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대건, 행복한 연주가가 되는 길을 만나다

난짬뽕 2020. 11. 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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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안드레스 세고비아의 원고를 올리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있습니다. 2014년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4월호에 소개된 장대건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은 날씨 좋은 3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는데요. 잔잔하게 들려주신 선생님의 음악적 철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기타에 대한 열정으로 홀로서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대건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꿈이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크고 작은 소망들. 어린시절 장대건의 꿈은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좋았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했을 뿐이다. 그렇게 기타에 대한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지금, 그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글 엄익순

 

세 번째 음반 <Azahar>입니다. 아사하르란 '오렌지 나무의 꽃'이라는 스페인어. 19세기 후기 고전, 낭만 시대의 음악이 갖는 큰 의미인 순수함 그리고 솔직한 감정의 표현에 어울리는 의미로서, 음반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타를 통해서 음악을 보는 것이 좋았다

단지 춤과 노래의 반주로 등장하는 대중악기에 지나지 않았던 기타를 클래식의 영역 안으로 부활시킨 것이 안드레스 세고비아 토렌스였다면, 장대건은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준 연주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연주는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은 물론 아직 클래식 기타에 관해 조금은 생소해하는 국내의 많은 사람들까지도 깊이 매료시켰다. 14세 무렵,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큰형의 모습에 반해 그 또한 취미로 배우게 된 것이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되었다. 여느 악기에 비해 지극히 작고 섬세한 클래식 기타 선율이 그를 사로잡았다.

클래식 기타의 대명사인 세고비아가 태어난 스페인에서 좀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7세에 그는 홀로 아무 연고가 없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림과 사진, 건축과 무술, 운동, 서예 등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한동안 온통 그것에만 집중하는 성격을 부모님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반대는 없었다. 그는 지금도 가끔씩 그 당시를 회상해본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마다 얻는 대답은 하나였다. 조금은 무모했고, 어쩌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단지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직면했던 어려움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고 말이다.

 

오직 기타를 향한 열정 하나만으로 홀로서기를 했던 장대건. 그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고, 3년 만에 세고비아의 애제자인 호세 토마스(Jose Tomas)가 교수로 있는 알리칸테 고등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그의 제자가 된다. 세계적인 명교수의 가르침을 받던 3년 동안의 하루하루가 그는 꿈만 같았다고 한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음악적인 삶의 목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1997년에는 스위스 바젤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입학하여 세고비아의 또 다른 후계자인 오스카 길리아(0scar Ghiglia)에게 사사하게 된다. 기초와 기본에 충실한 연주자만이 자신의 음악성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호세 토마스의 가르침과 더불어 오스카 길리아로부터 장대건은 탄탄한 기초 위에서 창의적인 작품 해석과 연주 실력을 쌓게 된다. 그러한 음악적 여정을 통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장대건 스스로도 점점 더 기타에 심취하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장대건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꿈을 가슴에 안게 된다.

 

행복한 연주가가 되는 길을 만나다

장대건의 기타에서 그려지는 선율은 무척이나 다양한 음색을 자아낸다.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는 세고비아의 말을, 장대건의 연주가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정들이 스며있는 수줍은 마음을 보여주기도 하며, 때로는 말이 달리는 듯한 역동감이 드러날 때도 있고, 햇살이 따스한 봄날 앞마당에서 총총 걸음을 걷고 있는 병아리들의 귀여운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자 하거나 무엇인가를 과시하려는 표현들은 그의 연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장대건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나이 23세 때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권위의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국제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하면서부터이다. 물론 그 전에도 스페인 사라우츠 국제 기타 페스티벌 콩쿠르 1위와 알리칸테 음악원 Extraordinario상과 실내악 부분 명예상을 수상하며 그의 실력을 인정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소르 국제 기타 콩쿠르(1997년) 3위, 알함브라 국제 기타 콩쿠르(1998년) 4위, 멕시코 쿠쿨칸 국제 콩쿠르 1위 및 청중상(1999년), 스페인 푸엔테 헤닐 국제 콩쿠르(2001년) 2위, 스페인 루이스 밀란 국제 콩쿠르(2003년) 1위, 스페인 세고비아 국제 콩쿠르(2004년) 3위 등 20여 곳이 넘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잠시 동안 기타가 그의 손을 떠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열아홉 살 즈음, 유학을 떠난 지 3~4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예술적 가치관이 막 형성되고 있을 때였던 것 같아요. 예술적 가치와 현실적인 삶 사이에서 어떻게 발을 담가야 할지 몰랐던 시기였죠. 그 당시 알바로 피에리와 같은 대연주자들과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는데, 종종 만나는 유명한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갈등을 느끼는 것을 곁에서 보게 되었던 거죠. 나는 단지 기타가 좋아서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인데, 과연 나중에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된 거예요.”

 

그렇게 시작된 방황은 바로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성당 옆 골목에서 기타 연주를 하던 거리의 악사를 통해 마무리되었다. 그는 음악학교를 나온 실력 있는 연주가로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매일 그곳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타를 연주하는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이 장대건의 고민에 대해 해답을 던져주는 듯했다고 한다.

 

“세상의 잣대에 비친 성공이라는 것이 음악가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될지, 그 거리의 악사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죠. 제가 나중에 유명해지지 못하거나, 공원에서 혹은 들판에서, 아니면 집에서 혼자 연주를 하더라도 기타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 거예요. 기타를 통해 음악 하는 즐거움을 얻고, 나름대로 더 멋지게 음악을 만나고 싶어서 온 유학, 누가 강요한 적도 없고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한 이 길을 더욱 열심히 걸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죠. 어떠한 파트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즐거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이 알려 주신 거예요. 자신의 표정을 통해서 말이죠.”

 

기타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스페인에서의 유학생활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기타를 공부하는 동양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같이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조차 장대건이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래서 장대건은 더 열심히 공부에 몰입했고, 학교에서 1등을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20대의 그의 연주가 자극적인 음식처럼 아주 시거나 맵고, 짜며, 달았다면 지금은 심심하면서도 담백한 평양냉면 같아졌다고 말한다.

 

그의 생활은 항상 기타라는 악기를 통해서 길을 넓히고 있다. 요즈음 그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연주홀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는 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코어는 그대로 간직하되, 각 사회분야에 한 걸음씩 친숙하게 다가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학생들이나 노인 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그것의 한 방법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음악이 생활 속에서 다시금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사진_ hu

 

음악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다

장대건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그들의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 밑에서의 좋은 울타리 안에서 자신만의 음악적 고민을 충분히 해보지 못했다면, 당장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열정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음악적 성취는 욕심을 낸다고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주가도 때때로 타성에 빠지기가 쉽잖아요.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다양하고 멋진 음악을 선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쉬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다양한 레퍼토리로 찾아뵐게요.”

 

그의 기타에서 품어져 나오는 여섯 줄의 향연은 올 봄 꽃향기와 함께 우리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원곡이 노래인 작품과 멜로디를 느낄 수 있었던 1집 <Songs of the Guitar>와 낭만적 정서의 스페인 음악으로 구성된 2집 <Impressions of Spain>, 그리고 고전과 낭만시대 작품으로 어우러진 예술세계를 보여준 3집 <Azahar>에 이어 정성스럽게 엮은 4집 앨범이 발표된다. 4월에 선보일 이번 앨범은 장대건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들을 시대별로 한 곡씩 골라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그가 국제 콩쿠르에서나 연주회 때 기타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에서 많이 연주한 알베르토 히나스테의 ‘기타를 위한 유일한 소나타’를 비롯하여,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편곡으로 멋지게 변신한 ‘베니스 사육제의 변주곡’과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페르난도 소르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만약 앨범을 통해 듣는 음악에 갈증이 느껴진다면, 다가오는 5월 17일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리는 그의 독주회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4집 앨범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아름다운 명곡들을 자신만의 여운으로 발산해내는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장대건의 음악, 그의 연주가 국경과 세대를 넘어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되기를 희망한다.

 

 

 

안드레스 세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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