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짧은 만남, 긴 여운

나무인문학자 강판권 교수

난짬뽕 2020. 11.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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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사보 <한일>

 

나만의 인생속도로 즐기는 행복철학

나무인문학자 강판권 교수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말하는 계명대 사학과 강판권 교수. 그는 어린시절부터 늘 함께했던 나무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읽고, 삶의 지혜를 배운다. 지금까지 선보인 자신의 저서 스물다섯 권 중 나무와 관련된 책은 모두 열다섯 권. 좋아하는 나무를 화두로 삼아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이뤄나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글 엄익순

 

사진_ hu / 스스로를 '쥐똥나무'라 칭하는 나무인문학자. 나무에 깃들여 있는 사연을 더듬어 인류의 기나긴 궤적을 읽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나무철학을 풀어놓기 위해 건축, 조경, 미술, 사진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다

'10점 만점에 10점'. 강판권 교수는 잠시 동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행복지수에 대해 만점을 부여한다.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스로가 좋아하는 나무를 벗 삼아, '수학(樹學)'이라는 자신만의 학문을 만들어 왔다는 데 있다.

"개개인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직업을 가진다면 정말 좋겠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그에 비해 저는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무와 인문학이 서로 어우러지는 공부를 지금까지 해올 수 있어 참으로 즐겁습니다."

 

그는 소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차나무, 뽕나무 등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세상의 발자취를 담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을 비롯하여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세상을 바꾼 나무>,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중국을 낳은 뽕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 등 나무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세계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는 요즘에도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연구실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강의와 전국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특강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의 흐름조차 놓쳐버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할 때가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를 연구하는 것이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해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한 애정을 전공분야에 접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것이 학문으로 이어지는 것만 해도 매우 감사한 일인데, 많은 사람들과 나무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항해하는 삶의 나침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여름에는 소에게 풀을 먹였고, 겨울에는 땔감을 마련했던 고향 창녕의 마을 뒷산은 지금까지도 그의 마음의 고향이다. 산을 누비며 나무들 사이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았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학을 전공한 역사학도로서 중국사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자신의 전공분야에 농사를 접목한 중국 농업 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은 어릴 적부터 나무와 함께했던 뒷산에서의 옛 추억으로 인해 가능했다. 그에게 있어 나무는 따뜻한 위로를 주는 영원한 멘토이자 삶의 나침반이었다. 계절의 풍파에 상처를 입은 나무를 통해 오히려 결과 무늬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나무의 품에 안겨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며, 크고 작은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듯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나무여행이 이제는 그의 삶의 큰 뿌리가 되어 인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강판권 교수에게 한층 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언제나 나무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순간부터 마음은 즐거움으로 충만했고, 나 자신의 정체성과 내가 풀어나가야 할 학문의 방향성에 이르기까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아주 오래 전 대구에서 찾아뵈었던 교수님의 모습이 보이네요.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분은 정준택 실장님이십니다.

 

나무처럼 살면 행복하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혼돈이 오는 요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게 길을 묻고 있습니다. 단지 지식을 전달하거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인문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인문학은 자기철학을 만드는 과정이며, 그 철학은 곧 삶의 방식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누구든지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 역시 나무에 대한 학술적인 이론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 제가 깨닫게 된 저의 이야기를 건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에 바로 나무의 가치가 존재합니다."

나무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대로 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고 한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실천한다. 이것은 자신의 인격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성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자신을 위한 공부가 결국 남을 위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능동적인 자세를 갖지 못한 채, 회사를 위해서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은 당장 버리라고 강판권 교수는 조언한다. 왜냐하면 불행은 바로 그것으로부터 발화되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부분이 많다면 섭섭함이 커지고 상실감에 따질 경우가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나무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색깔을 바꾸지 않는다. 시간의 순리에 맞게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에 맞서 푸름을 뽐내기도 한다. 꽃이 예쁘다는 칭찬에 마음이 흔들려 낙엽이 다가올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제 역할을 다하며 자연 속에서 배려하고 기다리는 소통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나무에게 사람들은 언제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찬사를 보낸다. 우리들도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움츠려들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인생속도에 맞춰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나만의 경험을 살려라

"즐겁게 일하는 비결 가운데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자존감입니다. 나 자신을 수용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작은 바람에도 끊임없이 흔들리게 됩니다. 만약 지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진정으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경험해 봐야 합니다.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나무의 지혜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나무들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왔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었다. 강판권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을 축적하라고 강조한다. 나만의 철학을 만들지 못하면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인다.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장점을 살려 농업사로 학위를 받은 것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던 나무와 학문으로 해후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개인적인 경험의 생산화'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자신의 경험세계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창의력을 발휘하게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세상 속으로 행복한 항해를 떠나기 위해 인생의 돛을 올리는 우리들의 마음에 나만의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본다. 거친 파도를 만났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드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

2016년 여름호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산업디자인계의 선구자라고 대변될 만큼, 남다른 시각으로 매번 놀랄 만한 일들을 해온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의 사무실은 곳곳에서 독창적인 감각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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