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책

도둑맞은 공허와 권태, 소설가 정영문

난짬뽕 2021. 9. 18. 16:50
728x90
반응형

 

도둑맞은 공허와 권태

소설가 정영문

 

1999년 처음 만났을 때 / 사진 강권석

 

#1   이탈리아의 어느 호텔. 한 남자가 창가에 앉아 거리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고정된 그의 시선은 굳이 무엇을 찾고자 하는 목적도,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읽어내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방에서 창문 밖 세상과의 대화만을 나누던 그가 3일 후 방에서 나왔다. 자신의 몸이 부딪히는 어느 곳에서도 그 존재감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2   1991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머물게 된 프랑스. 그리 넓지 않은 공원 안에 자리한 연못에서 여러 마리의 학이 보인다. 미동도 없이 하루 종일 학의 몸짓만 바라보고 있는 어느 키 큰 한국인. 사춘기 무렵, 자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한없이 느껴졌던 권태로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3   서울대 심리학과 시절, 학교에 거의 나가지 않았던 한 학생. 그는 대신 끝없이 여행을 다녔다. 정한 행선지도 없이 무작정 청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온통 말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어느 갤러리. 전시관을 몇 번이나 계속 돌고만 있는 그는 벌써 50여 차례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야에 그곳의 작품은 들어있지 않았다. 의외의 시간에 의외의 장소에서 깨어있는 기분. 마치 육지의 길 위에서 조난당한 그런 기분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대외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무신경한 편이죠. 항상 그대로인 것 같아요. 대개의 경우에는 글쓰기를 계속해나감에 따라 권위나 빛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는 글을 쓰면 쓸수록 어둠으로 저를 데려가는 것 같아요. 마치 늪 같은 곳으로 빠져드는 그런 기분요. 글쓰기 작업으로 제 삶을 희생시키는 것, 그것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작품 <검은 이야기 사슬>로 1999년 제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던 소설가 정영문.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가끔씩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버릇이 있는 그는 시간의 흐름에 지배받지 않으며 아주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발표되며 등단한 작품 <겨우 존재하는 인간>과 제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그리고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으로 새롭게 눈에 띈 <하품>에 이르기까지 '작가 정영문'이라는 이름은 모든 문학평론가와 국문학 교수, 몇 개의 문학 계간지와 출판사들에게서 항상 언급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2004년 7월 홍대 근처에서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조급해하지 않는 목소리로 언제나 한 박자 느린 듯하면서도, 듣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한 의사소통을 안겨주었다. 

 

"사실 제 작품이 배경을 이루는 상황들은 그리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해요.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되도록 최소화시키는 편이죠. 그 대신 등장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어요. 물론 스토리라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물들의 상호작용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그러한 스토리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나 단면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제가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진작가들의 화집을 통해서였어요. 굳이 특이한 이미지를 구하지 않더라도, 무심한 순간에 느껴지는 하나의 사물들이 이루는 상태, 각도들이 마치 나를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도움을 받은 시각적 이미지가 제 착상의 단계에서 한 단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어느 한 이미지 안에 어떠한 상황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지난 2002년에는 국립극장 창작 공모에서 작품 <당나귀들>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되어, 연극무대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정영문. 2012년에는 동인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함께 받았던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번역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소설 <페르마타>를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번역했다. 

 

"번역은 제가 쓰고 싶은 고집대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줘요. 자리를 굳힌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소설만을 써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렵죠. 생계는 번역으로 유지해요. 그로 인해 상업적 측면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이렇게 안 팔리는 글도 계속해서 쓰고 있잖아요."

 

사실 그는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서의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함께 대두되는 것이 대중성의 문제였다. 알레고리적인 글을 쓰는 개성 있는 작가로 짧은 명상적인 철학적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만의 색채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읽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는 많이 읽히는 부류의 소설과는 약간 거리가 없지 않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우려는 그는 이미 자기 세계가 충분히 확립된 상태로 등단했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전개해 나갈 문학활동의 그림은 처음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일부의 의견이었던 것 같다. 1999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작가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그는 담담했다. 

 

"개인적으로는 제 작품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소설적 입장이 구축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요. 아마도 그러한 주위의 시선은 그동안 많이 보아왔던 남녀 간의 사랑, 불륜 등 지금 유행하고 있는 주류에서 저의 주제가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제 글이 다른 소설들과 거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봐요. 어느 평론가는 실험적이라는 말씀도 하시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요. 다만 저는 많은 작품을 읽으면서 습작을 한 것이 아니기 대문에 다른 사람의 영향을 아직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삶의 주제적 문제만을 다루고 있죠. 그 공허와 권태는 앞으로 쓰일 제 모든 작품의 뼈대로 보일 것 같습니다. 1999년요? 올해라고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권태롭고요."

 

2004년 만남 / 사진 정광원

 

어쩌면 아직도 나를 글쓰기로 내모는 것은 삶 자체에 대한 나의 충만한 회의이며, 소극적인 이유로는 더 이상 글 같은 것은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나를 완벽하게 차지하고 있는, 내가 나의 삶의 주제의 위치로까지 격상시킨 두 가지, 즉 공허와 권태를 상대로 한, 또한, 결국에는 나의 완패로 끝이 나게 될 삶과의, 그리고 그 일부를 이루는, 부질없기에 더욱더 매달리게 되는 글쓰기와의 이 지겹고 성가신 싸움에서, 그래도 쉽게 투항하지 않는 일종의 무모함의 힘의 편을 들어주고, 나 자신과의, 또한 세계와의 이루어지기 어려운 화해에서 생겨나는 부정적인 기운을 좀 더 들이키고, 그에 따라 소설에 의한 시달림에 좀 더 사로잡혀 있고 싶다는 것뿐이다.

제12회 동서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대중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재능이지만, 어떤 글을 써서 제가 대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렇다면 혼자 글을 쓰지, 왜 발표를 합니까?'라고 되물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작가의 개성 있는 글들을 수용할 수 있는 부류가 곧 생길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흘러가는 세상의 바로 옆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한 뼘만큼 떨어진 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는 아주 특별한 느낌의 작가였다. 옆에 있으면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느껴지지 않는 거리의 무게가 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틀속으로 흡수되기를 절대로 강요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스스로가 그의 작품 안에 구속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그와의 만남은 또 다른 지독한 기다림을 동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작품이 발표될 때까지, 그의 새로운 번역물이 소개될 때까지 말이다. 그 아름다운 구속 저 편에 작가 정영문의 이름이 있다. 

 

글은 나 자신과의 투쟁이다, 김영하

 

글은 나 자신과의 투쟁이다, 김영하

어느 시대에나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은 곧 인식의 낯섦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접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무비판적인 거부의사와 더불어 어느 정도의 공존을 허용하

breezehu.tistory.com

파벽에 반사된 고독한 질주 / 이상

 

파벽에 반사된 고독한 질주 / 이상

파벽에 반사된 고독한 질주 이상 28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나의 회상은 멈추어져 있다. 스스로를 직시하고자 하는 허울만으로의 진실조차도, 더욱이 세상을 이탈하고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