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벽에 반사된 고독한 질주 / 이상

파벽에 반사된 고독한 질주

이상

 

 

28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나의 회상은 멈추어져 있다. 스스로를 직시하고자 하는 허울만으로의 진실조차도, 더욱이 세상을 이탈하고자 하는 작은 고민마저 망각된 채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 살아 있는 나의 죽음, 그 안에서 침묵하고 있는 이상의 모습이 어렴풋히 스쳐 지나간다. 

 

 

1937년 4월 17일.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라는 유언을 남긴 채 사라져 간 이상. 그는 현실과 이혼하지는 못했지만, 결혼 또한 이루어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동거의 흔적은 조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역사는 누구에게나 반보의 낯섦만을 허용할 뿐, 한 발의 도전은 가감 없이 매도해 버리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였을까. 살아있는 동안 너무나 인색하기만 했던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이상은 자신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의 부활은 시작된다. 

 

 

거울속에는고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시 <거울> 중에서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사랑한 나머지 그와 하나가 되고자 했던 나르시스. 상상계의 행복을 구가하면서 현실 속의 자아가 허상이라는 불행을 체험하게 되는 나르시스적 자아는 언어가 개입되기 전의 세계에 존재하는 행복한 자아인 동시에, 결국 그러한 이미지로서의 형상을 본연의 자아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 허상과의 동일시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말이 없는 고독한 이상을 지배하는 나르시스적 충동,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러한 나르시스 단계에 속하는 것이 바로 거울놀이라 한다. 보성고보 시절 세로 10㎝가 넘는 거울을 가지고 다녔던 이상. 나르시스가 호수 속의 자아를 동경했듯이, 그가 거울 속에서 느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본질적, 이상적 자아라 해석되고 있는 거울 속의 자아는 어쩌면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던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로의 단절인 동시에, 나아가 부모 혹은 조상의 이미지를 한 그의 뿌리에 대한 회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공식은 그의 생애를 전제로 하고 있다. 

 

 

1910 강릉 김 씨 김연창과 부인 박세창의 장남으로 출생

1912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감. 이곳에서 백부 사망(1932년) 때까지 지냄

1918 4년제 신명학교 입학

1921 동광학교 입학

1924 동광학교가 보성고보에 병합됨으로써 보성고보 4년생으로 편입

1925 교내 전시회에 풍경화가 당선

1926 그림에 열중, 현미빵을 팔아 학비 보탬

1927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1년에 입학

1929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근무. <조선과 건축>지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 당선

1930 장편이자 처녀작 '12월12일'을 잡지 <조선>에 연재

1931 일어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 폐결핵 증상이 나타남

1933 각혈, 배천 온천에 요양(3월), 그곳에서 금홍(연심)을 만남. 다방 '제비' 경영(7월), 마담으로 금홍을 불러 3년간 동거. '구인회'와 사귐. <카톨릭 청년>에 '거울' 등 우리말 시를 처음 발표

1934 한글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1935 '제비' 폐업(9월)

1936 변동림과 결혼, 10월 동경행. '종생기', '권태' 등 작품 완성

1937 사상 불온자로 오인, 경찰에 구속(2월 12일), 3월 16일 석방.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사망. 그 후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됨

 

 

'바다와 같은 넓은 곳을 다스리는 대작이 돼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울음을 터뜨린 그의 혼돈은 가난을 이유로 백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모더니스트,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 경박한 유행아, 식민지 시대의 전형적인 지성인 등 그의 이름 앞에 수놓아지는 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그의 사고는 많은 내선으로 얽혀 있는 듯했다. 7세 때 이미 <대학>과 <논어>를 읽을 정도로 총명했기에 중독에 가까운 편애를 한 조부와 백부, 그리고 여전히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실부와의 관계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 방황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난 동일한 어휘의 반복과 마치 중얼거리는 듯한 음송증 등은 그러한 이상의 정신적 외상을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가 될 것이다. 그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어떠한 완성된 형식 안에 자신의 주장을 집어넣고자 한 전통적 작가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 문명에 파양 되어 보통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개성의 파편 조각들을 추려 다시 그것들 안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자 여러 각도에서 테크닉의 실험을 시도한 작가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그의 작품은 해득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의 난해성에 대한 원인이 단지 작품 속에 사용된 몇 개의 용어나 단어에서 파생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1'부터 '제13'까지의 숫자라든지 '이해', '도로', '질주', '길', '무섭다'라는 용어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지 않은 평범한 일상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우리의 이해에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그러한 용어와 문장들로 조직된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과 의미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 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지적 딜레마. 그것은 그의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이상 자신의 파편적인 감정이나 영상이 채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예술은 결코 개인의 병적 성격에서 표출된 분비물로만 간주되어서는 너무나 협의적인 오류를 범하는 행위이다. 적어도 작품 안에서의 그의 고민은 자신의 일상사를 가면으로 쓴 전인류 현대인의 고민이며, 그 비극 앞에서 파생되고 있는 세심한 잔상들이기 때문이다. 

 

 

작품 연보

 

시

이상한 가역반응 / 조감도 / 3차각설계도 / 건축무한6면각체 /  1933. 6.1 / 꽃나무 / 이런 시 / 거울 / 보통기념 / 오감도 / 소영위제 / 정식 1~6 / 지비 / 지비 1~3 / 역단 / 가와가전 / 명경 / I WED A TOY BRIDE / 위독 / 파첩 / 무제 1 / 무제 2 / 청령 / 한 개의 밤 / 이유이전 / 자화상 / 척각 / 거리 / 수인이 만들은 소인국 / 육친의 장 / 내과 / 골편에 관한 무제 / 가구의 추위 / 아침 / 최후 / 유고 1 / 1931년(작품 제1번) / 습작 쇼윈도 수점 / 유고 5 / 황 / 애야 / 회한의 장 / 단장 / 황의 기(작품 제2번) / 작품 제3번 / 여전준일 / 월원등일랑

 

소설

12월12일 / 휴업과 사정 / 지도의 암실 / 지주회시 / 날개 / 동해 / 봉별기 / 종생기 / 환시기 / 실화 / 단발 / 김유정 / 불행한 계승

 

수필

혈서3태 / 지팽이 역사 / 오감도 작자의 말 / 산책의 가을 / 산촌여정 / 나의 애송시 / 서망율도 / 편집후기 / 조춘점묘 / 여상/ 약수 / EPIGRAM / 동생 옥희 보아라 / 아름다운 조선말 / 행복 / 가을의 탐승처 / 추등잡필 / 사신 1~9 / 19세기식 / 공포의 기록 / 권태 / 슬픈 이야기 / 실락원 / 병상이후 / 동경 / 최저낙원 / 얼마 안되는 변해 / 유고 2 / 유고 3 /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모색 / 유고 4 / 구두 / 어리석은 석반 / 첫번째 방랑 / 공포의 기록 서장 / 공포의 성채 / 야색

 

평론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형성할 수 없다 / 현대미술의 요람 / 작가의 호소 / 자유주의에 대한 한개의 구심적 경향 / 문학과 정치

 

동화

황소와 도깨비

 

 

 

현실 생활에서는 나태와 무기력의 병인이었으며, 작품 활동에서는 성실치 못한 자조와 서툰 초현실주의의 모방 등으로 비난받고 있는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풍경을 떠올리는 나에게 그는 내 사고의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절망할 줄 아는 작가, 가식과 허세로 자신을 치장하고자 애쓰고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독 그만이 자신의 아픔에 솔직하게 좌절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지적으로 절망할 줄 아는 유일한 작가. 그래서 나는 작가의 어떠한 병적인 성향이나 또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개인적인 콤플렉스 등에 한정하여 그의 작품의 내용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이다. 그러한 일종의 정신 분석 비평으로 인해 그의 작품 속에서 아직 파악되지 않거나 또는 오해로 남아 있는 사실들을 끝내 발굴하지 못할지도 모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가 발표한 몇 편의 소설들은 그의 많지 않은 시에 대한 해설이며, 또한 이러한 시와 소설에 대한 주석은 그의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는 몫이다. 그러므로 이상은 단지 시인이나 소설가라는 이름으로서만 한정시키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다. 

 

 

닭이나 사람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상한 습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집안에 틀어박혀 사람 얼굴이나 눈, 기타 그림을 그리거나 부동자세로 벽에 기대어 멀뚱멀뚱한 눈으로 멈춰진 초점. 자리에 누우면 항상 이불을 뒤집어쓰고, 수세미처럼 언제나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특이한 성격. 빗질은커녕 앉으면 일부러 머리를 흩트려 놓았으며, 이발은 친구가 억지로 데리고 가다시피 하여 넉 달에 한번 정도. 허술한 옷차림, 몸단장에 관심이 없었던, 돈을 벌고자 했지만 돈벌이에 소질이 없었던, 그래도 동생을 보면 으레 주머니를 털어서 몇 푼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몽땅 쥐어주던 따뜻함, 별로 말은 없어도 식구들에게 퍽 잘했던, 늘 가족을 그리워했던 약한 마음.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러나 화가의 길을 고집하지는 못했던 슬픈 자화상.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소설 <날개> 중에서

 

 

이상의 모든 예술 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이데아와 현실. 그로 인해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자아의 해체. 그 숨 막히는 이상과 현실 속에서 그가 타협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초월자로서의 과감성을 제대로 고집하지도 못했고, 또한 그 반대편에 서서 일상적인 인생을 독하게 지배하지도 못하며 모든 것을 현실 속에 완전히 재귀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기만 했다. 거울 앞에 투영된 그 얼굴 너머에서 나는 지금 이상의 또 다른 부활을 훔쳐보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그들

정글의 세계에서 음악을 설계하는 창조의 마법사, 작곡가 강석희

 

한국 클래식 타악의 선구자 박동욱, 그 깊은 울림

 

고독한 미국의 자존심,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