
"아츠 페스티벌 디멘션은 매년 주로 국내 작곡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물론 그동안 외국의 연주가와 작곡가들도 직접 참가하여 세계의 음악 정서도 함께 경험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어떤 작곡가도 현대성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시대이건 그 시대에 작곡된 것은 현대음악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또한 지나치게 우리 전통에 집착하여 작곡이 갖는 세계성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음악제의 다양화를 도모했던 것입니다."
강석희 교수는 현재 잘 알려져 있는 'Pan Music Festival'의 모태가 되는 국제 현대음악제를 1969년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하여, 현대음악의 국내 저변 확대와 세계화에 기여했다. 숱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기획부터 예술감독 역할까지 혼자 담당하며 개최하였다.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당대 유럽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소개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현대음악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우리만의 음악세계를 개척해 나갈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90년까지 이 음악제를 직접 주관하다가, 젊은 음악인들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후배들이 주축이 될 수 있도록 자리를 물려주었다.
"강석희 선생님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주셨죠. 20세기 후반 작곡가들을 많이 접하게 해 주셨는데, 그전에는 전혀 몰랐던 음악들이었어요. 선생님은 작곡 기술과 관련해서 정말 아주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과 독일의 음악학자 슈테판 드레스와의 대담을 엮은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라는 책을 보면, 진은숙은 강석희 교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늘 제자들이 보다 넓은 세계에서 성장하기를 바랐던 강석희 교수의 바람대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예술가란 기존에 닦아놓은 큰길을 따라가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험한 정글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모험정신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지요. 작곡가는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그 눈을 밝혀주는 것이 바로 선생으로서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객관적으로 제자를 안내해주는 사람이 바로 좋은 선생입니다. 학생 본인은 스스로가 최고라는 생각들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제자들의 창작 능력이 지금보다 20~30년 앞서가도록 꼼꼼하게 살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곡가로서의 기본은 창의력과 독창성
젊은 강석희에게 유럽 음악의 동향과 흐름을 깨닫게 해 준 것은 독일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이었다.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그를 만난 계기로 1970년 강석희는 독일로 건너가 하노버 음대에 있던 윤이상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베를린 음대의 보리스 블라허로부터 실험음악을 배웠다. 그리고 베를린 공과대학 통신공학과에서 음향학자 프란츠 빈켈을 사사했다.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이 음악을 만들 때는 감성적인 것을 앞세우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럴 경우 음악의 구조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기게 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죠. 저는 음악을 주관적 감성이나 감흥에 의해서가 아니라, 논리와 지성을 통해 접근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곡이란, 냉철한 이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논리로 음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플라톤은 음악을 피안의 세계에서 온 것이라며 신성시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스승인 피타고라스가 모든 소리를 수로 계산해서 화음을 만든 것에서 받은 영향일 것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저 세상에서 온 음악이란, 곧 이상적인 음악세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학생들을 대할 때 논리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작곡을 할 때나 가르칠 때 아주 자상하고 세밀하게 지도한다. 특히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지녀야 할 독창성과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를 제시한다. 그 영감의 원천은 바로 책 읽기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 그리고 중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옥타비아 파스 등의 작품들을 제자들이 꼭 읽도록 한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에도 쉽지 않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 할지라도 꾸준히 읽도록 독려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내면이 자극되고, 나름대로의 창의력이 키워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작곡가가 가장 많은 나라일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중에서 제대로 된 작곡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작곡가라면 꼭 갖춰야 할 창조적인 능력이 없다면, 기존의 작품을 베끼고 남의 화음을 복사하는 사람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저는 차라리 '작곡을 하지 말라'는 말을 서슴없이 건넵니다."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를 바라보는 강석희 교수의 가장 큰 아쉬움은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은 음악적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가 바로 한국일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클래식 음악의 발전이 놀랄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여줬죠.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구스타보 두다멜과 같은 좋은 지휘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입니다."
강석희 교수는 팔순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오히려 여느 젊은이들보다도 열정이 넘친다. 독일에서 부탁받은 오페라 작품을 비롯하여 실내악곡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까지 위촉받은 작업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음악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 그대로가 늘 제자들에게는 창작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음악으로 바라보는 작곡가 강석희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우리 클래식 음악계의 역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험난한 정글 안에서 내일의 음악을 향해, 그리고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길을 열어가고 있다.
Vol. 105 MAY 2016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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