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짧은 만남, 긴 여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서, 강원래

난짬뽕 2021. 9. 2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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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서

클론 강원래

 

사진 김진성

 

저녁을 먹고 남편과 함께 한강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잔디밭에서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젊은 친구 두 명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 그룹의 손동작까지 따라 하는 듯했다. 나와 남편도 어느 순간 똑같은 가사를 흥얼거리며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오래전에 만났던 그가 생각났다.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 그의 모습이 자리해 있다. 흥분된 마음으로 어깨를 들썩거렸던 지난날의 추억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날 이후의 아픔까지도. '꿍따리 샤바라'를 따라 불렀던 1996년 춤추는 멋진 모습의 클론을 사랑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한다. 

 

2004년 8월, KBS 신관 2층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이 가장 잘 나올 만한 배경을 찾았다. 햇빛이 스며드는 창가 쪽 자리에 마음을 두면서도 왠지 망설여졌다. 그곳에 오려면 계단을 내려와 좁은 통로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면서 그를 떠올렸다. 예전과 다른 모습의 지금의 그를 지난날과 같은 느낌으로 맞이해야 할까. 아니면~~~ 그리고 결정했다. 과거도 현재도 아닌, 강원래라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말이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에서 휠체어를 타고 내려올 만한 경사길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며칠 밖에 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같이 동행한 지. 보여주고 싶었죠.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말이에요. 아직도 아주머니들은 저를 장애우로 보지 않고 연예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제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심지어는 제가 곧 걸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죠. 그런 배려들이 오히려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흉추 3번 척수마비 장애우. 저를 장애우로 보는 것도, 비장애우로 여기는 것도 기분이 모두 우울하더군요."

 

사고 직후부터 그 당시 줄곧 혼자 다녔던 그는 얼마 전부터 친구와 함께 동행했다. 

 

"좀 더 많은 곳을 다니기 위해서요. 그것은 제 마음이 세상 속으로 더 많이 열리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물론 처음부터 닫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죠. 대부분 재활치료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몇 단계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처음에는 자신에 대한 강한 부정에서 결국 분노하고 좌절하며 결국에는 수용하고 복귀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고로 인한 중도 장애우이기 때문에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간이 1년에서 5년 정도라고 하더군요. 저는 3~4개월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왔지만, 아직도 그러한 단계들의 복잡한 감정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겨낼 수 있는 것이겠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다 시간의 차이겠죠. 100m 달리기에서 좀 더 빨리 들어오고 늦게 결승점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에요."

 

사고가 난 후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그에게 사인을 부탁했다는 말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부인 김송 씨의 사랑과 지금까지도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그에게 굳이 달라진 지금의 생활 모습을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내가 말하려 하지 않은 질문의 답변까지 오히려 건네주었다. 

 

"사람들이 제 휠체어를 들어줄 때면, 고마우면서도 한쪽으로는 제가 물건 같은 기분이 들어요. 송이한테는 하나의 짐밖에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려 해도 소변 때문에 항상 걱정하는 말을 하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너 괜찮니?'라는 말을 듣는 것이 정말 싫더라고요."

 

그 당시 그는 일주일 가운데 수요일 단 하루만이 스스로를 위한 자유시간이었다. KBS 1FM <강원래, 노현희의 뮤직 토크> DJ와 iTV <강원래의 미스터리 헌터> MC로 활동 중인 그는 방송 녹화와 촬영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해했다. 특히 자신의 모교가 있는 강릉에 <클론 댄스 아카데미>를 오픈하여,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리듬을 타고 자신 또한 그들과 어울려 직접 춤을 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 타고서도 잘 산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휠체어 타고도 열심히 노력하는 연예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예전의 클론의 모습으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 모습이 좀 더 정리되고 제 마음이 성숙해지면, 그때 장애인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90% 이상이 교통사고로 인한 중도 장애우라고 하더군요. 가끔씩 전국을 돌아다니며 저와 같은 중도 장애우들에게 '희망특강'을 하고 있는데, 제가 좌절하면 다른 장애우들이 더 힘들어할까 봐 더 열심히 생활하려고 노력합니다."

 

휠체어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허리 통증이 심하게 밀려온다는 그는 오히려 우리들을 위해 실내가 아닌 밖으로 나가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시원스러운 행동과 명쾌한 대화로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그의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찰랑거리던 바람마저 하늘빛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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