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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미학, 디자이너 홍미화

난짬뽕 2021. 12. 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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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미학으로 승화된

완벽한 자연스러움

 

패션 디자이너 홍미화

 

 

얼마 전 뉴스를 읽다가, 홍미화 패션 디자이너가 네팔에 이어 아프리카 가나와 남아공 지역을 돌며 지구촌 문화교류 패션쇼를 개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93년 파리에서 화려한 무대의 런웨이 대신 뱅센 숲 속에서 500여 마리의 반딧불을 날리며 패션쇼를 열어 화제가 되었던 디자이너 홍미화의 패션은 늘 '자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절제된 미학으로 승화된 완벽한 자연스러움.

 

디자이너 홍미화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에 한 매스컴을 통해 본 그녀의 당당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사명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시대의 공기와 흐름을 같이 하는 오리지널리티가 바로 디자이너의 사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97년 말인가, 아니면 1998년 초였던가. 어느 매체에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라는 주제로 특집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그때 표지모델이 입을 의상으로는 홍미화의 옷이 스태프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는데, 정작 표지모델을 선정하는 데는 고민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배우 이영애가 선택되었지만. 

 

그 무렵 운 좋게 나는 홍미화 디자이너를 그녀의 신당동 작업실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사진 허성민

 

제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인데, 어찌 한국적인 요소가 배제될 수 있겠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첫인상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몇 가닥 살짝 내비친 새치가 오히려 한층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그리 짧지 않은 생머리를 둘둘 틀어 올린 청초한 들꽃 같은 이미지였다. 고른 치아가 다 보이도록 환한 웃음을 내보일 때는 마치 18살의 소녀 같은 장난기도 없지 않았다.

 

10년 전에 어디서 본 듯한, 그리고 10년이 흐른 어느 날에도 신선하다는 새로운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제 작품 속에 심는 작은 바람이지요. 요즈음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패션 경향은 전통과 가치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리메이크 스타일이 지배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그러한 가운데서도 기능성을 강조한 심플한 스타일을 바탕으로 최고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된 흐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극도로 누적된 긴장감과 불안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보다 근원적인 안락함을 찾아, 이미 상실해버린 자신들의 실존 속에 새롭게 안착한 또 다른 모습의 공허함을 밀어내기 위한 그 조건반사는 아니었을까. 세월이 저에게 과거를 더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굳이 지금의 추세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그녀의 옷은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인간의 신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의식이 돋보인다. 

 

전통적인 것에서 새로움을 찾고자 했던 그녀의 단아함 속에는 그래서인지 절제된 세련미가 있고, 우아한 지성미와 곁들여진 활발한 기능성도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무척이나 영광이죠. 제 옷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 매력을 함께 하실 수 있다니~~~ 그녀의 옷은 우리들의 감수성과도 잘 부합된다. 마치 한복 저고리의 동전과 배래선의 수려함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듯한 빼어난 아름다움과 더불어 스커트에서 느낄 수 있는 풍성한 곡선미는 가리어진 심플함 속에서의 또 다른 개성미를 표출시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으로부터의 계산된 숫자 논리에서 비롯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항상 옷을 입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한 마음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디자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선택하는 소재 또한 예외가 아닌 듯싶다. 

 

테크노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화려한 외형적인 기교에 짓눌려 음악 그 자체의 본질을 잘 찾지 못할 때가 종종 있더군요. 물론 제 취향이겠지만. 그래서인지 전 그런 외부적인 덧붙임이 모두 배제된 것을 좋아하죠. 모든 면에서. 물론 제 작업에 있어서 역시. 입었어도 별다른 착용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자연소재를 원해요. 

 

그녀는 한때 '거즈 디자이너'라고까지 불린 적이 있다. 피부와의 접촉을 그 자신의 작업에 있어 가장 중시 여기는 만큼, 촉감이 그리 매끄럽지 못하거나 울퉁불퉁한 질감, 그리고 합성소재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녀의 시야에서 배제되는 것은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성싶다. 그녀는 그것을 민감하다는 말로 웃어 보였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일에 대해 섬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작업실을 훔쳐보았다. 삼면을 가득 채운 각종 자료들과 문서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이 왠지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섬 한구석에 놓인 것과 같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벽면을 크게 뚫은 창문 밑으로는 한 뼘만 한 크기의 유리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속에는 희귀한 단추들이 각각의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을 나서서 가장 눈에 띄는, 이제는 공장행만을 남겨놓은 이미 완성된 샘플들을 따라가면 가봉한 옷에 수정을 가하고 다시 의견을 교환하는 제자들의 분주한 모습이 한눈 가득 들어왔다. 

 

그러한 가운데 불현듯 올려다본 작업실 통로의 천장이 쏟아지는 햇살을 실내로 여과 없이 내려앉게 하였다. 주인을 닮아서였을까. 이곳은 그녀의 작품만큼이나 인위적인 가공의 수고스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홍미화 디자이너는 이곳이 홍콩의 뒷골목을 연상하게 한다고 했다. 

 

1층을 들어서면서부터 이 건물 전체가 봉제공장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이곳의 2층과 5층에서 그녀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겉보기에는 조금 허름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5층에 올라서서 그녀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는 순간 작은 감탄사가 쏟아졌다. 마치 여느 유명한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찾아든 갤러리 같이, 온통 아이보리의 잔잔함으로 수놓은 그곳은 무척이나 세련된 분위기였다. 

 

제 옷들이 때로는 잠옷 같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속옷을 생산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천과 친숙해진 그녀의 작품들이 그렇게 편안한 이미지를 전이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일까. 물론 남성복과 아동복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다만 아이들 옷은 꼭 7세 이전만을 고집할 것입니다. 이유는 바로 그 연령의 경계가 환경의 영향에 그래도 초연할 수 있는 무궁한 자연스러움의 한계가 되기 때문이죠. 무국적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그리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에 던져지는 모든 성향들에 대해 다량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시기 또한 바로 그때라고 생각합니다. 

 

중간톤의 색채보다는 강렬한 원색을 선호하는 그녀의 제품은 블랙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포인트 칼라로서 화이트와 레드가 가미되고.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메인 색채의 선택을 그녀만의 취향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두 그녀의 제품만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주된 주문 사항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저의 디자인요? 그것은 바로 저의 삶 속에서 생성되는 것들이죠. 소수의 패션 마니아들에게만 치중되었던 그녀의 색깔이 언제부터인가 많은 대중들의 옷 입기에 있어 다양성을 확보해 주었다. 특히 그녀의 발자취에 있어 동반되는 이러한 수식어는 바로 우리나라 고유의 고전적인 이미지와 그 맥을 함께 한다는 데 그 의의를 더할 것이다. 

 

글쎄요. 어쩌면 그것은 자기들만의 향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바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단 현대적이라는 시간적인 개념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대상에 대해 고향 같은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것. 저의 옷에서 우리나라의 고전적 이미지를 함께 하셨다면, 아마도 그것은 아주 편하다는 것 이상의 자연스러움을 만나셨기 때문은 아닐까요. 

 

홍미화 디자이너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 그것은 어쩌면 과거 모습 그대로의 재실현이라는 차원보다는, 옛 것의 전통을 어떠한 형태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과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 또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현실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모습, 그리고 작품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승화된 디자이너 홍미화의 단아한 자연스러움 앞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된 우리의 모던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나는 그녀의 작업실을 나서며 돌아오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 허성민

 

디자이너 홍미화 1955년 출생. 일본 문화 복장학원 졸업 후, 동경 (주) REY. KJAVIC와 (주) Tom에서 기획 디렉터와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1989년에는 HONG CREATION을 설립했다. 1987년부터 (주)데코 텔레그라프의 총책 디자이너를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일합섬 레쥬메의 계약 디자이너 실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3년 서울에서 mi wha 브랜드를 오픈하며, 그 이듬해에는 (주)미화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1993년 파리 마레 지역의 갤러리 새피아에서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1994년부터 매년 파리 컬렉션에 참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녀는 기존의 패션 개념이나 유행에 동요되기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디자이너 홍미화에게서는 아방가르드적 요소가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그동안의 수식어를 굳이 배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디자이너 홍미화는 어떠한 사회적인 반발심이나 기존 룰의 파괴에서 새로운 것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 스스로가 원하는 스타일의 작업을 하다 보니 단지 그러한 결과로 접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고정된 것들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파격적인 새로움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요소가 느껴진다고 한다. 옷의 소재와 디자인, 입고 난 후의 맵씨와 감촉까지 모두 그러하다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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