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지은이: 박민규
- 초판 1쇄 발행: 2009년 7월 20일
- 개정판 1쇄 발행: 2025년 11월 20일
-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무엇 하나 정확하지 않은 기억 속에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지금의 나도,
스무 살의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했었다.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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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1899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라사의 초상'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거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작가는 같은 화가의 또 다른 작품 '시녀들' 속, 마르가리타 왕녀 곁에 선 키 작은 시녀의 모습에서 다시 영감을 이어받아 이 이야기를 완성했다.
예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아름다웠다
박민규 작가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사랑과 삶에 관한 한 권의 사회이론서이자 철학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예스24를 통해 6개월간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2009년 7월에 초판 발행되었고, 지난해 2025년 11월에 개정판을 선보였다.
올해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주연배우들이 스크린 안에서 어떻게 연기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영화가 소설의 깊이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이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저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었던 세 사람이 서로 얽혀가며 풀어놓는 그저 그런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한 사람의 개인처럼, 이제 인류도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입니다. 이 진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며 저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인간의 얼굴에 대해 말입니다. p 436
어쩌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를 읽는 것 같지만, 지독하게 외로웠던 세 사람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되고, 그들의 삶과 사랑은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1985년, 열아홉 살의 남녀는 도망칠 곳이 없었고, 또 한 명의 남자는 애써 도망쳤지만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들을 둘러싼 잔인한 진실들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세 사람은 서로를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의지했다. 사람들이 피해 다닐 정도로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들이 보기에는 꽤 괜찮게 여겨지는 남자. 그리고 이들을 향한 비딱한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절대다수의 편견이 책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시대가 거듭되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일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제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으면서, 이 책의 주인공들의 나이였던 스무 살 무렵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은 소설로서의 흥미로움을 뛰어넘어 인문학적 사색과 언어적 유희까지 담을 수 있는 멋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정판에 부치는 후기인 '그 후 17년'은 덤으로 만날 수 있다. 개정판 기념 특별 양장본은 가독성이 좋았는데, 개인적으로 표지는 2009년 초판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소제목의 의미들
* 라스 메니나스 : 시녀들.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비틀스 앨범에 수록된 곡명. 존 레논은 유치원에서 돌아온 어린 아들이 보여준 크레용 그림(자신이 좋아하던 짝꿍 루시를 그린)에서 이 곡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책 속의 문장들
젊음은 결국 단파 라디오와 같은 것임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좋든 싫든 연애의 대부분을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p 16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p 16-17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일 뿐이니까. 그것이 자신의 고통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인간도 타인의 고통에 해를 입지 않는다. p 17
돌이켜보면 세상의 시소도 이미 기울어진 지 오래였다.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였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학력에서, 경제력에서... 또 외모에서... 한눈에, 또 첫눈에 대부분의 승부가 판가름 나는 세상이었다. p 81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p 167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 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야. p 184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p 202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 231
동정의 시선을 받아보신 적은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 모두를 느꼈어 - 말하면 열등감 덩어리란 소릴 듣고... 잠자코 있으면 바보가 되는... 그런 인간을 보신 적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저라는 인간이었습니다. p 286
저는 그곳에서 여자가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살아야 했던 게 아닌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아닌 매우 이상한 그 어떤 것... 상처받고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선 그냥 <여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일 거예요. 그냥 여자... 성형을 받거나 굳이 예뻐야 하거나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의 그냥 여자 말이에요. p 393
지금도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말하자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헝클어진 모든 것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헝클어진 삶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당신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p 396

책 속에서 언급된 여러 가지
음악
- 모리스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라흐마니노프
- 빙 크로스비
- 로버타 플랙
- 벤처스
- 비치보이스
- 킹크스
- 엘비스 프레슬리
- 살바토레 아다모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
- 슈베르트 <송어>
- 에릭 사티 <짐노페니>
- 밥 딜런 <The Freewheelin>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A Hard Rain's A-Gonna Fall>
- 브리트니 스피어스
- 탐 존스
- 존 레넌
- 닐 영 <Heart of Gold>
- 비틀스 <썸씽> <블랙버드> <미셸>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 비틀스 <빌리 진>
- 재니스 조플린 <서머타임>
- 딥 퍼플 <스모크 온 더 워터>
- 유에프오 <lIPSTICK traces>
- 핑크 플로이드
- 엘비스
- 폴 데스몬드 <Circles>
- 카라얀
문학
- <어린 왕자>
- 장 그르니에 <섬>
- 까뮈 <이방인>
- 프란츠 카프카
- 로버트 브라우닝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밀란 쿤데라
- 보들레르 시집
- 샤를 페로 동화집 <어미 거위>
- 잡지 <객석>, <미술세계>
미술
- 밀레
- 램브란트
- 고흐
- 피카소
-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 고갱
- 프랜시스 베이컨
- 밥 로스
- 알베르토 자코메티
인물
- 파울 요제프 괴벨스
영화
- 백 투 더 퓨처
소설가 박민규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신동엽창작상, 2007년 이효석문학상, 2009년 황순원문학상, 2010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카스테라>(2005)와 <더블>(2010), 장편소설 <핑퐁>(2006)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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