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제주도에 가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제주도의 바다와 파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한 나의 말에 대해 그 이유를 묻는다면, "무심해서. 너무 살갑지 않아서 좋아."라고 덧붙일 것 같다.
제주도의 바다는 결이 다르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이가 있고, 진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포말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사연들이 한 겹 두 겹 켜켜이 포개져 밀려왔다가는 다시 멀어진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그곳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제처럼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킨다.
진중한 모습의 제주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어떻게 바다에서 이런 향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바다가 원래 다 그런 거야,라고 나한테 핀잔을 준다 할지라도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묵직한 파도소리 또한 한몫을 한다. 다른 곳의 파도와는 다가오는 모습부터 다르다.
오는 사람에게도, 떠나가는 사람에게도 그리 특별하지도 않고 강렬한 인사를 건네지도 않는다. 다만 바다를 향해 스치는 인연들을 묵묵히 받아줄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무심하게 느껴지는 제주의 바다. 그 요란스럽지 않은 모양새 그대로가 나는 좋다. 그저 내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는 좋은 사람 같다. 흐르는 시간을 지키는 낮고 진중한 목소리. 나는 가끔씩 무심한 제주도의 바다가, 그 파도소리가 그립다.
파도의 말
이해인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마음놓고 울어줄게
오랜 나날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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