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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아름다움/책

정보라 소설 <창문>, 인간의 뇌를 통째로 데이터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by 난짬뽕 2025.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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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 지은이: 정보라
  • 초판 1쇄 발행: 2024년 9월 11일
  •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인간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할 수 있다. 학습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은 스스로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가짜 정보, 광고, 보기 좋게 연출되고 그럴듯한 다량의 거짓과 한 조각의 진실이 눈속임하기 좋은 비율로 뒤섞인 SNS 포스팅을 흡수한 인공지능은 결과적으로 현실의 인간 생활과 거리가 먼 관념들을 폭넓고도 강력하게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 데이터에 반영된 빈부 격차, 데이터의 바탕에 깔린 온갖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도 연구 기관과 교육 기관, 시민사회단체들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했다. 그리하여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은 "당신의 뇌를 통째로 삽니다"였다.

'진짜' 인간의 의식을 깡그리 업로드하고 그 방대한 데이터를 매핑해서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사실적인 정보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키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통계나 지표들을 길잡이로 삼아 실질적인 사회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것이었다p 15-16

정보라 작가의 <창문>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인 위픽의 한 권이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작품의 소재부터 내용까지 무척이나 흥미로워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시대, 정부는 인간의 뇌를 통째로 데이터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터넷을 떠도는 '가짜' 정보가 아닌 '진짜'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다는 대목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달리 갈 곳이 없던 주인공은 공짜로 재워주고 돈도 준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후 산골짜기 한가운데에 위치한 기계학습센터에 입주한다.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 된다"는 광고 문구는 마치 미래형 매혈이나 장기매매를 연상시켰는데, 산골짜기 한가운데 폐교된 대학교 기숙사를 개조한 그곳에 행정이나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난, 살아 있으니까 살고 있을 뿐인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행정의 관점에서 볼 때 서울 한복판에 전입신고를 하고 주소지를 갖고 살 돈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밀려나고 밀려나다 못해 이 산속에 모여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으니까 살고 있을 뿐이다. 

너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듯, 네가 죽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밟았다. 기분이 좋았다. 겨울 산길은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얼어붙은 땅과 내 발 사이에서 사람의 목이 우두득, 하고 부러졌다p 68-69

이 책 <창문>의 주인공은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주인공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보라 작가는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이 가해자로서 폭력을 행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주인공인 나에게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희망이 없었기에,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도 없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한 현실과 고통을 피해, 나는 주인공이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한 뼘짜리 창문 틈새로 겨우 보이는 저녁 해가 분홍색과 붉은색 햇살을 뿌리며 저물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 창문이 주인공을 또 다른 세계로 걸어가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정보라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아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23년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소설집 <저주토끼> <한밤의 시간표>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장편소설 <호> <고통에 관하여> <밤이 오면 우리는> 등, 에세이 <아무튼, 데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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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 평범한 존재들의 단단한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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