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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절제가 그린 일상의 얼룩, 홍상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난짬뽕 2021. 6. 2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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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절제가 그린 일상의 얼룩

홍상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년 당시 포스터.

 

타인이 아닌 바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속에서 가끔씩 어깨에 짓눌리는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우리는 단지 '벗어나고 싶다'라는 말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때로는 아무런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침몰해가면서도.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영상으로 구현된 주인공과 자신들을 동일시화 하면서 작은 심리적 보상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신분상승과 계급타파, 물질만능과 쾌락이 만연된 부분에서 더욱 강하다. 그러나 '그래, 바로 저럴 수도 있어'라는 짙은 공감대 속에서도, 그것이 실제 자신의 모습과 연결된다면 과연 어떠할까? 

 

익숙함으로 인한 친근감에도 불구하고 애써 그들은 자신과의 분리작업을 끝없이 도모할 것이다. 왜냐하면 표출된 관찰이 비록 생명력 있고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바로 나?'라는 정밀묘사가 자신의 발자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던져줌으로써 형언치 못할 감정의 동요와 더불어 섬뜩한 무서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매스컴과 평론가들의 찬사가 쏟아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우리에게 묘한 기분을 던져주고 있다. 유부녀와 사랑을 나누는 삼류 소설가 효섭, 남편의 결벽증에 시달리며 효섭과의 불륜이 유일한 탈출구인 보경, 아내에 대한 의심이 강박감 속의 사랑으로 표현된 동우, 그리고  짝사랑이 깨어지며 자포자기에 빠져든 민재. 이들 네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출발에도 불구하고 '삶의 파탄'이라는 동질 된 종착점으로 귀결되고 만다. 

 

원래 이 작품은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단 이틀 동안의 작업 시간을 통해 네 사람의 젊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서로 다른 인물의 하루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원작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작품 전체에서 감독 홍상수의 짙은 색깔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문학 관련 다큐멘터리 같은 바탕 위에 개인적인 실험 영화의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독 시점 배치에서 크게 두드러지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어느 한순간도 누구의 입장에 서지 않으며 다만 전개상의 흐름만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모험이다. 영화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의식의 흐름을 유보함으로써 그 모든 영역의 권리를 관객의 사고에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자신과 영화와의 중간 거리를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영화 속의 주체가 되어 그 모든 상황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며, 그 효과는 무척이나 대단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주목한 것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은유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좌절된 인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적 요소를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에서는 오히려 자기 자신과의 심리적 억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회적인 부적응, 일과 사랑 등 모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삶 자체가 원만할 수 없다. 이것은 제목에서도 그대로 암시되고 있는데, '우물'은 열린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한번 빠지면 다시 나오기 힘든 폐쇄적 공간으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정신적 알레고리에 빠져 들었을 때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모습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둘째, 철저한 자연주의적 성격을 말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자연주의란, 피조물의 삶을 좌우하는 초경험적, 형이상학적, 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 자체의 세계를 말한다. 돼지는 일반적으로 그 식욕을 빗대어 성적인 동물로 많이 묘사되어 왔다. 그러한 면에서 돼지 자체를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결합 즉 음과 양의 성적 조화로 봐야 할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이 과체류 열매 과일인 방울토마토를 효섭이 먹는가 하면, 장면 중간중간 과일에 집중되어 카메라 초점이 맞춰지는 점, 특히 정화되지 않은 즉흥적 대사 처리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연결을 내용 전개상 이루어지는 성행위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정 지으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매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제목과 전체 흐름을 통한 형식주의 비평에서 생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이 데뷔했을 때 들었던 기억이 있는 "쉽게 만들었다 싶은 영화를 좋아하고, 인상 쓰고 심각한 영화는 안 좋아한다"는 그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이렇듯 오히려 그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많은 은유들이 절제되어 있는 일상의 얼룩들을 그린 작품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것은 1996년이다. 그즈음 나는 영화를 업무의 개념으로 보던 시기였다. 개봉되는 영화를 일찍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시사회에서 만나는 영화들은 그리 나를 사로잡지 못했던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만난 것 역시 공식적인 장소에서였다. 나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운이 좋게 많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던 그때가 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날씨가 정말 맑았던 오후였고, 이 작품에 대한 끌림이 없어 영화를 보는 내내 딴생각을 하고, 그리 아름답지 못한 장면들에 표정을 찡그렸던 것도 같다. 그 당시 포스터는 요즘 소개되는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우연히 보관해 놓은 파일이 있었다. 포스터에 쓰인 카피가 눈에 띈다. "그들은 단 하루를 살았다. 영화처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결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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