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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하스킬, 척추장애를 이겨낸 제2의 모차르트

난짬뽕 2020. 11. 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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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장애를 이겨낸 제2의 모차르트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부드러운 독백에 취한 듯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 이러한 주제가 현악기로 옮겨져 잔잔한 울림을 전이시키는 Piano Concerto No.20 in Dminor K.466. 제24번 C단조와 더불어 단 두 곡의 단조 협주곡인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무척이나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낸다. 

 

5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플루트와 호른을 위해 각각 2곡과 4곡에 불과한 협주 작품에 비해 약 40여 곡의 기악 협주곡 가운데 모두 27곡이 피아노를 위해서 작곡된 것을 보면, 아마도 모차르트의 창작에 있어서 가장 핵심을 이루었던 것은 바로 피아노라는 악기였던 것 같다. 

 

(주)명음레코드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아주 묘한 감상을 떠올리게 하는 모차르트의 작품은 그래서인지 전문적인 귀를 소유한 사람들만이 만족할 수 있는 하나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한 모차르트를 느끼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아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건반 위의 감촉에서 단지 손가락이 굳은 것 같다는 변명을 핑계 삼아, 자꾸만 불협화음을 초래하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누구나 연주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나 연주할 수 없는 모차르트의 음악.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모차르트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모차르트 자신이 아닌 너무나도 냉정한 연주 모습을 안겨준 한 피아니스트에 의해서였던 것 같다. 클라라 하스킬. 나는 그녀를 통해 모차르트를 만났다.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하스킬에 대한 단 한마디의 수식어는 천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완벽성에 대한 신의 시기는 척추장애라는 혹독함을 감당케 했다. 음악과 한 마리의 고양이, 그것만이 그녀의 고독을 지탱해 주었다고 몇몇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나 외로운 투병생활 동안 더욱더 강렬하고 풍요로워진 그녀의 선율. 클라라 하스킬에 의한 모차르트, 그것만이 완벽한 공식인 듯했다. 

 

모차르트를 레퍼토리로 하는 수많은 연주자들 중의 한명으로 간과되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은 클라라 하스킬. 모차르트를 가장 잘 이해하는 피아니스트로 평가되고 있는 그녀를 처음 접했을 때, 그러나 나는 그리 큰 동요를 건네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의 연주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음악 속으로의 초대를 불허하는 듯한 차가움이 밀려온다. 단 한치의 오차도 찾아볼 수없을 만큼의 완벽한 터치감 속에 서두르거나 조급한 망설임조차 없이 매우 차분하면서도 명쾌했다. 너무나도 밝게 빛나는 음색 뒤에서 풍요롭게 부풀어 오르는 또 하나의 뉘앙스가 악구 사이사이를 누비는 듯한 인상을 자아냈다. 그녀의 음악 안에서 나의 존재를 함께 동화시키지 못한다는 소외감 비슷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단지 하스킬과 모차르트만이 존재할 뿐, 그 울타리 안으로의 탐색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첫인상에 대해 나 또한 그리 관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악보를 전혀 읽지 못하던 6살 무렵, 하스킬은 단 한 번 밖에 듣지 않은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그 자리에서 따라 쳤다. 오히려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변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1895년 스페인계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출생, 언니 릴리는 피아노를 그리고 동생 쟌느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가운데, 그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모두에 관심을 보였다. 10살이 되던 해 성공적인 데뷔 연주회를 거쳐 그다음 해에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 가브리엘 포레와 알프레도 코르토의 사사를 받았는데, 코르토는 3개월이 지나자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며 탄복했다고 한다. 그녀의 연주자로서의 본격적인 길은 바로 최고의 상을 받으며 파리 음악원을 졸업한 15세 때부터 시작된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부조니는 자신이 편곡한 바흐의 샤콘드 D단조를 연주한 그녀에 대해 '기적과 같다'라는 찬사를 보내며 자신의 제자로서의 베를린행을 권유하기도 했다. 물론 딸을 홀로 보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반대로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애써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하스킬의 앞날에 대해 그것은 작은 암시였을까. 공인된 천재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촉망받던 그녀에게 드리워진 불안한 그늘은 그동안 부여받은 명성만큼이나 가혹했다.

 

연주자에게 선고된 8년이라는 공백. 20대의 열정을 무서운 병마 속에 묻어버린 그녀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하스킬 역시 태연스러울 만큼 평온했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꼽추라는 어휘를 떠오르게 하는 서글픔 하나가 첨가되었다는 것일 뿐이다. 그때 놀라지 않은 단 한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하스킬뿐이었을 것이다.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의 병. 뼈와 근육, 세포까지도 모두 붙어버리는 무서운 병마가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나이 18세 때였다. 그것은 연주자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8년이라는 공백기를 함께 던져 주었다. 피아노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겼던 바이올린 연주를 중단해야 하는 좌절감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으로 하스킬은 더욱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대에서 그녀의 연주를 다시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8년후. 특별한 이유 없이 찾아든, 그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받아 든 장애라는 형벌 위에 재기라는 용기로서 조용히 대항한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러나 뭇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하스킬의 존재에 대한 자취가 사라질 즈음, 그녀는 척추 장애자의 모습으로 예전보다 더 깊은 여운의 선율을 선사했다. 그리고 당시 유럽 음악계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진 폴리냑 공작부인의 후원으로 계속된 연주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러한 하스킬에게 찾아온 또한번의 위기. 그것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극도의 공포와 긴장으로 결국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버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결국 어려운 수술을 거쳐 겨우 소생할 수는 있었지만,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바이올린과 고양이와 함께하는 피신생활뿐이었다.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도 의연했던 하스킬은,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부인되는 그 상황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트르 그뤼미오. 귀족적 풍모의 잘생긴 젊은이와 50대의 척추장애인 하스킬은 최상의 이중주를 통해 또 다른 모차르트를 탄생시키고 있었다. 서로의 재능을 결합, 하스킬의 두 번째 재기는 물론 국경을 초월한 예정된 명성을 구가하게 된다. 마리아 칼라스와 캐슬린 페리어를 비롯한 그녀의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1950년대 이후 10년간 그녀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 최고의 황금기를 전개한다.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고, 몸 또한 심하게 뒤틀린 상태였다. 그래도 하스킬은 감사해했다. 오늘도 살아서 무사히 연주를 마치게 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신의 배려에 감사합니다'라는 중얼거림은, 항상 죽음을 의식해야만 했던, 그래서 연주 중에 자신이 쓰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한 그녀의 강박관념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녀의 예감 때문인지 결국 하스킬은 연주여행 중인 1960년 브뤼셀로 가던 역의 계단에서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이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4번>,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과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C장조>, 그리고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과 팔라의 <스페인 정원의 밤> 등을 그녀의 대표곡들로 손꼽을 수 있겠지만, 클라라 하스킬에 대해 느끼고 싶다면 나는 그녀의 생애 가장 마지막으로 리코딩된 <Piano Concertos Nos. 20&24>(필립스 412254)를 권하고 싶다. 역사적 명반으로 대변되는 이 음반은 이고르 마르케비치의 지휘로 라무뢰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협연, 클라라 하스킬이 세상을 떠나기 1개월 전인 1960년 11월 14일부터 18일 사이에 스테레오로 녹음된 것이다. 그의 생애 마지막 음반이었기 때문일까. 비록 병약한 체질 때문에 매일 몇 시간씩 옥타브와 음계, 도약 등에 대해서는 연습할 수 없었지만 다른 어떠한 경우보다도 청중으로 하여금 강한 흡인력을 자아내는 카리스마적 압도감은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 같다. 

 

클라라 하스킬이 구현해 내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악보를 지배하는 그녀의 천재성 때문도, 또한 죽음에 직면한 두 번의 병마를 굳이 인식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연주는 형언할 수 없는 끌림으로 조금씩 하스킬의 늪에 빠져들게 만든다. 

글 엄익순

 

 

 

 

북극으로 떠나고 싶었던 고독한 천재, 글렌 굴드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불완전함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한여름에도 장갑을 낀 채, 머플러를 두르고 코트까지 입고 다녔던 글렌 굴드(1932.9.25~1982.10.4). 완벽한 연주를 위해 무대를 떠나 리코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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