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 노래가 풍경이 되다

난짬뽕 2020. 12. 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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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을 직접 만나보신다면, 아마도 그분의 매력에 금방이라도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목소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그려져 있으니까요. 2016년 비가 내리던 7월, 조수정 한지그림갤러리에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진행되었는데요.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제 마음까지 청명해지는 기분이 든답니다. 이날 촬영 역시 STUDIO NOON 이준용 실장님이십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탐색, 노래가 풍경이 되다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의 음악에는 결이 있다. 밀려오는 파도에 멍이 들어버린 바위섬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연한 표정이 스며있고, 아침이슬이 지쳐 잠든 풀숲을 가로지르는 한낮의 바람소리도 묻어난다. 잔잔한 호수에 수줍게 내려앉는 햇살을 따라 흐르는 노부부의 시선도 머물러 있다. 목소리만으로도 세상의 풍경이 된 신비스러운 전설, 그녀의 음악이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위로해준다.

글 엄익순

 

사진_ hu /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써니 킴은 촬영내내 밝은 표정으로 해피바이러스를 전해주었다

 

음악이 그려놓는 치유의 여정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힐링’에 관한 것이에요. 음악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의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드렸을 때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기타리스트 벤 몬더와 함께 <지구의 꿈>이라는 공연을 선보였던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 그녀는 자신만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며 특별하면서도 이채로운 비경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선사하였다. 공연 내내 무대를 그윽하게 채운 낯설고도 아름다운 소리의 향연. 단연코 그 중심에는 써니 킴의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목소리가 주인공이었다. 노래를 듣고 있는 관객들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에 빠져 자신들의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티베트의 악기인 씽잉 볼(singing bowls)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써니 킴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씽잉 볼은 원래 명상과 치유의 목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고 해요. 실제로 요즘에도 의료계에서 조금씩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는 암 환자들의 심신을 이완시키고 안정을 취하게 할 때 씽잉 볼의 소리를 들려준다고 해요. 여러 가지 병들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제 음악에 어떤 형태로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죠.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음악에 집중하고, 소리 자체를 열려있는 귀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재미보다는 섬세한 소리, 그런 것들을 체험해 보는 공연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탐색

지구는 우주의 커다란 지도의 작은 부분이며, 이 모든 것은 커다란 하나의 연결된 유기체임을 알고 다시 지구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를 지구에 보내야 한다는 내용의 ‘A Message from the Pleiades’와 오늘날 유전사고와 각종 공해 원전 사고 등으로 큰 병을 앓고 있는 지구를 위로하는 노래로, 지구의 70%를 구성하고 있는 바다의 풍경을 떠올리며 작곡한 ‘Tears of Gaia’, 계절에 따라 지구를 순환하는 철새들을 보며 지구의 푸른 대기권과 하늘을 염원하면서 만든 ‘The Flying Kingdom’ 등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던 벤 몬더와의 공연 주제는 <지구의 꿈>이었다.

이는 써니 킴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지구와 우주의 아름다운 신비로움에 관한 음악을 담은 무대였다. 평생을 지구의 영성과 인간 공동체와의 관계 회복에 대하여 연구한 토마스 베리 신부님의 책 제목을 인용했는데, 그 계기는 지구와 생명에 관한 음악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 곳곳의 생태계가 고통 받는 현실을 음악을 통해 영적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특히 히말라야 산맥을 일주일 동안 등반했던 기억, 몽골의 초원과 사막을 누볐던 일, 북미 대초원의 인디언 보호구역 공동체를 방문하여 노래를 했던 경험들이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여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자연과 별과 지구와 진심으로 교감을 느끼고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만약 그런 노력들이 음악으로 나온다면, 아마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가장 보람되고 근사한 일이 아닐까 싶었어요.”

 

언제나 새로운 음악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써니 킴의 노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우주,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재즈가 갖고 있는 즉흥적인 요소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평상시에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날 수 있고, 공기 중에 있는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소리를 끌어낼 수 있는 매력을 재즈만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써니 킴이 재즈에 빠져들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학교에서 들었던 재즈의 느낌이 마냥 좋았다고 한다. 본격적인 재즈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1998년) Jass Performance 전공으로 덴버대 학사와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학위를 마친 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뉴잉글랜드 음악원에는 여러 진보적인 현대음악을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스티븐 레이시(Steve Lacy) 선생님의 음악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죠. 아쉽게도 한 2년 정도 가르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짧게나마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것은 제게는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스티븐 레이시 선생님의 모토는 항상 ‘뮤직 퍼스트!(Music First!’)이셨어요. 그 어떤 것보다도 음악을 우선시하여 매일 같이 음악과 함께 하셨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하루에 2~3시간씩은 늘 색소폰을 잡으셨죠. 언제나 여러 아티스트들에 대해서 궁금해하셨고, 그들과 함께 활발하게 음악적인 교류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써니 킴은 노래를 통해 가장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무대 위에 설 때가 가장 흥분된다고 한다.

 

노래를 통해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써니 킴

 

여성, 그들의 삶을 노래하다

“재즈에 대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해석력을 요구하는 내 음악을 설득력 있는 목소리와 세심한 감성으로 표현해낸다”

이 말은 세계적인 트롬본 연주자 로즈웰 러드(Roswell Rudd)가 써니 킴에 대해 말한 칭찬이다. 스티븐 레이시의 추모공연에서 써니 킴의 노래를 들은 로즈웰 러드는 평생 동안 자신이 작곡했던 곡들을 그녀와 함께 녹음하고 싶었던 것. 한 달에 한 두 번씩 만나 1년 가까이 함께 연습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밴드가 탄생했다. 써니 킴은 로즈웰 러드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007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그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 후 로즈웰 러드와 벤 몬더, 데이브 더글라스 등 미국 본토의 재즈 거장들과 함께 총 15개의 주를 아우르는 미국 투어를 펼치고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전역의 주요 무대에 오른다.

 

“로즈웰 러드 선생님이 어떤 용기로 저를 그 무대에 세우셨을까. 정말 그때 어떻게 노래했는지 모를 정도로 떨다가 노래를 하고 내려왔죠. 생각해 보면, 나름 굉장히 비장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온 작은 여자 아이가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 내가 최선을 다해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무대에 올라갔던 기억이 나네요.”

 

써니 킴은 2012년에 이어 2013년 “현재 가장 주목받는 재즈 연주자” 보컬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무용과 영화, 미술과 접목된 전방위적 활동으로 많은 재즈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1집 음반 <Android Ascension>(2008년)은 실험적인 사운드로 ‘한국의 뷰욕(Bjork)'이란 평을 이끌어냈는데, 뉴잉글랜드음악원 친구들과 함께한 2년여간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져 개인적으로 매우 소중하다고 말한다. 이 음반에 수록된 그녀가 직접 작곡, 편곡, 노래한 ‘Everywhere’는 2010년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의 OST로 삽입되었다. 2집 <Painter’s Eye>(2012년)는 현대한국화의 거장 김선두 화백의 그림과 시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만든 음반이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해서 외국에 살다보니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저 스스로 확인해보고 찾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인의 선물로 받은 그 시집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느꼈던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 따뜻한 위안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죠. 뉴욕에 있는 친구들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영어 가사로도 작업했어요.”

 

써니 킴의 음악적 행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곁에서 함께해주는 좋은 동반자가 있기 때문. 기타리스트 벤 몬더와의 음악적인 화법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소리들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진솔하게 풀어내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이라면, 8월 26일 함께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송영주는 지나온 시간을 음악 안에서 보다 성숙하게 해주는 파트너이다. 이번 공연은 세상의 차별과 편견 속에서 숨겨져 있던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재편곡한 무대로, 써니 킴의 스페셜 프로젝트이다.

 

“여성들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여러 여성 작가들과 작곡가, 예술가 등 조금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분들의 삶을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제가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고, 또한 딸을 둔 엄마로서 그 아이의 삶에 있어서도 앞으로 펼쳐질 세상일 거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계속 여성에 관한 노래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써니 킴은 재즈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모두 보여주는 최고의 보컬리스트이다.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녀의 음악은 노래 그 이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과 용기를 건네주는 써니 킴의 음악이 이 세상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2015년 사보 <한일>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님과의 인터뷰는 그해 5월 27일 대치동의 어느 커피숍에서 있었는데요. 매체를 통해 바라볼 때도 좋았는데, 직접 만났을 때는 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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