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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불완전함, 글렌 굴드

난짬뽕 2020. 11. 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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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불완전함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한여름에도 장갑을 낀 채, 머플러를 두르고 코트까지 입고 다녔던 글렌 굴드(1932.9.25~1982.10.4). 완벽한 연주를 위해 무대를 떠나 리코딩만을 고집했던 그는 자신 안으로 침잠하고자 했던 고독한 거장은 아니었을까. 콧노래를 하는 듯한 허밍을 통해 자신이 뿌려놓는 피아노 선율과 호흡을 맞추기도 한 글렌 굴드는 종속을 거부하는 자유인이었다. 

글 엄익순

 

피아노 앞에 앉은 글렌 굴드의 연주 모습은 특이하다

 

"기인? 점보 747기에 자신의 피아노를 싣고 다니는 호로비츠도 있는데, 뭐."

 

1955년 CBS 레코드와 계약한 굴드는 6월 26일부터 일주일에 거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할 예정이었다. 당시 뉴욕 스튜디오에 모인 레코딩 스태프진들은 '괴팍한 성격의 기인'이라는 그의 평판에 대해 그리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했다. 왜냐하면 예술가라 불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에게 있어서의 특이한 행동이나 까다로운 버릇 등은 이미 낯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6월인데......"

 

스튜디오에 나타난 굴드의 모습과 마주친 사람들은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화창한 여름날 짧은 소매의 웃옷을 걸친 스태프진들 사이로 그는 머플러를 두르고, 장갑을 낀 채 코트까지 입고 있었다. 더욱이 뉴욕의 물은 마실 것이 못된다며 두 병의 물과 5개의 약병을 따로 준비했으며, 어디를 여행하든 빼놓지 않고 들고 다니는 의자도 역시 눈에 띄었다. 또한 연주가 시작되기 전 그는 두 팔을 뜨거운 물속에 약 20여분 간 담근 후, 자신이 직접 가져온 커다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어휴, 저 소리를 어떻게 하지?"

 

드디어 녹음이 시작되었다. 가슴을 피아노 건반에 밀착시키듯 앞으로 구부렸다 젖혔다를 반복하는 그의 팔꿈치는 밑으로 축 쳐진 채, 손바닥과 건반 사이의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의 손은 쭉 펴져 있었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피아노 앞에서의 바른 연주 자세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는 그의 모습은 제쳐두고라도, 연주 중 흘러나오는 그의 허밍 소리는 정말 골칫거리였다. 가끔씩 입을 뻐끔거리면서 새어 나오는 흥얼거림. 리코딩 스태프진들은 그의 허밍 소리를 흡수하지 않도록 마이크 세팅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굴드의 앨범 속에는 자신의 피아노 선율 속에 한껏 취해 있는 그의 목소리까지 함께 실려 있다. 

 

Sony Music / BACH: THE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 PIANO

 

완벽한 연주를 위해 무대를 떠난 고집쟁이

고교 시절 나의 하숙집 바로 옆집은 아주 넓은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언제나 감미로운 커피 향기와 함께 곡명도 알지 못하는 클래식 선율이 우리의 등교길을 함께 하곤 했다. 그날 역시 예외 없이 음악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느 유명한 음악가의 연주라고 하기에는 왠지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의 명료한 터치감이 나의 발걸음을 묶어 두었다.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듯 위협적이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채, 마치 피아노를 처음 배우게 된 어린 꼬마가 악보와 건반을 번갈아 보며 정확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 마치 모범답안 같은 연주 분위기가 한참을 듣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한동안 그 여운에 빠져 있던 나는 며칠이 지난 토요일 오후, 그 집의 벨을 눌렀다. 굳이 클래식 음악에 심취해 있던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가 또한 있지 않았던 나는 그 곡과 연주자가 궁금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다. 캐나다 출생의 '글렌 굴드'라는 피아니스트이지."

 

교환교수로 우리나라에 온 지 3년이 다 되어간다는 그들은 백발이 성한 미국인 노부부였다. 

 

"굴드의 삶은 관심과 더불어 동시에 비난의 표적이었지. 세인들은 음악적인 연주 자체 보다는 오히려 그의 기행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 허밍? 글쎄. 고독한 연주가가 자신을 상대로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 안으로 자꾸만 침잠해 가는 그러한 모습, 왠지 굴드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들어."

 

굴드는 어느 한 곳에 종속되기를 싫어 했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 주변인들과의 친화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독주자의 영역이 있는 협연과는 달리, 실내악에 있어서 그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줄리어드 4중주단과 함께 한 슈만의 <4중주 작품 47>이나, 몬트리올 4중주단과 공연한 브람스의 <5중주 작품 34>와 같은 작품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리 돋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1957년 4월 9일과 10일,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컬럼비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베토벤 협주곡 제2번>을 녹음할 때였어. 굴드는 번스타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해 하는 가운데에서도 계속 몇 개의 트릴을 다시 녹음하자고 고집을 부렸다는 거야. 완벽하게 녹음을 끝마치고 나서도 무려 15번이나 또다시 반복된 그 부분을 다시 녹음하자는 것이었지. '이제는 제발 그만!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최선을 다한 거야'라며 말리는 프로듀서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다시 녹음을 했다지 뭐야."

 

자신의 영역에 대한 그러한 완벽함 때문이었을까. 연주회장에서의 불완전한 음향조건에서부터 청중의 작은 기침소리와 박수소리까지 그는 참을 수 없었다. 특히 꼭대기 층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잘 들릴 수 있도록 자신의 곡이 과장되게 연주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연주회를 포기한 채, 스튜디오에서의 녹음만을 고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연주가들에게는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나는데, 어떠한 가감도 없이 단지 일회적인 공연의 생생함을 최적의 상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레코드라는 틀안에 자신이 담을 수 있는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고자 하는 부류가 있는 데 굴드는 아마도 후자의 경우인 것 같다. 

 

내가 고 3으로 올라갈 즈음, 그들 노부부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인사와 함께 나에게 선물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굴드의 앨범 2장이다. 녹음실에서의 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표지의 앨범은 1955년에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고, 스테레오로 녹음된 또 하나는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1981년에 리코딩된 똑같은 곡이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같은 작곡가의 동일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녹음 시간은 38분 33초임에 비해 후자는 무려 12분 42초나 긴 51분 15초에 걸쳐 연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의 곡을 연주한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기존의 작품을 자신 안에서 새롭게 형상화한다는 것이 바로 굴드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만의 매력인 듯싶다.

Sony Music / THE GLENN GOULD EDITION

 

북극으로 떠나고 싶었던 고독한 천재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느린 선율이 문득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은 그 연주자가 글렌 굴드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캐나다 토론토 태생인 굴드는 오르가니스트 겸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에게서 3살 때부터 기초를 익히기는 했지만 정식 교육은 아니었다. 후일 토론토 왕립음악원에 진학했을 때도 칠레 출신의 스승 알베르토 게레로에게 사사했지만 그 외 유럽이나 미국 출신 스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굴드에게는 대부분의 거장들이 사제 관계나 활동 영역에 따라 수반되는 유파 개념이 없는 듯하다. 그는 특별한 계보 없이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정상에 선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북극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북극해를 굽어 보고 싶다는 수많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고 있어."

 

1965년 친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을 보면, 굴드는 북극의 얼음 바다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는 항상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TV용 방송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연주회를 중단한 것이 작곡을 하기 위해서라고 할 만큼 자신의 곡을 만들고 싶어 했으며, 50세가 되어서는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글렌 굴드.

 

그의 연주곡 중에서 추천하고자 하는 곡은 단연 1955년과 1981년에 각각 녹음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전혀 다른 느낌의 동일한 곡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겠지만, 1964년 일체의 공연 활동을 중단한 시점을 전후로 그의 젊은 시절의 연주 테크닉과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일년 전의 여유 있는 손놀림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아닌 작곡가로서의 굴드를 만나보고자 한다면, '작곡가 글렌 굴드'라는 음반을 통해 그가 직접 곡을 쓴 피아노 반주의 4중창곡 <리베르손 마드리갈>을 비롯하여, 현악 4중주 작품 1번과 바순 소나타, 2악장으로 끝난 미완성의 피아노 소나타 등을 감상하면 좋을 듯싶다. 또 지휘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토론토 심포니와 함께 한 첫 녹음이자 마지막 앨범인 바그너의 <지크프리트 목가>를 권하고 싶다. 

 

이 글에서 한 가지 소홀했던 것은 바흐만큼이나 굴드에게 있어 많은 영역을 차지했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가 대중들 앞에서 행한 188회의 협연 가운데 무려 102회가 베토벤 협주곡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러하다. 특히 6번 <전원>의 경우 굴드는 베토벤 자신이 메트로놈 기호로 표시한 것보다도 40% 느리게 연주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긴박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과 밀도감은 가히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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