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인생의 나침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시대의 개척자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작은 방해물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평탄한 길을 걷는가 하면, 때로는 비상구조차 찾을 수 없는 실패의 소용돌이 안에서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 때도 있다. 에디슨은 축전지 실험에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나는 만 가지의 실패를 알아냈을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것은 곧 '실패가 패배가 아니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경험들이 오히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 멋진 도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글 엄익순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늘 주의가 산만하고 성적이 형편없었던 파블로 피카소는 학생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만든 독방에 불려가 종종 다른 학생들과 격리되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감옥 같은 방에서 혼자 있는 그 시간에 종이 다발을 들고 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평면적인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입체주의 미술 시대를 연 피카소는 5만여 점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대변된다. 무섭고 외로웠을 법도 한 독방에서의 생활을 피카소는 오히려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꿔버렸다.
어릴 적부터 상상력이 기발했던 꼬마가 있었다. 따분할 때마다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 누이동생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자신 역시 겁이 많은 편이라서 뒤뜰의 나무나 옷장 안, 벽의 갈라진 틈에서 사는 괴물을 상상하면서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채 공상에 잠겨 있을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 세 명의 여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짧은 공포 영화를 찍기도 했다. 친구들과 권투를 하다가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케첩을 몸에 뿌리기도 했고, 가스레인지 위에 체리를 넣은 압력솥을 올려놓고 냄비가 터져버릴 때까지 가열하여 폭발 장면을 직접 연출한 적도 있다. 열두 살 무렵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8미리 카메라로 가족들을 촬영하면서 그는 단순히 일상생활을 찍는 것보다 줄거리를 만들어서 촬영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열네 살 때에는 20~30여 명의 친구들을 모아 40분짜리 전쟁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바로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인정받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영화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는데, <E.T>의 주인공 앨리엇은 그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고, 자신이 느끼던 공포감을 <죠스> 같은 공포영화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으며,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 학살 장면도 유대인 출신이기에 생생한 연출이 가능했다고 평가된다. 피카소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경험을 예술로 꽃 피운 것이다.
절망에 무릎 끓지 않고 일어서다
대문호 페오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혁명에 가담한 혐의로 '시베리아에서 4년간 중노동'이라는 형벌을 받는다. 그는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수감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고, 이러한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의 작품을 남겨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한 사람이자 단편소설 작가, 문학비평가로 명성을 떨친 에드거 앨런 포는 '의무 불이행'과 '명령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웨스트포인트에서 추방당하는데, 그가 일찍이 시를 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고난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 <왕과 나>에서의 열연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율 브린너는 낙마로 불구가 될 위험을 넘기고 프랑스의 원형극장에서 3류 곡예단의 곡예사로 무대에 오른다. 그러한 무명시절을 거치며 연기에 대한 간절했던 열정이 묻어나는 그를 우리는 개성파 배우로 추억한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겨우 11세에 무려 14번째의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이애미에서는 드라마를 공부하지만, 교수는 연기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그를 단념시키려 했다. 이후 그는 포르노 배우를 하면서도 연기자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대부>, <개 같은 날의 오후>, <서피코> 등의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발탁되지 못한다. 그러나 스탤론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록키>의 대본을 직접 쓰고 주연으로 활약하며, 결국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거듭되는 실패 경험이 오히려 그를 우뚝 서게 했다.
생각의 힘, 세상을 얻다
"고아원에 있을 때나 음식을 구하려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단다. 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자신감에 푹 잠겨 있을 필요가 있었지. 그게 없었다면 아마 인생에 짓눌려 버렸을 거야." 자신과 이름이 같은 '찰리'라는 영화 속 인물을 만들어 직접 연기했던 찰리 채플린이 자신의 아들에게 한 말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재미있게 풍자하여 당시 경제 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가난에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그가 어려움에 처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믿음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런던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채플린은 먹을 것이 부족해 늘 배가 고팠고,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이혼 후 혼자 채플린 형제를 키우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보육원에서 한동안 지내게 된다.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유랑극단에 들어가게 된 그는 그곳에서 춤과 노래, 무언극의 기본기를 다지게 된다. 열일곱 살에는 영국 최고의 희극 극단에서 활동하는데, 그의 공연을 본 영화 제작자 맥 세넷이 채플린을 할리우드에 초청한다.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영화를 찍게 되고, 얼굴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채플린은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 찰리 채플린의 아이디어가 뛰어난 것은, 서로 모순이 되는 것들을 결합시켜 웃음을 자아내는 데 있다. 아주 작은 중절모에 엄청나게 큰 신발을 신고, 통이 넓은 바지에 꽉 끼는 윗옷을 결합시킨다. 그는 어린 시절 아프게 경험했던 슬픔을 웃음으로 길어 올린 작은 거인이었다.
세상에는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일으키는 일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그에 반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다. 거대한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는 특별한 위기와 모험, 오해와 시련, 그리고 희망 등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삶의 경험들이 한 조각 한 조각 맞춰질 때 비로소 완성된 하나의 그림으로 채색되어 아름답고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서게 될 것이다.
Vol. 23 Summer 2015 행복울림
엔리코 카루소, 세상 밖 어딘가에서 웃고 있는 외로운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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