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볼록 렌즈

웃음을 훔치다

난짬뽕 2021. 6. 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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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훔치다

 

 

현재 대학교 3학년인 아들과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둔 지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방영시간을 크게 메모하여 거실 벽에 붙여놓고 생활했었다. 학교와 학원을 번갈아 가며 친구들과 제대로 뛰어 놀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언제부턴가 웃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 잠시 TV를 보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 집의 규칙은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저녁에는 꼭 함께 개그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시청하는 것이었다. 내과 전문의인 그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에게도 늘 하는 말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웃으라고 했는데,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치의를 불신하는 표정이었다고 종종 말한다. 요즘은 예전보다 TV에서 방송되는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많이 없어져서 마음껏 웃을 일이 없다고 서운해한다. 

 

웃음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실시한 조사에서 여섯 살 난 어린이는 하루에 3백 번 웃고, 정상적인 성인은 겨우 열일곱 번 정도 웃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웃음이라는 타고난 본능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웃더라도 기운차게 온몸으로 웃게 되면 그 효과 역시 동일하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배꼽이 빠질 듯이' 크게 웃어 보자. 그것이 지금 사회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처방전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대부분의 웃음이 유머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웃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유머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웃음은 전체의 20%도 채 되지 않고, 반면 인간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웃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만나서 반가웠어요", "나도 알아"라는 말을 할 때 웃음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는 칸트가 강조했던 웃음의 역할과 일맥상통하는데, 즉 안에 갇혔던 에너지를 웃음을 통해 방출하면서 대화의 창을 열고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우리가 금지된 것을 생각함으로써 웃음이라는 에너지가 발사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음담패설이다. 이 '기분전환 이론'은 영화 제작에도 적용되었는데, 긴장과 스릴을 최대로 높이는 동시에 코믹한 내용을 양념처럼 활용하면 관객들은 갇힌 감정을 웃음으로 드러내며 기분 전환 효과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또 플라톤이나 토머스 홉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웃음을 '우월성 이론'으로 설명하는데, '인간의 웃음은 결점이 나타나거나 뭔가 모자라는 듯한 것을 볼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대의 어리숙하고 익살맞은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잠재의식의 작용이라는 것. 

 

 

사람은 갓난아이 때는 웃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웃음에 필요한 근육을 발달시키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복잡한 의미를 가진 '사회적 미소'를 짓게 된다. 웃음은 일종의 '자연적 운동'으로 우리는 '웃음'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운동함으로써 근육의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다. 

 

웃을 때는 15개의 안면근육이 동시에 수축하고 몸속에서는 6백5십여 개의 근육 가운데 2백30여 개가 웃음에 관여한다. 심하게 웃으면 호흡기의 동작이 불규칙해져 숨을 헐떡이고 눈물샘이 촉진되며 얼굴색이 불그스레해지기도 한다. 숨이 가빠지거나 눈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웃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웃음은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화장술로, 예로부터 그 유익함은 수없이 강조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웃음이 인체에 각종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고, 지금도 그 정확한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의학적으로 입증된 웃음의 효과

  • 면역력 증가  웃음은 면역력을 높여 감기와 같은 감염질환은 물론 암이나 성인병에 대한 저항력도 높인다.
  • 혈액순환 향상  웃으면 동맥이 이완되어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압을 낮춘다.
  • 자연 진통  웃을 때 뇌하수체에서는 엔도르핀과 같은 자연 진통제가, 부신에서는 염증을 낫게 하는 화학물질이 나와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 돌연사 예방  웃음은 스트레스와 분노, 긴장을 완화시켜서 심장마비와 같은 돌연사를 예방한다.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짓는 것보다는, 다른 인공 매체를 통해 '오늘은 좀 웃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공연을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한다. 그래서인지 각 문화적 장르에 있어서도 웃음을 동반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시작하며, 일반 사람들을 그들의 웃음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웃음을 잡아 관객의 마음을 훔치다

1996년에 창설된 <그랑디바>라는 발레단이 있다. 뉴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들은 일본에서 8년 동안 매년 60회 이상 전 공연을 매진시켰던 진기록을 갖고 있는데, 이들이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코믹하게 패러디된 레퍼토리로 조금은 어렵게 인식되었던 발레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오히려 즐거운 웃음으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발레리노와 남성 발레리나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화장은 물론 긴 눈썹까지 붙이고 토슈즈를 신은 남성 발레리나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심지어 연습장에서 완벽한 점프와 회전을 보여주었던 댄서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오버 연기로 실수를 자처하기도 한다. 

 

고전 레퍼토리의 패러디와 재해석으로 예술적 감흥과 함께 유쾌함까지 선사하는 그들의 화두는 바로 웃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비단 이러한 공연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로 자리를 잡은 영화 장르에 있어서는 그 비중이 더욱 크다. 

 

짐 캐리와 우피 골드버그, 로빈 윌리암스, 주성치, 찰리 채플린 등의 이름을 듣고 있노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이들의 공통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가장 웃기는 외국 연예인'으로 손꼽히던 주인공들이다. 

 

영화라는 멋진 서커스장에서 마음껏 재주를 뽐내었던 익살꾼들. 그들 중 찰리 채플린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언제나 비슷한 옷차림에 어리숙한 모습, 그렇지만 모든 영화에서 항상 새롭게 변신하는 창의력에 모두들 감탄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나사를 돌리다 기계 속으로 빠져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아슬아슬한 곡예로 백화점 난간에서 춤추던 그는 우리를 마음껏 웃기다가 지팡이를 둘러메고 석양 속으로 사라지며 웃던 얼굴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를 웃게 만들었지만, 결코 단지 잠시 동안의 웃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동까지 함께 동반시켰던 배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찰리 채플린과 비슷한 시기의 막스 브라더스 역시 영화사에 빛나는 전설적인 애드리브의 왕자였으며, 할리우드가 공인한 '세계에서 가장 웃기는 사나이'였던 스티브 마틴과 <폴리스 아카데미>로 확실한 스타덤에 오른 레슬리 닐슨, 그리고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암스 역시 웃기는 데는 뒤지지 않는 재주꾼들이다. 그들에 이어 1990년대를 평정한 사람은 바로 천의 얼굴, 천의 동물을 흉내 내는 짐 캐리. <에이스 벤츄라>와 <마스크>, <덤 앤 더머>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정말로 많은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에이스 벤츄라>와 <덤 앤 더머>, <마스크>, <못 말리는 비행사>, <미세스 다웃 파이어>, <시스터 액트>, <웰레스 앤 그로밋> 등의 외국영화와 <투캅스 시리즈>, <체인지>, <마누라 죽이기>, <돈을 갖고 튀어라>, <미지왕> 등의 국내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웃음을 폭발시켰던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다. 

 

웃음에 관한 말들

  • 봅 호프  나는 웃음의 능력을 보아왔다. 웃음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것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 
  • 셰익스피어  만일 그가 여전히 웃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
  • 괴테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웃음의 요소를 발견한다.
  • 제임스 월쉬  웃는 사람은 실제적으로 웃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건강은 실제로 웃음의 양에 달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즈음 세상은 웃을 여유조차 없을 만큼 매우 건조하다. 흔히들 '코미디 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쓴웃음이 아닌 유쾌하게 폭소를 터뜨리고 싶을 때도 있다. 웃음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코미디 장르를 벗어나 광고나 드라마, 음악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김창욱 교수처럼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이 우리들의 경직된 웃음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웃을 일이 없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족들에게 선사해 주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코미디 영화를 보며 배가 아프도록 웃어 보자. 아마도 오늘 그렇게 웃음을 잡기 위해 길을 떠나다 보면, 내일 우리들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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