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짧은 만남, 긴 여운

스무 살 거울 속의 삽화, 나쁜 영화 주인공 변상규 이재경

난짬뽕 2021. 7. 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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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거울 속의 삽화

 

<나쁜 영화> 주인공들

변상규, 이재경

 

사진 김명미

 

굳이 그들을 만나고자 했던 고집에 대한 주위의 의아함에, 나는 별다른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나 또한 어떠한 구체적인 이유를 거론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거렸던 그들의 존재는 내 안에서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들을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특명! 나쁜 아이들의 아시아 횡단>이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주위를 의식하지도 않고 웃음을 터트리며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문득 그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나쁜 아이들이라는 수식어가 굳어진 영화 속의 그들을 보기 위함도 아니었고, 더욱이 그들이 그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또한 나의 직업을 핑계 삼아 그들의 생활을 엿보고자 했던 허욕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1999년 1월 즈음에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 읽기에 빠져 있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7개국을 100일간의 여정을 통해 각각의 나라에서 특명 하나씩을 해결했는가 하면, 한 푼의 여행 경비도 없이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실 속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지난 1997년 10월부터 <특명! 나쁜 아이들의 아시아 횡단>을 시작으로, 4개월간의 국토종단을 끝마친 <나쁜 아이들의 세상보기>, 그리고 그 당시 <특급 모험! 나쁜 아이들이 달린다>라는 제목으로 같은 또래 청소년들의 만남을 통해 나름대로의 홀로서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이러한 인천방송과의 인연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어느새 거리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작은 스타가 되어 있었다. 

 

"저희들요? 왜요?"

 

인터뷰에 대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나는 그들에게 연락을 했다. 영화를 보지도, 그 당시 출연 중인 인천방송의 프로그램도 피했다. 동료들을 비롯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속에 그들은 여전히 '나쁜 아이들'이었으며, 나에게도 그것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는 굳이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사고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 역시 아니었다. 다만 아무런 편견 없이 만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누나!"

 

그들의 첫인상은 어떠할까, 라는 낯섦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나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그들이 건넨 '누나'라는 친근한 어투였다. 더욱이,

 

"저희 PD형께 먼저 전화해 주실래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는 자신들이 현재 방송 중인 담당 PD의 허락이 전제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조금은 거칠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앞에서 그들은 조금도 무례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편견을 갖지 않겠다는 나 역시 마음속으로는 또 다른 선입견이 내재되어 있었나 보다. 

 

다시 찾은 상규의 낮과 밤

그 다음날 바로 인천방송 장세종 PD의 전화가 있었다. 일주일 내내 빼곡히 잡혀 있는 촬영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시간을 할애받는 배려를 건네받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미 진행 중인 촬영 계획까지 보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욱더 감사했다. 

그 몇 시간 후, 나는 이태원 훼밀턴 호텔 앞에서 상규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원래는 재경이까지 함께 만났으면 했지만, 6시까지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고 보니, 조금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재경이는 현재 컴퓨터 게임에 빠져, 하루 종일 게임방에 거주한다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그의 게임 전쟁은 저녁 6시쯤이 되어서야 한숨을 돌린다는 것이, 내가 들은 후문이었다. 

 

"누나! 제 얼굴 모르셨어요?"

 

우리가 약속 장소에서 약 10분간이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서로 인사를 건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상규의 얼굴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결국 영화도, 인천방송으로 채널을 돌리지도 않았던 고집을 부린 것이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요."

 

지금의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보통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이러한 일상이었다. 

 

"춤추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예전에는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대학로에서 주로 춤을 많이 추었어요. 요즈음에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주로 장기를 두죠 아마 제 또래에서는 그래도 잘 두는 편에 속할 걸요. 히히, 사실은 재경이한테 맞으면서 배웠지만요. 지금도 촬영지에서 종종 마을 어른들과 두는데요. 쉽게 지지는 않아요. 더 잘 두고 싶어서요. 지금은 책을 많이 읽어요. <장기 묘수 풀이>, <장기전서> 등 한 4권 정도 장기에 관한 책을 샀거든요. 누나, 아니에요. 얼마나 쉬운데요. 바둑은 둘 수 있다면서요."

 

장기는 잘 두지 못한다는 나에게 손가락을 짚어가며 오히려 바둑보다도 쉽다는 말을 강조하는 상규의 어깨는 음악을 느끼는 것처럼 리듬을 탔다. 

 

"실은 제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거든요."

 

피자나 빵을 잘 먹지 않는다는 상규는 청국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밖으로 잘 돌아다니지도, 불규칙한 생활도 자제해서인지 8kg이나 체중이 불었다며 웃어 보였다. 

 

"요즈음 체육관에 다니거든요. 복싱을 배워요. 아뇨, 아직 누구하고 시합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하고요. 그냥 샌드백 치는 정도에 불과하죠. 제가 모든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국민학교 때에는 축구 연습을 하느라고, 새벽 5시에 등교할 정도였으니까요. 달리기요? 히히, 스파이크 신고는 100m를 11초 안에 주파할 수 있어요. 잘 뛰죠?"

 

운동 얘기에 한층 흥을 올리던 상규가 갑자기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말문을 연 것은 나를 향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실은~~~ 누나가 물어보고 싶은 것 있으면, 다 질문해도 된다고요. 전 괜찮거든요. 사실 예전의 모습들도 저 자신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그리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인터뷰는 나에게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 직설적인 방법으로 예전의 생활들을 더듬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입장을 바꿔서~~~ 그러니까 상규 네가 나이고, 내가 너라면~~~ 그러면 나한테 무슨 질문을 하고 싶어?"

 

"너무 어렵네. 그걸 어떻게 해요. 누나, 전 잘 모르겠어요. 음~~~ 며칠 전에 중학교 동창 녀석한테서 연락이 왔었어요. 시험 잘 보라고 연락도 안 했다면서, 막 화를 내더라고요. 실은 일부러 하지 않았거든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대요. 아뇨, 요즈음 바빠서 그런 생각 안 해요. 후회한다고 해서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도 없잖아요.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겠죠. 지금은 비록 이렇지만, 나중에는 제가 더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해요. 그래서 침울해하지 않아요."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공부도 잘했고 반장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집을 나갔어요. 전 육상 선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운 좋게 중학교에서 육상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 뭐예요. 그런데 엄마가 반대하시더라고요. 물론 그때에는 공부를 조금 하는 편이라서 그러셨나 봐요. 제가 집을 나간 것이 충격이셨는지, 그렇게 운동을 하고 싶으면 3년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에는 체고에 보내주신다고요. 그렇게 약속하셨는데, 중3이 되어서도  끝내 체고에 보내주시진 않으셨어요. 아마 저도 모르게 부모님께 반항 심리가 생겼던 것 같아요. 전 중학교 생활 내내, 조금만 참으면 이제는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거든요. 800m, 100m, 그리고 멀리뛰기와 마라톤도 잘해요. 중학교 2학년 말이었는데요. 롯데월드에서 시작하는 마라톤 대회가 있었어요. 등수는 몇 등인지 잘 알 수도 없지만요. 제가 완주했다는 것 아니에요. 히히, 아파서 일주일간 학교에 가지 못했지만요."

 

부모님의 반대로 체고에 끝내 진학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의 학교 생활도 불안정하게 변해갔다고 한다. 

 

"중3 때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에는 생각이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아니,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길을 가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가 우산을 갖고 덤벼들더라고요. 그래서 엉겁결에 방어한다는 것이 코뼈를 부러뜨렸어요. 제 주먹이 좀 센나 봐요. 겁이 나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 달 넘게, 저처럼 집을 나온 애들하고 같이 돌아다녔죠. 누나도 아시죠? 저 그때 나쁜 짓 많이 한 것. 너무 배가 고파서 남의 것을 훔치기도 했거든요. 지금요? 어떻게 돌아가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정말로 학교를 그만둔 고1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요. 지금 후회되는 부분들을 다 마무리짓겠어요. 그때에는 체고에 가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 다 무의미하게 여겨졌었는데요. 지금은 그렇게 자포자기로 생활했던 제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만약 지금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똑같은 상황이라면요. 아마도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 같아요. 집을 나가는, 그런 짓 말고요."

 

상규는 친구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부모님과 한 살 터울 여동생을 제외하고도, 언제나 그의 친구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재경이만 해도 상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저녁을 5년간이나 먹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재경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당시 상규의 집 전화는 오히려 그의 친구들이 더 많이 받는 것을 보게 된다. 

 

"문득 작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께서 더 힘드실 거라는. 하지만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시거든요. 같은 식구 대하듯이요. 오히려 제가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까, 친구들이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능력이 안되지만, 3~4년 꾸준히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겠다는 것이 상규의 목표였다. 한때 노는 것만으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뒤바꾼, 우연히 대학로 공공화장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다가 김수현 조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까지 찍게 된 상규의 좌우명은 '현재,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이라 했다.

 

"스무 살밖에? 아니에요, 누나. 스무 살 씩이나 된 걸요. 저의 10대가 다 지나갔잖아요. 인천방송의 <특명! 나쁜 아이들의 아시아 횡단> 중, 태국의 아롱콕 사원에서 3일간 봉사하라는 특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곳은 에이즈 환자의 수용시설이더라고요. 마지막 날, 그동안 친해진 안내원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강당으로 데려갔어요. 아주 넓은 그곳에는 다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저를 위해 음악을 들려주었어요. 저라는 단 한 명의 청중을 위해서요. 얼마 후에 알게 되었죠. 에이즈 환자가 일반인과 똑같이 행동할 경우, 그들의 수명이 하루 정도씩 단축된다는 것을요. 제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신들의 죽음을 앞당기면서까지 저에게 연주를 들려주다니~~~ 한 번은 경험해 봤으니, 다시는 예전처럼 그러한 행동들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기본적인 것들은 배워야 할 것 같아서요. 올 5~6월이 되면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일본어 기초도 조금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누나, 저 마지막으로 이런 말 하고 싶은데~~~ 마냥 노는 얘들이 그저 아무 생각도 없고,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다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때로는 조금만이라도 긍정적으로 들어주셨으면 하고요. 물론 얘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만약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처럼 그렇게 대책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부모님과 함께 다른 방법을 서로 의논하는 것도 좋았을 거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닫힌 마음을 풀어버린 재경

재경이가 다니는 게임방이 한남동 순천향대학 병원 앞에 있다는 상규의 말을 듣고, 그곳에 도착한 것은 어둑어둑해진 6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누나, 미안해요. 그 게임이~~~"

 

이럴 줄 알았으면 약속 장소를 실내에 정할 걸, 하는 생각으로 찬바람에 떨고 있을 때 나타난 재경이의 도착은 7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상규와 마찬가지로 서로 얼굴을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부랴부랴 달려오던 모습만으로도 그가 재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임방에서 얘기해도 괜찮죠? 거기 휴게실도 있거든요."

 

기계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탓에 게임과도 거리가 먼 나는, 재경이 덕에 게임방이라는 곳에 처음 들어가게 되었다. 

 

"누나, 잠깐만요. 아까부터 하던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

 

나는 그 옆에 앉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신나 하는 재경이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번갈아 가며 둘러보았다. 그런 나에게 조금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재경이는 그 게임의 제목은 '스타크래프트'라며 자신의 독수리 타법으로 상대방을 공략한다는 말도 귀띔해 주었다. 

 

"네트윅 게임이거든요. 서로 다른 장소의 모든 사람들이 맞붙을 수 있어요. 승부는 머리싸움으로 좌우되죠. 아뇨, 아주 잘하지는 못하지만 중급 정도의 실력은 될 거예요. 집에서 자는 것만 빼곤, 거의 이곳에 있는 편이에요. 한 한 달 전부터 게임에 빠져들었거든요. 물론 그 전에는 만화책 광이었지만요. 그래서인지 요즈음 어떠한 가수가 TV에 나오는 지도 잘 몰라요. 게임하면서 영어 공부도 더불어 할 수 있다는 걸 잘 모르시죠? 적지 않게 영어 단어가 많이 나오거든요. 그럴 때마다 옆에 있는 형들한테 물어보는데, 그렇게 익힌 단어가 꽤 된다는 것 아니에요. 히히."

 

그렇게 앉아 있기를 30여 분. 재경이는 내가 의식되었는지, 휴게실이라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떠난 재경이는

 

"누나, 이거 원두커피래요. 주인 형이 딱 한 잔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때 마셔본 것보다도 향이 좋다는 말을 건네자, 재경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딴짓을 해 보였다. 

 

"성격요? 내성적이기도 하고, 조금은 단순하면서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 편하대요."

 

무덤덤한 표정 속에서도 한쪽 눈과 입만을 움직이며 장난기를 드러내는 재경이는 정말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자상함이 있었다. 가끔씩 '음~ 음~'이라는 의성어를 잘 썼는데, 나는 그것이 그의 버릇임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간혹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요. 그렇다고 불편할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규의 집에서 함께 지내던 재경이는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상규 부모님께서는 항상 가족처럼 대해 주셨어요. 감사하죠. 불편해하실 만도 한데, 그런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거든요. 늦게 들어가면 '어휴, 빨리 들어가 자라.'라며 걱정하시고, 용돈도 주시고요. 집요? 편하긴 하죠, 집이. 지금은 아버지도 같이 계세요."

 

중2 때까지만 해도 재경이는 할머니와 삼촌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교통사고를 당하신 아버지와도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재경이는 자신의 식구들에 대해 자랑이 대단했다. 

 

"저희 아버지는 무척이나 잘 생기셨어요. 예전엔 정말 뛰어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셨대요. 지금은 제가 이렇게 못생겼지만요, 저희 아버지 학창 시절 모습 그대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마 제가 아버지만큼의 나이가 되면, 아마도 아버지처럼 잘 생긴 모습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재경이는 유독 아버지 얘기를 많이 했다. 

 

"모든 것이 다 구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고요. 저도 제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 컸다고 느꼈는데, 너무 아기처럼 대하시는 것이 싫었거든요. 상규도 그때 만났어요. 중1 때요. 제가 나쁜 짓을 했거든요. 편의점에서~~~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죠. 전 소년원에 가게 되었고, 상규는 다른 일로 관찰보호를 받고 있었거든요."

 

재경이는 잠시 말문을 닫은 채, 자리를 떠났다. 그리곤 다시 커피 한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웃어 보였다. 나는 재경이의 잔에 반을 따라주며 함께 나눠 마셨다. 

 

"전 지금이 제일 좋아요. 몇 살 안되었지만, 다시 돌아가고픈 시절은 없어요. 지금의 여건이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저의 사고방식은 많이 틀려졌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행동들이 지금까지 어떠한 나이 때 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어요. 옛날에는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어요. 무서운 것도 없었으니, 행동도 자유로웠죠.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두려워요. 사람을 사귀는 것도, 돈도 무섭기만 해요. 누나, 제가 예전에 했던 일 다 아시죠? 온갖 나쁜 짓, 본드~~~ 그때의 생활들이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도움이 되었던 것도 아니고요."

 

웃으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재경이는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지금 현재에 대하여 충실하고자 마음먹을 뿐이라고 했다. 

 

"장래가 뚜렷하게 잘 보이지 않아요. 음~~~ 제가 요리에 조금 소질이 있다고들 하더라고요. 라면 하나를 끓여도 고추에 파에~~~ 이것저것 넣어가며 실험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저희 할머니 음식 솜씨가 끝내주시거든요. 할머니를 닮았나 봐요. 그래서요. 한 10년 후쯤에는 먹는장사를 한 번 해볼까 해요. 부산으로 촬영 갔을 때 PD형과 상규랑 점을 봤거든요. 그런데 제가 25세 때까지는 잘 풀리지 않지만, 그 이후로는 금전도 쌓이고 잘 될 거래요. 아마 장사가 너무 잘 되는 것 아닐까요? 이제는 저도 평생직장을 찾아야죠."

 

무엇인가에 한 번 몰두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재경이는 그래서인지 수학경시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는 중학교 때까지만 다녔다. 미술에 있어서의 색조 감각도, 만화 주인공의 캐리커쳐 묘사도 뛰어난 재경이가 하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있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재경입니다. 아~ 아~ 아~~~ 덜~ 덜~ 덜~~~ 누나, 너무 어렵네요."

 

재경이는 라디오 DJ가 되고 싶기도 하다. 저녁 7시쯤에 시작하여, 한두 시간쯤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 방송의 첫 초대손님은 바로 인천방송의,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배철수 아저씨를 만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전에 <가출 소년을 찾아라>는 내용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어느 한 어머니께서 물으시더군요. 어떻게 하면 집을 나가지 않겠느냐고요.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죠.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많은 대화를 하셨으면 한다고요. 단,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서요. 한 번쯤은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신다면, 그만큼 자녀들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거니까요."

 

내가 만난 그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스스로 '나쁜'이라는 접두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왠지 그 어휘가 그리 익숙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바람이 꽤 매섭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낄 수 있었던 체감 온도는 그리 쌀쌀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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