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아벨 콰르텟, 거침없는 불꽃들의 드넓은 항해

난짬뽕 2021. 1. 1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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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삼성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처음 아벨 콰르텟을 만났을 때, 그들에 대한 첫인상은 '유쾌함'이었습니다. 네 명의 연주자가 서로 음악적인 이견을 보일 때는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영화 대사를 따라 하는 것이 취미인 김세준 비올리스트가 유명한 배우들의 목소리로 인터뷰를 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창단 멤버인 김세준 연주가는 독일 하노버 NDR라디오필하모닉 수석 연주자로 발탁되어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로서의 새로운 음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네요. 2월 정기연주회 소식이 들려오던데, 비올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멤버가 바뀌었지만 아벨 콰르텟이 건네는 감동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열정의 돛을 올린,

거침없는 불꽃들의 드넓은 항해

아벨 콰르텟

 

아벨 콰르텟(Abel Quartet)의 음악은 여느 현악사중주단의 색채와는 많이 다르다.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겁게 뿜어져 저항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듣는 사람들의 심신을 묶어놓는가 하면, 어느새 잔잔한 강물에 반사되는 맑은 햇살처럼 빛나는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누구든 이들의 음악을 듣게 된다면, 아마도 스무 살 젊은 날의 첫사랑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글 엄익순

 

 

최상의 하모니를 추구하다

한 번도 우승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자 집중했을 뿐. 콩쿠르는 젊은 신인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연습에 몰두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곡들을 공부하고 서로 맞춰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함께 연주하는 것이 즐거웠고 대회를 준비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음악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디딤돌 같은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아~' 하는 탄성이 자신들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오래전부터 함께 해오던 작품이었지만, 왠지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악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울림도,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전율도 한층 더 깊어졌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세세한 부분들이 한순간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 Jino Park / MOC 프로덕션

 

네 명의 멤버 모두가 국제 콩쿠르에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실력 있는 연주자들로 자신만의 연주 색채가 뛰어나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하는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하나가 아닌, 넷의 하모니가 모아졌을 때 최상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하나의 소리만을 끝없이 추구했다. 단정하면서도 깔끔한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신뢰가 간다. 애써 드러내는 치장을 하지 않아도 화려하다. 그래서 한순간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혹적인 향기가 스며들면서도,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처음 넷이 호흡을 맞출 때는 팀으로서 함께 어우러지고 조화를 이루는 면을 중시했었던 것 같아요. 그 기초단계가 튼튼해지자, 점차 우리가 내고 있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죠. 요즈음에는 작곡가의 메시지를 우리가 연주를 통해 어떤 음악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요."(Violin 이우일)

 

2013년 새로운 도전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아벨 콰르텟은 시작과 함께 거침없는 질주를 해왔다. 지난 2014년 독일 아우구스트 에버딩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음악인들의 시선을 모았고,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1위, 그리고 제11회 리옹 국제 콩쿠르 2위와 청중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려 3개의 저명한 국제 콩쿠르에서 순위 입상을 하는 놀라운 기록으로 실내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향한 질주

아벨 콰르텟은 바이올린 윤은솔, 이우일, 비올라 김세준, 첼로 조형준으로 구성된 현악사중주단이다. 'Abel'은 라틴어로 '생명력'을 의미하는 단어. 실제로 그들은 우리나라 실내악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로콰르텟 캠프에 참가하여 크리스토프 포펜과 라이너 슈미트의 가르침을 받으며 음악적 견고함을 단단히 하였고 그들의 음악적 방향성을 재정립하여 유럽 무대에서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이후 같은 해에 독일 실내악 페스티벌인 Tage der Kammermusik에 참여하였는데, 그들의 연주는 독일 바이에른 방송에서 라디오로 독일 전역에 중계되며 아벨의 음악적 역량과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솔로로 무대에 서는 것보다 아벨의 이름으로 연주하는 것이 더욱 즐겁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은 2004년 부산음악 콩쿠르 1위, 2006년 중앙음악 콩쿠르 1위, 2008년 KBS 한전음악 콩쿠르 등의 국내 저명 콩쿠르들을 석권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 독일 앙리 마르토 콩쿠르에서 2개의 특별상 수상, 이탈리아 제19회 포스타치니 국제 콩쿠르 우승, 일본 이시카와 음악 아카데미 장학생 선발로 국제무대에서도 입지를 드러내며 차세대 아티스트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사진 Jino Park / MOC 프로덕션

 

예원학교 수석 입학 졸업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17세에 예술영재로 조기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우일은 2008년 중앙일보 콩쿠르 1위, 2011년 KBS 신인음악 콩쿠르 1위를 석권하며 국내 무대에서 화려하게 그 이름을 알렸고, 2007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요하네스 브람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3위에 입상하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익히 입증하였다. 현재 윤은솔과 함께 뮌헨국립음대에 재학 중이다.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김세준은 대한민국 청소년 콩쿠르, 서울 바로크 합주단 콩쿠르 1위 수상 등 영재 아티스트로서 일찍이 주목받았으며, 홍웨이 황의 가르침으로 비올라로 전향하며 새로운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었다. 비올라 전향 직후 제6회 대관령 국제음악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2013년 폴란드 Jan Rakowski 국제 콩쿠르 우승, 2014년 힌데미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라트비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 열린 국제 첼로 콩쿠르 및 실내악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국제무대에서 먼저 음악적 실력을 인정받은 첼리스트 조형준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다수의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예술대학에서 플로리안 키트를 사사하고 있다. 

 

4인 4색, 실내악의 묘미를 보여주다

"요즈음 저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대중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예요. 각자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개인의 연주에 집중했었던 예전과 달리 콰르텟으로 연주하면서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더 나아가서 관객들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의 느낌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다는 소소한 이야기들, 저희가 연습하면서 느꼈었던 감정들에 대해 서로 교감한다면 현악사중주단의 음악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지 않으실까요?"(Cello 조형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실내악에 대한 저변 확대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클래식 애호가들은 콰르텟 부분의 레퍼토리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오케스트라나 솔로 곡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곡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저희들이 연주했을 때, 그 곡을 알고 오시는 경우보다는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음악들이 많으실 거예요. 실내악 중에서도 콰르텟의 레퍼토리가 광대한데, 많은 기회를 통해 다양한 곡들로 실내악의 묘미를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벨 콰르텟의 이름으로 정말로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좋은 음악과 연주로 그 고마움을 보답해가고 싶습니다."(Viola 김세준)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정할 때는 정말로 저희 멤버 모두가 심사숙고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데, 아벨 콰르텟의 색깔을 각인시킬 수 있는 알찬 무대를 만들어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아벨 콰르텟의 진면목과 매력을 모두 보여드리면서, 관객분들도 좋아하실 음악으로 잘 준비하겠습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뵐게요."(Violin 윤은솔) 

 

아벨 콰르텟은 연습을 할 때 음악적인 이견이 생길 때에는 늘 다수결로 결정한다고 한다.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의 간극을 줄이고 다시 한번 그 사항에 대해 의견을 절충하는 방법으로 가장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멤버는 네 명, 2대 2로 나누어질 때는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있다. 

 

"저희 팀의 해결사는 세준이에요. 의견을 조율할 때 저희들이 납득할 만한 이론적인 제시를 해주죠. 음악적인 감각 또한 뛰어나요. 연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연주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가 세심하게 챙겨주곤 해요. 은솔이는 팀을 이끌어가는 강단이 있고요. 바이올린이 아니었으면 요리사가 되었어도 세계 최고가 되었을 우일이의 요리 솜씨는 정말 '엄지 척!'. 우일이는 저희들 중에서 음악적 호소력이 제일 짙어요."(Cello 조형준)

 

베테랑 성우보다도 더 멋진 목소리가 매력적인 김세준의 취미는 영화 대사를 따라 하는 것. 영화 대사만으로 모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고 모두들 귀띔한다. 

 

"형준이는 삶의 계획이 정확하고 반듯해요. 돌다리도 두드릴 만큼 행동이 신중하고, 성실해서 믿음이 가죠. 클래식 이외에도 재즈, 컨트리음악,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어, 우리 팀의 음악적 감흥을 키우는 데 많은 정보를 전해줍니다."(Viola 김세준)

 

4인 4색의 아벨 콰르텟은 각기 다른 개개인의 음악적 색채가 하나로 물들어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있다.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무대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펼쳐나갈 출발점에 서서 열정의 돛을 올리는 그들의 거침없는 항해가 기대된다. 드넓은 음악의 세계를 향해 항해를 떠나는 아벨 콰르텟의 음악이 거센 물결을 가르며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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