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짧은 만남, 긴 여운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

난짬뽕 2020. 11. 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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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ALPAK class> 여름호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산업디자인계의 선구자라고 대변될 만큼, 남다른 시각으로 매번 놀랄 만한 일들을 해온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의 사무실은 곳곳에서 독창적인 감각이 느껴져 자꾸만 시선이 갔습니다. 사진 촬영을 하고 계신 분은 유승현 실장님입니다. 

 

꿈과 상상력의 미학, 추억을 간직하고 미래의 가치를 담다

이노디자인 대표 김영세

 

언제나 화두는 세상을 보는 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들이 호흡하는 생활과 문화, 그리고 공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포근한 자유스러움을 시각화했다. 상상 속에서 이미 완벽한 디테일을 갖춘 이미지들, 그 중심에는 바로 사람이 자리해 있다. 매번 설레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디자인하는 김영세의 스케치에는 한여름 날의 태양보다도 뜨거운 사랑이 묻어난다. 

글 엄익순

사진_ hu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소중한 고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우리가 늘 마주치는 일상에서의 관심과 배려, 그 속에서의 특별한 감정들이 솟아오를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미 만들어진 기존의 형식과 전략에 맞춰 자신의 상상력을 가두지 않았다. 잘 다듬어진 상품 기획서와 제품 설명서, 디자인 의뢰서 역시 그의 차별화된 창조성의 근원이 될 수는 없었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공감하는 마음이 어떤 학문적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그의 디자인은 한국의 전통과 서구문화까지 아우르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혁신과 창조의 아이콘, '김영세'라는 이름만으로도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가슴 뛰는 도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무심코 펼친 <Industrial Design>이라는 산업디자인 잡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그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디자인이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디자인이라는 용어조차 없었던 시절. 그때까지 디자인이라고 하면 패션이나 인테리어, 광고 정도의 분야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전부였다. 그는 좀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해 대학공부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 당시 미국은 이미 산업디자인 분야가 궤도에 올라 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죠. 자동차를 비롯하여 전기, 전자에 이르기까지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공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대량 판매 정책의 일환으로 제품의 색채나 형태, 가공 등에 있어서 미적 요소를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산업디자인의 발달을 이루었다. '디자인이 나의 미래의 직업이다'라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그는 미국을 떠올렸다. 

창조를 통한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

디자인의 깊이를 알아갈수록, 그의 열정과 노력 또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서른 살 무렵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된 것. 그러나 컴퓨터와 반도체 등 신산업이 무섭게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곧바로 실리콘밸리로 달려간다. 독일공작연맹이나 바우하우스가 디자인 이념의 육성에 힘을 기울였지만, 실제로 산업디자인이 산업계의 요청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공업국인 미국이었다. 특히 그가 공부했고, 교수 생활을 했던 시카고를 중심으로 디자인 발달이 파생되었다. 이후에는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창조의 새로운 시도가 집중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가 자리 잡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바르셀로나의 건축 미학도, 고전과 현대의 완벽한 조화가 묻어나는 파리의 낭만도, 갈등을 해소하며 휴머니즘의 도시로 등장한 런던이나 복원과 조화를 통한 일본의 디자인 도시들과는 그 색채가 다르다. 

"실리콘밸리의 핵심은 자유스러움에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보다 모험적인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죠. 이러한 도전이 없었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산업의 중심지에서 그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열어갈 열정의 씨앗을 심었다. 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 전문 회사를 세운다. 

 

한국인 디자이너로서의 꿈, 세계를 품다

그는 일 년에 수십 번씩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간다. 그럴 때마다 매번 마음에 새기는 것은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꿈이다.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 시작은 태극기에서 영감을 얻은 'T-라인 프로젝트'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한국인들의 부드러운 성품이 연상되는 태극의 유려한 곡선과 우리 민족의 강직함과 패기가 느껴지는 건곤감리의 직선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 컬렉션이 바로 그것이다. 패션 소품과 문구, 생활기기는 물론 공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시도를 통해 세계 곳곳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펼치고자 한다. 

 

***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산업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같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6년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최초로 디자인 기업인 이노디자인을 설립했으며, 1999년에는 한국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IDEA 금/은/동상을 모두 휩쓰는 진기록을 남겼으며, 독일의 iF와 reddot, 일본의 Good Design Award 등의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받았다. 

 

그동안 이노디자인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한다'는 슬로건 이래 디자인의 혁명에 가까운 제품들을 선보여 왔다. 목걸이형 MP3플레이어, 가로 본능 휴대폰, 거울이 바깥에 달린 슬라이딩 팩트, 키보드가 접하는 노트북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디자인 결과물들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제품 디자인 이외에도 비주얼, 사용자 인터페이스, 공간 디자인, 그리고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토털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으로 발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12억짜리 냅킨 한 장>, <이노베이터>, <이매지너>, <퍼플퍼플> 등이 있다. 

 

 

나무인문학자 강판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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