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의 창조적 개입 혹은 그 다양한 스펙트럼
패션
세대와 세대와의 투쟁, 그것은 곧 유행이었으며 패션을 가장 큰 축으로 회전되고 있었다. 패션이란, 또 다른 의미의 유행을 일컫는 용어로써 흔히 의복과 동의어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패션 현상은 다른 영역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코 의복의 독점 용어는 아니다. 왜냐하면 패션, 모드,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용어들이 모두 '유행'이라는 어휘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것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인된 다수 중에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패션이라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패션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패션을 통해 역사 속에 숨겨진 문화를 읽을 수도 있다. 한때 여성다움만이 예찬되던 시대, 그 속에 휘말려 여성 스스로 자신들을 예속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않은 옷으로만 인식되었던 한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곧 '사물화 된 여성'의 모습으로, 문화적 음모에서 비롯된 지극히 의도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르주아가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래,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어느 정도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검은색과 흰색을 주로 입게 되었다. 오직 상업과 실업에만 전념, 유행으로부터는 도피하고자 했던 잠재의식이 있었다.
반면 그들의 부인들은 유행에 자신들의 몸을 내던졌다. 그러한 동경은 어쩌면 그것에서부터 그들의 삶이 새롭게 장식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유에의 탐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남편에 대한 충실한 반려자로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리어져, 중요한 모든 경제 활동과 또 다른 경쟁으로부터 한동안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필요했다. 자신의 신체에 뭇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 대상이 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사회 현상과 심리학적 메커니즘으로서 떠올리게 되는 미니스커트와 팬티스타킹, 그리고 판탈롱 등은 현대에 들어 여성에게 있어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유행으로 손꼽힌다. 그것은 곧 사물화 된 여성으로서의 정적인 침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 유행에 있어서의 또 다른 진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방적 전염의 게임
이분화에 대한 불안감을 진정시켜 주는 수리품으로 여겨졌던 드레스는 역사상 가장 전통적인 여성복으로 간주되었다.
이슬람교의 여러 민족, 특히 다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화 된 여러 민족에게서 이러한 의식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그곳의 여성들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넉넉하게 둘러싼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얼굴까지도 베일로 가린 회교도 여인들이 입고 있는 부루누 내지 제라바라고 하는 두건이 붙은 외투와 긴 옷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것은 몸의 형태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자루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각 나라와 민족들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의식을 굳이 배제하지 않더라도, 그와 더불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복식 스타일에 대한 발생을 균열된 신체의 분열에 대한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데에 그 관심이 주목된다.
인간을 '두 개로 갈라진 보기 흉한 무'에 비교하면서 셰익스피어가 강조하고자 했던 이미지, 그리고 '신성한 육체의 미녀는, 우러러보면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이다'라며 <악의 꽃>에서 언급한 보들레르가 가지고 있었던 이러한 혐오의 배후에는 모두 인간에게 주어진 갈라짐의 신성한 상처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아마도 머리와 몸통이 하나의 원통을 이루고 있는 데 반해, 허리 밑에서부터 갈라진 두 다리는 언제나 악마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으로서, 그 증거는 완전히 닫히지 않고 일찍이 치유되지 않아 주기적으로 흘리는 피에서 그 증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 갈라진 틈으로 악마가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여성들의 신체는 발끝까지 가리어지는 것을 요구받게 된 것이고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드레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드레스 자체에서도 제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의 신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하여 크게 3가지 금기 사항이 거론되었는데, 그것은 각각 나체의 금기와 자연 그대로의 실루엣을 노출하는 것의 금기, 그리고 접촉 금기가 바로 그 예였다.
즉, 인간의 피부를 가림으로써 동물과 같은 나체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제일의 역할로 여겼던 것이다. 또한 설령 노출된 피부를 감춘다 하더라도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에로틱한 매력을 발산시킨다 하여 그것 또한 피하도록 하였으며, 시장이나 버스 등에서의 신체적 접촉이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는 그 접촉을 완화시킴으로써 사람 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겹겹이 옷을 걸쳐 입음으로 인해 몸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여성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지위가 여자다움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을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이유를 여성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측면에서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깊숙이 감추고자 했던 의도에서 야기된 드레스의 착용은, 싸여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신체를 창출시키는 제2의 에로티시즘을 여성다움이라는 베일 안에 감춘 허울에 불과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신체는 또 다른 신비스러움에 대한 탐색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으며, 이러한 강한 유혹 속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에 대해 지극히 정성스러운 보호와 적지 않은 도덕심을 지켜내고자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드레스는 여성을 경제나 스포츠와 같은 어머니 이외의 모든 활동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사회 속에 여성들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고정된 자리에 안주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1915년 이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재정립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기계의 출현으로 인해 남성 노동력에 대한 가치가 절하되었고, 교육의 보급과 제3차 산업의 고용 우위, 세계대전 기간 중 남성의 출정에 의한 사회적 인력 부족, 그리고 1789년 민주주의 이상이 발표된 이후 진행된 공정과 평등의식의 보급으로 압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의 제기 등의 요인들로 결합된 현상들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생활 태도와 조건 변화에 의해, 그 의복에 있어서도 차별화가 요구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긴 망으로 둘러싸인 넓은 드레스나 커다란 모자 따위는 여성의 직장 생활과 공동생활에의 참여에 있어 어울리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여성의 옷은 그 형태에 있어 총체적으로 확실한 변화를 동반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여성의 옷은 어느새 남성의 옷에 가까워지고 있다. 경쾌하면서도 독립적인 형태의 자유스러움. 어쩌면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다만 삶의 태도에 한 단계 높은 강세를 드러내고자 했던 남성들의 일방적인 분류에 밀려 여성다움이라는 알레고리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여성들은 이제 나름대로의 옷 입기에 성공했다.
중세 이래, 권력 소유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왔던 큐롯을 입는 행위는 여성에게 있어서는 공유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은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바지도 함께 입고 있다. 그로 인해 여성용 판탈롱이 유행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결국 사회적 공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920년 경 남성의 셔츠가 부인용 셔츠나 블라우스로 변형을 이루었던 것처럼, 판탈롱 역시 남성의 전유물인 바지를 변형해서 그 근엄한 가면을 소멸시키고자 했던 여성의 자립의지의 또 다른 표출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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