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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아름다움/책

최은영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관계의 균열을 마주하는 용기

by 난짬뽕 202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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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 지은이: 최은영
  • 1판 1쇄: 2018년 6월 30일
  • 펴낸곳: (주)문학동네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겠죠. 
어쩌다 저런 인생 살게 됐나 싶을 거예요.
근데 있잖아요. 최선을 다했던 거예요. 
우리 모두. 순간순간.
그게 최선이었던 거예요. 포기하지도 않은 거예요. 

'모래로 지은 집' 중에서,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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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균열을 마주하는 용기

<내게 무해한 사람>은 <쇼코의 미소>에 이은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그 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이치디에서' 등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특히 '그 여름'은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왜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내게 무해한 사람> 소설집에 소개된 작품들의 인물들은 가장 맑으면서도 순수했던 시절의 우정과 사랑을 거쳐 그 관계들은 점점 미세한 균열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의 시간을 흘러 보낸 후에야 비로소 서로에게 숨겨져 있던 진실들과 마주한다.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고백' 중에서, p 202)는 문장이 책 속에서 나온다. <내게 무해한 사람> 일곱 편의 작품들 속 주인공들은 이 문장처럼, 아마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어쩌면 더 날카로운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안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어쩌면 전혀 모르고 있거나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기억을 조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왜 아파하는지, 무엇으로 인해 고통받는지를 알지 못했으므로 많은 인간관계서로의 착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p 196) 이 소설집의 제목인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작품 '고백' 속에서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 최은영이 작품마다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는 낭만이 아니라, 용기 있게 현실을 바라보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상처받을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꼭 모두 진실은 아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작품 '아치디에서' 나오는 문장 하나가 마음에 들었다.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p 282)

세월이 흘러 지난 그때를 다시 떠올려보면, 우리 모두는 진실이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였음을. 때론 상처를 받기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마음은 진실이 아닌 적이 없었음을. 나는 최은영의 이 소설집 제목이 '내게 무해한 사람'인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손길' 중에서, p 225 

 

 

<내게 무해한 사람> 책 속의 문장들

그애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태가 났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p 118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p 121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은 변할 수 있어. 남을 변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p 136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p 162-163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p 235 

네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야. 네가 열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내가 왜 널 책임지고 살아야 해?  p 247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p 274

 

일곱 편 수록 작품들의 내용

그 여름_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의 이경과 수이는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관계가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경은 서울 한복판 대학의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축구부에 있던 수이는 부상을 당해 축구를 그만둔 후 서울 외곽의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운다. 서로를 갈망하며 마냥 좋기만 했던 그들의 관계는 서울에서의 삶을 통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이경은 레즈비언 모임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은지에게 끌린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랑을 위해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수이와 이별한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은지는 자신의 첫사랑을 잊지 못해 이경과 헤어지기를 원한다. 그로부터 십삼 년이 지난 즈음까지 이경은 자신이 매몰차게 떠났던 수이를 그리워한다. 

601, 602_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살게 된 주영과 효진은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효진의 집에 놀러 간 주영은 효진의 오빠 기준이 효진에게 욕을 하고 무자비하게 때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효진의 부모들 역시 그러한 모습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여긴다. 딸 효진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고 아들 기준을 대할 때에는 마치 높은 사람을 모시는 듯한 그의 부모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이 효진이네 분위기와 같은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했던 주영이는 아들을 낳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엄마에게 결국 자신이 귀한 아들이 아니라 여자애에 불과한 딸이라는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가는 밤_ 자매인 윤희와 주희의 이야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따로 살게 된 언니 윤희는 유학을 떠나 사회학 박사학위를 따고, 이혼을 한 동생 주희는 힘든 일을 하며 생활한다. 한국에서 일자리 면접을 앞둔 윤희는 잠시 귀국하여 주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 밤, 지난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애써 말하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한다.

모래로 지은 집_ 같은 고등학교 입학생 모임인 천리안 동호회 멤버였던 모래와 공무, 그리고 나는 모임의 폐쇄 공지를 알고는 번개를 하게 된다. 그 만남을 계기로 셋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만남을 지속한다. 그러한 가운데 알지 못했던 서로의 가정사와 그로 인한 진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형에게서 학대를 받으면 늘 참기만 했던, 넉넉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늘 유약하고 의존적이었던, 그리고 부모의 폭력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기대가 없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삶이 맞이하는 미래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고백_ 미주는 종은이 수사가 되기 전에 사귄 마지막 여자친구이다. 두 달 정도를 사귀다가 미주의 뜻으로 헤어졌으나, 십 년 넘게 친구로 지내며 종종 만나왔다. 그런 미주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두 친구가 있었는데, 직설적이고 조금은 거칠게 행동하는 주나와 조용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를 좋아하던 진희였다. 어느 날 밤, 진희는 미주와 주나 앞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한다. 그런 진희를 미주와 주나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외면했고, 진희는 죽음을 선택한다. 수사가 된 종은에게 미주는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길_ 서울 한복판에서 우연히 혜인은 정희와 마주친다. 정희는 혜인이 일곱 살 때부터 열한 살이 되던 해까지 부모를 대신해 양육해 주었던 숙모이다. 항상 혜인의 편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숙모 정희는 혜인이 열여덟 살 때 삼촌과 사별한 후 아무런 작별인사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치디에서_ 좋아했던 사람을 찾아 아일랜드로 떠난 나, 랄도는 그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화산 폭발로 인해 발이 묶인다. 그동안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던 랄도는 전화기 너머로 엄마에게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가지고 있던 돈까지 떨어지자, 그는 숙소 주인의 소개로 더블린 외곽의 아치디라는 작은 마을의 농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국인 하민.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그녀가 왜 아일랜드로 오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랄도와 하민은 비밀 같은 속마음을 서로 털어놓는다.

 

지은이 최은영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제5회, 제8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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