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곤돌라를 탈 생각은 없었다. 이미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건너는 다리 위에서 수많은 곤돌라들을 마음껏 시선에 담은 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생각이 지나가고 있는 순간, 남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화면으로 탄식의 다리를 스치는 곤돌라의 모습을 보여주자, 남편이 말했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는 타 줘야지!!!"
곤돌라(Gondola)는 길이 9m, 폭 1.5m 정도의 배로, '흔들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좁고 길쭉한 배다. 약 3m나 되는 긴 노를 젓는데, 곤돌라의 사공을 '곤돌리에레'라고 부른다.
현재 베네치아에서 손님들을 태우는 곤돌라는 모두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는 한때 곤돌라를 치장하는 것이 너무나 지나쳐, 1562년에 시에서 검은색으로 통일할 것을 공포했다고 한다.
곤돌리에레가 되기 위한 자격도 엄격한데, 이들은 베네치아에서 나고 자라야 하며 적어도 4개 국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역사에 관한 공부도 해야 되고, 베네치아의 구석구석까지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춰야 하며 자격증 시험도 봐야 하기 때문에 공인 곤돌리에레가 되기 위한 과정은 까다롭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는 곳은 선착장을 비롯하여 골목의 수로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이 가보고 싶은 주변을 따라 목적지를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곤돌라를 타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나는 베네치아가 시작되는 선착장에서부터 탄식의 다리를 지나 수로를 따라 골목 안쪽까지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다. 빨강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곤돌리에레들 중에서 이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태운 곤돌리에레는 겨울의 베네치아도 무척이나 아름답다면서, 다음에 베네치아를 올 때에는 겨울에 방문해 보라는 얘기를 했다. 그 이유는 요즘 같은 때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다는 것. 겨울에는 관광객들이 적어 여유 있게 베네치아의 참모습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탄식의 다리 앞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입맞춤을 하면 영원한 사랑을 간직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노을이 질 때쯤이면 많은 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이 바로 탄식의 다리이다. 탄식의 다리를 가운데 두고 왼쪽은 두칼레 궁전, 오른쪽은 프라지오니 감옥이다. 베네치아는 신분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법정에서 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프라지오니 감옥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때로는 물이 차올라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에는 다리 중간에 보이는 격자무늬의 구멍 사이로 밖을 내다보며 탄식을 쏟아냈다고 하여, 이곳을 '탄식의 다리'라고 부른다.
최대 6명까지 탈 수 있는 곤돌라를 나 홀로~~ 그러나 곤돌리에레가 베네치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서 좋았고, 나도 궁금했던 점들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비용을 나 혼자 지불했지만, 남편 말대로 곤돌라를 타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다리를 건널 때에는 보다 천천히 내가 조형물들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속도를 낮춰 주었다.
탄식의 다리 통로에 있는 저 격자무늬 구멍을 통해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모습을 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지나면서 만났던 어느 다리보다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탄식의 다리에 얽힌 이야기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바로 지아코모 카사노바의 집이다.
문학가이자 모험가였으며, 재치와 폭넓은 교양으로 외교관과 재무관, 스파이 등의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던 카사노바는 추문으로 이 감옥에 투옥되었지만, 최초로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도 교류가 잦았던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특히 그가 쓴 <회상록>은 8세기 유럽의 사회와 풍속을 아는 데 귀중한 기록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우리 곤돌라 옆으로 여성 곤돌리에레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곤돌리에레는 남성만이 가능했지만, 2010년 8월에 조르지아 보스콜로라는 여성이 최초의 공인 곤돌리에레가 되었다고 한다.
약 900년간 여성 곤돌리에레는 금기시되었지만, 보스콜로는 이를 부당하게 여겨 법정 공방을 펼쳤고, 끝내 자신의 소신대로 여성 곤돌리에레가 될 수 있었다. 그녀의 강한 신념으로 인해 여성 곤돌리에레의 길이 열린 것이니, 정말로 대단하다.
수로 위를 흔들흔들, 탄식의 다리를 지나 카사노바의 집도 구경하며 이 시간만큼은 느린 여행자가 되었다.
원래 곤돌라를 타는 비용은 짧은 구간은 80유로, 그보다 조금 더 긴 구간은 100유로로 정해져 있다. 나는 곤돌리에레와 처음에 조금 더 먼 거리를 오래가는 것으로 얘기를 하여 120유로를 주고 탔다.
곤돌리에레의 노래 대신 베네치아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참으로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베네치아에서는 조급해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으며 수로의 반짝이는 물결을 따라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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