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짧은 만남, 긴 여운

스물두 살의 비상(飛上), 스턴트우먼 홍남희

난짬뽕 2021. 9. 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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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의 비상(飛上)

스턴트우먼 홍남희

 

사진 김진성

 

무표정한 눈동자가 온몸을 흥건히 젖힌 땀방울을 밀쳐내며 꿈을 꾸고 있었다. 더 높이 조금 더 멀리 세상을 향해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젊은 열기. 도전이라는 이름 아래 스물두 살의 스턴트우먼 홍남희를 만났던 것은 2004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OK! 바로 그거야!"

실오라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들려온 연출자의 한마디에 모든 스텝들의 숨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모두들 다음 촬영을 위해 장비를 챙기고 대본을 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방금 건물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린 젊은 스턴트우먼은 미동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인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낮은 곳에서의 낙법조차 망설이게 만드는, 남몰래 숨겨온 고소공포증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비록 감독을 비롯한 모든 출연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만큼 완벽한 한 장면이었지만,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느껴졌던 감각은 '아, 이런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이었다. 남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아주 작은 실수. 자신만이 혼자 묻어둘 수 있는 1%의 부족함을 그녀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음을 개척한다, 나의 인생을

매일 오전 10시. 열 바퀴째 운동장을 달리고 나서는 곧바로 200개 이상 발차기를 하며 수천 번이 넘게 점프를 하는 동시에 가볍게 떨어지는 연습을 하고, 4대 1로 짝을 이뤄 액션 동작을 반복적으로 거듭한다. 공중으로 돌아서 내려오거나, 때로는 힘 있게 넘어지기도 하면 그녀의 하루는 어느새 5시가 된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남보다 한 번 더 체조를 하고, 다른 스턴트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단체 연습이 끝난 후에도 혼자 남아 체력 운동을 하고 있노라면 밖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물들어 있다. 

 

그렇게 한 주가 시작되고 주말이 되면 영화를 비롯한 드라마와 CF 촬영이 뒤를 잇는다. 지난해 5월, 스턴트우먼이 되기 위해 울산의 집을 떠나온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날이 없다.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촬영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다시 훈련을 위해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처음 2~3개월까지는 발에 쇠를 달아놓은 것처럼 제 몸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졌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운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번만 참자.'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새 무엇인가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턴트우먼의 수는 고작 2~3명. 스턴트맨 역시 100여 명이 채 안되었다. 매년 약 60여 명 정도가 액션 배우가 되기 위해 발을 들여놓지만, 그중 절반 이상이 한 달 안에 포기하고 6개월 이내에 그 사람들의 1/3조차 집으로 돌아간다고 서울액션스쿨 관계자는 말했다. 단지 화면으로 보이는 멋진 동작에만 심취되어 기본적인 실력을 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기교만 부리려는 사람들은 결국 고된 훈련과정에서 모두 낙오되는 것이다. 

 

"그냥 놀이기구를 탄다고 생각해요. 자신감 있게 심호흡 한 번 하고. 그렇지만 날이 가고, 제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고, 맡는 배역 역시 비중감이 조금씩 높아갈 때마다 저는 여전히 두려워요. 하면 할수록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거든요."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의 젊음을 바칠 수 있는
저만의 도전이 있어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사진 김진성

 

 

그들의 이름은, 또 다른 주인공

액션배우로서의 첫 작품인 영화 <귀신이 산다>를 비롯하여 시트콤과 일일연속극 <왕꽃선녀님>, 주말 사극 <불멸의 이순신>과 각종 CF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세 잎 클로버>의 주인공인 이효리를 대신하는 액션 배우로 그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너무나 하고 싶었어요. 나를 희생하면서 최선을 다해 제 삶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죠. 굳이 제가 액션배우가 된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밖에 없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수줍은 외동딸.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이 걱정되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합기도를 가르쳤다. 합기도 3단인 그녀는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2년 가까이 사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액션배우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바로 젊음을 건 도전이었다. 

 

"<조폭마누라>를 비롯한 한국영화의 액션배우들을 보면서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저는 온몸이 떨렸죠. 그들의 발차기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작은 손놀림에서도 살아있는 선이 느껴졌어요. 부모님의 반대요? 당연히 있었죠. 그런데 제가 자신 있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제 인생을 개척하고 싶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드렸더니, 결국에는 허락해 주셨죠. 지금은 울산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드릴 수 있을 정도의 출연료도 받고 있으니, 힘은 들지만 너무나 행복해요."

 

사회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어도, 액션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몸을 수련하며, 유연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위험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액션배우의 기본정신이다. 

 

"친구들요? 전혀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예쁘게 꾸미고 여유롭게 즐기고~~~.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의 젊음을 바칠 수 있는 저만의 도전이 있어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제 액션배우의 길로 들어선 지 채 1년도 되기 전에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홍남희. 남들과 똑같이 생활해서는 최상이 될 수 없다고 느끼는 그녀의 하루는 언제나 24시간을 초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물두 살의 젊은 도전은 화려한 봄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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